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공화국의 역사

처갓집 양념치킨 vs 시집치킨

by Jonx

나는 닭띠다. 어릴 적 엄마는 말씀하셨다.

"너는 남자가 돼가지고 닭띠가 뭐냐. 제일 안 좋은 띠. 졸고 있으면 쥐새끼들이 똥구멍을 갉아먹어도 모르는 닭"이라고 하셨다. 풀이 죽은 나는 속으로 말했다.

"내가 닭띠가 되고 싶어 닭띠인가?"


우리나라는 치킨공화국이다. 후라이드 치킨, 양념통닭, 허니콤보, 자메이카 통다리, 그 종류만 해도 부지기수다. 나의 어릴 적 치킨은 튀긴 통닭, 지금으로 치자면 옛날 통닭 밖에 없었다. 집 길건너에 있던 시장에 가면 닭집에서 산 닭을 죽인 후, 끓는 물이 담긴 들통에 넣은 뒤 삼고, 닭털을 다 제거하고 통째로 튀겨주고는 했다.(어쩔 땐 살아있는 닭의 양 날개를 꼬은 뒤, 목을 비튼 채로 끓는 물 들통에 넣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 아버지께서 월급날이면 시내에서 통닭을 사 오시기도 했다. 지금처럼 전화나 휴대폰 앱으로 주문하면 현관 앞까지 오는 시스템이 아니었고, 이따금 통닭을 먹는 날은 1년에도 손을 꼽을 정도였다. 그렇게 귀한 음식이었으니 통닭을 먹는 날이면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 소득이 늘면서 외식문화도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중에 치킨집이 있었는데, 생맥주집과 더불어 페리카나, 멕시카나 등의 튀긴 닭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KFC가 지금의 크리스피 치킨을 판매하며 치킨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 후로 바베큐 통닭, 각종 양념 통닭집들이 생겨났고 닭강정까지 생기게 되었다. 프랜차이즈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교촌치킨은 1991년에 생겼다고 하는데, 처음 먹어본 교촌치킨의 그 고소하고 바삭했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생맥주에 후라이드 치킨만 먹던 나는, 새로운 메뉴인 양념 통닭을 가끔 먹기도 했지만, 나의 최애 메뉴는 단연 바베큐 통닭이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린 메뉴지만, 치킨 하면 바베큐라고 주창하며 즐겨하곤 했다.


내 아이들의 외가이자 나의 처가는 고기를 먹지 않는 집안이다. 그런 하소연을 하면 친구들은 말한다.

"그럼, 회를 먹어."

하지만, 처가에서 회는 금기어다. 바닷가 식당에서는 비린내가 난다고 차에서 내리지도 않는다.(참고로 장모님은 목포 출신이다)

처가에 정식으로 인사드리러 가기로 한 날, 지금의 와이프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뭐 먹고 싶냐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처가 식구들이 고기를 안 먹는 줄을 몰라서 평소 좋아하던 '소갈비'라고 하려다가 부담이 될 것 같아서 그냥 "닭도리탕 같은 거면 되지 뭐"라고 했는데 처가에서는 치킨을 주문했고, 내가 도착하고 한참이 지나도 치킨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치킨 열 마리를 주문한 것.

와이프 형제가 6남매이고 조카들이 4명이 있다지만 꽤나 많은 양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집 근처의 치킨집에서 처음으로 치킨을 주문해서 먹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린 나이의 조카들은 치킨을 보자 눈이 뒤집어졌고 그날은 그냥 말 그대로 닭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처갓집에 사위는 백년손님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백 년에 한 번 손님 취급받는 시대가 왔다.(나만 그런가) 그래도 아직까지 대한민국 곳곳엔 처갓집 양념치킨집이 존재한다. 시댁치킨이나 시집치킨은 존재하지 않는 나라. 옛 어른들은 닭고기 돼지고기를 바람 든 고기라 하여 잘 드시지 않았다고도 한다. 그래서 한 집안의 대들보인 며느리에게는 먹이지 않았기에 시집이나 시댁치킨집이 없으리라 미루어 짐작해 본다. 처갓집 양념치킨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아니 시댁치킨, 시집치킨이 생기는 그날까지 나의 치킨 사랑은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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