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성인용품점에서 팔지 않는
다른 친구의 피드백도 있었다. 좀 정상적인 걸 써 봐라. 그 친구가 놓친 것이 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본격적인 커피 이야기를 하기 전에 밭을 일구는, 그러니까 거름을 주는 과정이었다. 거름은 대개 더럽다. 자, 이제 무럭무럭 자랄 커피나무를 심어보자.
모카포트는 2009년에 구입했다.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어쩌다가 커피를 만들어 마실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머물던 기숙사가 꽤 외진 곳에 있어 퇴근하고 딱히 할 일이 없기도 했고, 다들 중고차라도 구입해 가까운 면내로 나가 시간을 보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던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을 수는 있다. 매일 챙겨 먹지는 않았어도 막상 원하는 순간에 커피를 마실 수가 없었으니 차라리 추출도구를 사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마침 카페에서 일했던 선임 하나가 모카포트를 강력하게 추천했다. 사실 추천받기 전까지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그게 뭡니까?”
“커피 뽑는 거. 정말 좋아.”
선임은 좋고 싫음에 이유가 없는 부류였다. 그러니 내가 추천을 받아들일 그럴듯한 이유 또한 없었다. 다만, 커피잔에 손가락을 꿴 포즈로 공중에서 고개를 꺾어 한 모금 마시는 그의 표정이 너무 그럴듯했다.
모카포트로 커피를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100ml 내외의 물을 용기(보일러)에 담는다. 보일러 위에는 작은 구멍이 여러 개 난 바스켓을 얹는데 여기에 20g 내외의 원두를 곱게 갈아 넣는다. 마지막으로 추출된 커피가 담길 컨테이너를 보일러 위에 끼워 조립한다. 열원에 보일러를 올려놓으면 물이 끓어 올라 원두를 통과한 뒤 컨테이너에 담긴다.
다른 음식과 마찬가지로 커피도 오래 마시다 보면 이것저것 섞어보게 된다. 물이나 설탕, 우유에서 그치지 않고 생크림, 버터, 아이스크림, 과일즙, 증류주를 섞기도 한다. 이때 커피가 드립 커피 정도의 묽기라면 뭔가를 섞은 뒤에 이맛도 저맛도 아닌 것이 되는데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문제의 그 에스프레소다.
에스프레소는 커피의 정수(精髓), 원두의 영혼과 같다. 쓰지만 결코 쓰지 않은 이 액체는 다양한 형태로 변주(variation) 하기 쉽다. 농축된 커피의 풍미가 다른 것과 섞인 뒤에도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모카포트는 에스프레소(에 근접한 형태의 커피)를 만들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추출 도구다. 이것이 선임이 설명하지 않았던 모카포트의 장점.
반면 약간의 관리가 필요하다. 모카포트는 금속으로 만드는데, 알루미늄 제품일 경우 약간의 물기가 남아도 쉽게 녹이 슨다. 그래서 커피를 추출한 뒤 조립된 모카포트를 분리해서 내부를 꼭 말려줘야 한다. 이 과정이 드립 커피 기구를 관리하는 것에 비해 조금 더 번거롭다.
다소 비싼 스테인리스 제품을 선택하면 ‘녹’의 문제는 피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녹을 피했다는 기분에 도취돼 커피를 추출한 후 잘났다고 조립된 채로 놔둔다면 다음 커피를 추출하기 위해 모카포트를 열었을 때, 특히 여름철이라면, 푸르스름하게 곰팡이꽃이 핀 원두 찌꺼기를 보게 될 것이다. 구석구석 닦을 수 없는 모카포트 구조의 특성상 다음 커피를 만들기가 조금 찜찜해진다. (물론 원수에게 대접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이것이 모카포트의 가장 큰 단점이다.
커피를 추출하는 큰 갈래는 네 가지 정도이지만, 같은 갈래 안에서도 자신만의 장점을 내세우는 다양한 추출 도구들이 있다. 추출 도구와 그것을 다루는 인간을 잘 되새겨보면 결국 이것도 하나의 장난감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 번 놀고 나면 커피가 만들어지는 으른들의 장난감.
다음은 한 달 전 마트 장난감 코너 근처를 얼씬대다가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각기 다른 부모의 입에서 나온 날 선 말이다.
“너 그거 집에 있잖아.”
“지난번에 산 거 놔두고 뭘 또 사. 집에 가서 꺼내줄게.”
일단 입문했던 추출 도구에 환호하던 순간이 지나면 타사의 좀 더 비싼 제품을 구입하거나 (너 그거 집에 있잖아) 아주 다른 갈래의 추출 도구로 눈길을 돌린다 (지난번에 산 거 놔두고 뭘 또 사). 새로 산 제품 역시 비슷한 운명을 거쳐간다. 그렇게 으른들은 이 도구와 저 도구 사이를 떠돈다. 마음이 떠난 도구가 유리나 플라스틱 재질이라면 먼지나 쌓이고 색이나 바래겠지만, 모카포트의 경우엔 앞서 말한 녹이 문제가 된다.
뭐가 어찌 됐든. 모카포트를 구입한 이래로 10년이 훌쩍 지났고 나는 그동안 꾸준히 커피를 뽑아 마셨다. 못 잡아 이틀에 한 잔은 마셨다고 쳐도 2천 번이 넘게 커피를 갈고 담고 끓이고 버리고 닦은 셈이다. 이게 단순한 커피의 매력 때문일까. 그건 아닌 거 같다고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2005년작 <우주전쟁>에서 아빠 레이 페이어(톰 크루즈 분)가 어린 딸 레이첼(다코타 패닝 분)을 앞에 두고 말하던 장면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무지막지한 외계인이 등장하기 전인지 후인지 아빠가 딸에게 아름드리나무를 안 듯이 팔로 둥근 원을 만들게 한 뒤, 거긴 네 공간이라고, 아무도 거기를 침범할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을 한다.
적어도 모카포트를 산 직후 2년은 그런 의미에서 의식을 치르듯 커피를 뽑았다. 당시 내가 맡았던 일은 물리적인 업무강도가 그리 세지 않으면서도 정신은 거덜난 거적때기처럼 황폐해지는 독특한 일이었다. 특히 나이를 조금 먹었다고 점잖은 척하는 인간들이 기다란 장대를 들어 남의 집 감나무를 담 너머로 찔벅거리듯 툭툭 건드려대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일과 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퇴근 후 숙소로 돌아와 커피를 뽑았다. 도구를 챙겨 커피를 뽑고 다시 정리하기까지의 10여 분은 내가 팔로 만든 원이었다. 여긴 내 공간이고, 이건 내 시간이고, 아무도 이걸 침범할 수 없다고 무수히 되뇌었다. 그 행위에 얼마나 집착을 했는지, 할 일이 없이 야근을 하는 날에는 (대개 야근은 업무강도보다 눈치 때문에 한다) 밤 11시에 숙소에 들어와도 커피를 만들었다.
이런 점에서도 모카포트는 내 장난감이었다. 나를 괴롭힌 어른이나 친구의 혼을 후진 장난감에 불러놓고 나만 아는 방식으로 공격해 대는 찬란한 나의 장난감. 내가 그들을 정말 곱게 갈아서 물을 넣고 삶아 먹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가스불 위에서 모카포트가 달궈지는 동안 그들의 영혼은 그 위에서 불탔다. 뼈가 갈려나가지 않은 것에 대하여, 살이 삶아지지 않은 것에 대하여 그들은 알알이 원두와 모카포트에 감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