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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니엘 Mar 10. 2023

승진 하자마자 본사에서 콜이 왔다

다이내믹 성장통_우물 안 개구리는 행복할 수 없을까


이럴 줄 알았다. 

주임과 대리의 연봉이 천만원 넘게 차이가 나지만, 크게 승진에 욕심내지 않았던 이유. 본사 발령. 


8년 만의 늦은 승진, 대리가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본사는 나를 염두에 두었다. 

본부장 직속의 신사업 TF(Task force) 팀. 오퍼가 들어왔다.



사실 매년마다 다양한 팀에서 오퍼가 있긴 했다. 매번 인력이 부족한 본사, 그리 잘난 것도 없는 나일 텐데 틈틈이 나를 잊지 않아 주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번번이 안 간다는 의향을 강력하게 표명했다. 숫자에 꼼꼼하지 않아서, 잘할 자신이 없는 업무라, 분위기가 별로라, 팀장이 너무 강성이라, 지금 가면 승진이 애매하게 밀릴 수 있으니까, 곧 결혼할 거니까 가정에 집중하고 싶어서... 이유는 많았다. 마음이 가지 않았다.






이번의 제안은 조금 달랐다. 우선 대리가 되면서 언제든 다시 본사를 가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었다. 주임은 애매하지만 대리는 쓸만하다. 언제든 어디로 나를 데려갈지 모른다! 마음가짐이 바뀌니, 어느 팀일지를 생각해야 했다.


이번 팀의 제안은 과거에 쌓은 이력과 이어지며 지점에 있었던 시간들까지 적절하게 경력과 연결 지을 수 있는 기회였다. 군다나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업무라니! 지점에 있으면서 내가 즐겁게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았는데 접점이 있었다. 여러모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갔다. 1차 통과.



하지만 본사행은 내 일상을 완전 다운그레이드하는 시도였다. 현재의 평온하고 여유로운  삶. 직주근접, 주 3회씩 운동 다니는 여유, 마음껏 휴가낼 수 있는 자유로움, 정시출퇴근, 매일이 비슷하게 돌아가는 부담 없는 업무, 부모님과 가까이 사는 편안함. "워라벨"을 추구하는 나의 가치관에 딱 맞았다.


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출퇴근 4시간, 야근이 있을까 없을까 맘 졸이는 퇴근시간, 운동은 생각도 못하고 매번 퇴근하고 잠자기 바쁘겠지. 휴가는 눈치 보며 슬금슬금 써도 될지 물어봐야 할 거고. 새로운 사업 업무에 매일이 부담스럽겠지. 편안한 나만의 아파트 생활을 뒤로하고 서울의 조그만 오피스텔로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몰라. 생활비도 더 들고 더 외롭겠지.



3년만 버티며 일하면 과장 진급은 무난하겠지만, 현재의 여유로움은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저울질을 하기에는 내 일상의 안락함은 너무도 컸다.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경력 하나만을 위해 다시 달릴 수 있을까? 계륵이었다.



돈은 현재의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벌고 싶다.
일은 내 일상과 가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30대 중반이 되어가는 가치관은 이미 명확하게 굳어진 상태였다.




무언가 찜찜했다. 내 일상과 가정을 위해 선택했던 지점행은 늦은 진급과 결혼 못함이라는 결론으로 끝이 났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과정'은 나쁘지 않았으나 '결론'이 최악이었다. 이대로 지점에서 살아간다면 만년 대리 남 가능성이 컸다. 결혼을 했으면 그 선택지에도 만족했을 것이다. 가정을 위해 일을 조정할 수 있었으나 내게 가정은 주어지지 않았다.


본사, 그것도 알짜배기 신사업. 길게 보면 더 높은 직급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였고, 이직의 길도 생길 것이다. 금의 내 행복과 맞바꾸는 미래였다. 내가 추구했던 행복의 가치관과 반대의 길이었기에 행복할까라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가고 싶지는 않으나, 가야 할 것 같다.
직관적으로 정리된 나의 생각이었다.



직관을 믿으며 긍정적 의향을 보냈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변에서도 무조건 가야 한다며 나를 재촉했다. 이제 본사에서 결론 낼 차례다. 알 수 없는 미래가 다시 펼쳐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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