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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겁쟁이 선비 Dec 14. 2022

관음성지 낙산사 템플스테이 ③

겁쟁이 선비의 인생 첫 번째 템플스테이



9. 입소

시간이 지나 입소 예정인 시각이 되어 템플스테이 안내 사무실로 향했다.(숙소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입소 교육과 절차는 얼추 1시간 남짓 소요되었는데,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사찰 내에서 준수해야 하는 몇 가지 규정에 대한 교육과 관련한 설명이 있었다.


먼저 지정된 의복이 있었는데, 사복이 아닌 지급받은 지정 복장을 입고 다녀야 했다. 여름 초입에 입기엔 다소 옷감이 두꺼워 정말 더웠는데, 단추를 풀거나 단정하지 못한 모습으로 다니는 것도 퇴소 조치될 수 있어 함부로 벗을 수도 없었다. 다행히 안에 얇은 내의를 입고 와서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나중에 경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땐 여러모로 고역이었다. 2021년 부처님 오신 날이 유독 무덥기도 했고, 바로 옆이 바다라 비열 차에 의해 발생한 습한 해풍이 불어와서 피로감이 더했다.


그런데 또 나중에 해가 지고 기온이 뚝 떨어질 땐 또 도움이 되었다. 해발고도가 낮은 지역이 아니고, 해안가에 위치한 산이었기 때문에 밤이 되면 제법 추워지는데(낮과 반대로 강원도 산 바람이 동해로 향하는 일종의 육풍이 불기 때문에 체감온도는 더 낮다.) 두꺼운 안감의 옷이 추위를 덜어 주었다. 이렇듯 옷을 입는 것조차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배움이 되는 것 같아 지난 템플스테이의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것도 한편으론 나름 덕(德)이었다.


정갈한 숙소 앞 마당 평상에 누우면 밤에는 별이 보인다. © 2021. 겁쟁이 선비. All right reserved.


지정된 의복 규정 외에는 경건한 마음가짐과 행실, 그리고 합장으로 인사하는 예법 교육, 마지막으로 오체투지인 절하는 법까지 제대로 배우고 일정에 대한 모든 안내를 받은 후 자유시간을 부여받았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주관하는 템플스테이에는 체험형과 휴식형 2가지가 있다. 체험형은 말 그대로 절에서 수행하는 모든 요소들을 배우고 경험하는 코스고 휴식형은 몇 가지 일정 외에 모든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코스인데, 내가 고른 코스가 휴식형이어서 필수 안내 교육 이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10. 경내

다소 들뜬 마음을 안고, 오후 5시 부처님 오신 날 예불 일정 전까지 주어진 자유시간에 낙산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역시 불교계 최대 이벤트 날이라 그런지 COVID-19라는 21세기 전대미문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파가 모였다. 관음성지라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애당초 낙산사 자체가 관동팔경 중 하나이기도 하고, 양양의 여러 지역 중 손에 꼽히는 명소이기에 인파가 몰리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겠지.


낙산사 일원은 생각 이상으로 넓다. © 2021. 겁쟁이 선비. All right reserved.


그리고 사찰 권역이 낙산 전체에 걸쳐 있어서 상상한 것 이상으로 무척이나 넓었다. 솔직히 금방 돌아볼 것으로 생각했는데, 여기저기 쏘다니며 경내를 탐색하는 것에 생각보다 체력을 많이 소비했다. 힐링하자 힐링하자 되뇌며 천천히 걷겠노라 다짐하고 노력해도 오랜만에 맞이한 휴식과 신선한 여행지, 처음 경험해보는 템플스테이 체험이 빚어낸 교집합이 자꾸 텐션을 끌어올려 발걸음이 빨라졌다. 신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경망스럽게 다니면 혼나니까 나름 또 절제한다고 잰걸음으로 경내 이곳저곳을 활보했다.


경내 가운데 위치하기도 했고 청기와라서 처음에 보타전이 대웅전인 줄 알았다. © 2021. 겁쟁이 선비. All right reserved.


돌아다니면서 알게 된 낙산사에 관련한 2가지 정보가 있다. 보통 사찰에는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 있기 마련인데, 이곳 낙산사에는 본전인 대웅전이 없다. 대신 관세음보살을 모신 원통보전이 있다. 안내 리플릿에도 대웅전이 없고, 돌아다니면서도 대웅전이 안 보여서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이 관음성지임을 고려해본다면 납득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나중에 찾아보니 이곳과 관련하여 삼국유사 ‘탑상 편’에 조신의 꿈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방문했을 때 이 이야기를 알지 못해 집에 돌아오고 나서 아쉬움이 있었다. 알고 보는 거랑 모르고 보는 거랑은 느끼는 바와 생각하는 바도 차이가 있으니까.)


다른 하나는 랜드마크이기도 한 해수관음상이 한 때 동양 최대의 불상이었다는 사실이다. 처음 마주하면 그 크기에 압도되는 듯하다가도 이내 관음상의 인자한 얼굴을 보면 위압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이렇게 큰 불상이 국내에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는데, 그 때문에 개인적인 감상으론 신기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래서 그곳에 한참을 서서 기도를 올리는 참배객들과 관음상을 바라봤다.






11. 동해

해수관음상에서 고개를 돌리면 바로 앞에 넓은 동해바다와 설악해수욕장, 후진항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유시간 중 이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해수관음상도 그렇지만, 날이 다소 더웠던 만큼 바다도 유독 파랗게 빛이 났다.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이 주는 이완감과 해방감은 당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사진으로 만나는 건 한계가 있다. 그래서 템플스테이 끝나고 주변 사람들에게 꼭 한번 가서 느껴보라고 수없이 권유하고 다녔다. 이 끝내주는 해안가 뷰를 경험해보지 못한다면 후회하게 될 거라고. 힐링은 진짜 여기서 다한 듯 싶다.


차원이 다른 쾌청함 © 2021. 겁쟁이 선비. All right reserved.


의상대도 이에 준하게 끝내주는 뷰이지만, 그곳과는 다소 다른 결을 보여주는 곳이 관음상 동해 뷰인 것 같다. 의상대는 장소의 명명에서부터 의상대사의 업적과 깨달음, 그의 일생으로 인해 뭔가 관학스러움이 묻어난다고 해야 하나, 종교적 색채가 묻어난다면 해수관음상의 동해안은 자유롭고 쾌청, 쾌활하다는 인상이 있다.


사실 말로 백번 설명해봐야 의미 없다. 직접 가서 느껴봐야 한다. 지면 상에서 활자로도 그러는 거 보면, 내가 수없이 권유한 탓에 여럿 시달리게 했나 보다. 뒤에 가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이곳에서 겪었던 모든 체험들 중 최고의 경험 2가지가 자유시간에 본 해수관음상 동해안과 다음날 새벽 어스름에 맞이한 의상대 일출이다.






12. 저녁

그렇게 오후 시간 내내 경내를 방방 돌아다니다가 앞선 입소 교육 때 안내받았던 저녁 먹는 시간이 와서 식당으로 향했다. 솔직히 좀 더 낙산사를 누비며 느껴보고 싶었는데, 체감상 그 시간이 짧게 느껴져서 지금도 아쉽다. 그렇다고 1박 2일 옵션을 2박 3일로 했다면 조금 물렸을 거 같기도 하다. 역시 살짝 아쉬움이 남는 게 베스트다. 솔직히 절 밥이라 체험형 아니고 휴식형임에도 고기반찬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이게 웬걸?


고기반찬이 나왔다.


식사 자체는 몇 가지 반찬이 세팅되어 있고 체험자가 원하는 만큼, 남기지 않을 만큼 음식을 퍼 먹을 수 있는 뷔페식이었다. 절에서의 식사가 뷔페인 것도 놀라웠지만(*체험형이 아니었기 때문에 발우공양은 당연히 기대하지 않았다.) 고기반찬이 나오다니…. 고기반찬이 가장 쇼크였다. 최근 절에서는 외부에서 오는 손님들을 배려하는구나. 그 놀라움에 편견이 깨져서 인지, 높아진 텐션에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체력을 왕창 쓴 탓인지 밥은 원 없이 배부르게 많이 먹었다.(*물론 퍼온 찬은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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