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는 타락을 속삭이고
"뇌가 사랑에 빠져 있는 기간은 대략 2년 정도다."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이 현실을 압도하여 정작 사귀는 사람은 없이 연애 관련 격언과 책만 애꿎게 들추던 20대 초반, 뇌리에 강렬하게 박힌 말이다. 아니, 저렇게 좋아 보이는 게 2년밖에 안 간다고? 하지만 나는 그 반대편에서 천년이니 만년이니 영원한 사랑을 예찬하던 근본주의적 글에 좀 더 세뇌된 덕인지 모카포트와의 밀월은 그래도 2년이 넘게 갔다.
물론 영원이란 없었다. 압력을 견디다 못해 '칙'하는 소리와 함께 커피줄기가 쫄쫄대고 나오던 모습과 방 안에 진동하던 커피 향, 심지어 커피를 뽑고 난 뒤에 찌꺼기를 치우고 청소하는 것까지 즐겁던 시간에 어느 순간 심드렁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엮였던 일의 계약기간이 끝나 장대로 찔벅대는 인간들과 더 이상 상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다시 말해 외부의 적에 맞서 더 이상 내 팔로 원을 만들 일이 없다는 사실이 한몫했겠지만, 아무튼 내 변절은 그렇게 시작됐다.
모카포트를 사고 2년을 넘기던 해의 초겨울이었다. 내가 즐겨 찾던 힙한 카페에서 핸드드립 강좌가 열렸다. 나 같은 부류의 인간은 도구를 갈아타려고 해도 어떤 도구가 나와 잘 맞을지 생각하는데 반년, 어느 브랜드의 평이 좋은지 알아보는데 반년, 가장 저렴한 곳을 찾는데 일주일이 걸리고도 결제창이 열리면 갑자기 검지손가락에 쥐가 나서 주무르는데 30분을 쓰고야 배송이 시작되는데, 이건 수강료에 추가로 소정의 금액을 입금하면 핸드드립 추출도구 세트를 눈앞에 대령한다는 변절하기 딱 좋은 조건.
1주일에 한 번씩 네 차례 있었던 강좌는 꽤 유익했다. 수강했던 이들 모두 창업할 생각이 없었고, 가르치던 사람도 핸드드립 장인을 키워낼 생각이 없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핸드드립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배웠다. 그러니까 쏘울 충만한 '워우워 붸이베'를 지르기 전, 공기 반 소리 반을 익히는 시간이었다. 거기에 더해 나는 커피에 대한, 좀 더 나아가 취향에 대한 어떤 확신을 갖게 됐는데 강사가 했던 말을 거칠게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당신이 마셨을 때 가장 맛있는 방식으로 커피를 내려라."
물론 그 방식을 찾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그 주에 배웠던 것을 복습하라고 500g이 넘는 원두를 나눠줬는데, 핸드드립과 밀월이 시작된 나는 한 번에 350ml씩 내려서 아침에 한 잔, 점심에 한 잔, 저녁에 한 잔을 마셨다. 연애 초기에 하루종일 상대를 생각하듯, 나는 하루종일 핸드드립만 생각했다. 앞서 귤드립을 받아쳤던 커피드립은 이 시절 변기 위에서 겪었던 핸드드립에 대한 일화였다.
모카포트에 비해 핸드드립은 사람이 개입할 구석이 많다. 원두와 물의 양, 물의 온도, 물을 붓는 횟수와 시간에 따라 맛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이렇게 하라는 둥, 저렇게 하라는 둥 말들이 많다. 갓 입문한 밀월 기간에야 91도의 물 30ml로 90초 뜸을 들이고 이후 50ml씩 세 번에 나눠 내리라고 하면, 49ml를 부은 뒤 1ml를 더하려다가 3ml를 붓고는 입술을 깨물고 가슴을 치며 절망하는 일도 있지만, 이 역시 어디까지나 바뀐 도구와 방식에 심드렁해지기 전까지일 뿐이다. 조용히 물을 붓다 보면 매너리즘이라는 마귀가 속삭이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김없이.
물 끓이고 2분 정도 놓아두면 90도쯤 될 텐데 온도는 번거롭게 뭐 하러 재.
이제 온도계가 사라진다. 신기한 건 그렇게 온도를 재지 않고 내려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맛이다. 그러면 시간을 재지 않게 된다. 역시 맛은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결국엔 물도 정량에서 벗어나 대충 붓는다. 타락과 변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정교한 맛을 추구하려고 통제하던 여러 요소들이 우스워지면, 그제야 구석에 있던 뭔가가 보인다. 모카포트가 울고 있다. 두어 달 만에 살펴본 보일러 안에 왠지 녹이 앉은 것 같지만 기분 탓이려니 하고는 2년 넘게 몸에 익은 동작으로 커피를 넣고 조립을 해서 불에 올린다. 결과물을 입에 넣으면 두어 달 동안 잊고 있었던 맛이 느껴진다. 핸드드립에 비해 터프한 그 맛. 그래, 커피는 이 맛으로 먹는 거지. 두어 달 신나게 물줄기를 흘리던 드립포트의 주둥이에서 이제는 모카포트가 흘리던 눈물보다 진한 눈물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