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역사라면 역사

한 번은 비극으로

by 닭갈비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신촌에서 친구 Y를 만났다. 흘러넘치는 시간을 눌러 죽이고 말려 죽이던 끝에 Y가 불러 얼씨구나 하고 나갔더니 여름을 맞아 개봉한 공포영화를 보러 가자는 것이었다. Y는 나와 성향이 정반대였다. 공포영화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도망가는 내게 그런 말을 하다니. 하지만 자존심 상 무서워서 싫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아니, Y는 짓궂고 집요한 면이 있어서 무서워서 싫다는 말을 한다면 끝내 나를 극장까지 끌고 갈 것 같았다. 단순한 거절이 아닌 화제를 돌려놓을 대안까지 필요했던 나는, 그러지 말고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했다. 불현듯 이대 후문 쪽에 분위기 좋은 커피집이 있다는 말을 언젠가 사촌형에게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카페는 많았지만 커피의 위상이 지금 같지는 않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에 스타벅스 1호점이 생기고 막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커피는 이런저런 차를 파는 곳에서 끼워 팔던 음료 중 하나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러니 커피를 마시러 일부러 어딜 가자는 건 소프트 아이스크림 전문점을 가자거나 토스트 전문점을 가자는 것만큼 유난을 떠는 느낌이었으리라. 그럼에도 Y가 공포영화를 접고 순순히 나를 따라간 것은 새로운 것에 혹하는 그의 성정 탓도 있었을 것이다.

스마트폰도 인터넷 지도도 없었다. 불쑥 형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볼 수도 없어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이대 후문 근처에 가면 분위기 좋은 커피집이 나타나리라는 기대만 갖고. 아니, 나타나지 않더라도 기필코 Y가 공포영화 상영관까지 발걸음을 돌릴 체력은 소진시키리라는 일념도 갖고.


무슨 조화인지 이대 후문 앞에는 정말 커피집이 있었다. 형이 말한 그곳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눈에 띄는 커피집은 그곳 한 군데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섰을 때 제대로 왔다고 좀 더 확신할 수 있었는데, 형의 말처럼 분위기가 정말 좋았기 때문이었다. 20년 전 그곳에 들어서면서 느꼈던 감정을 정확히 되새기는 건 불가능하지만, 여러 모로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것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지금까지 곁눈질로 봐온 고급 호텔 로비의 커피숍을 능가할 정도의 분위기였다.

앤틱. 당시엔 이 단어를 알았어도 떠올릴 만한 경황이 없었겠지만 카페의 분위기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앤틱이었다. 널찍한 공간에 테이블 다리가 요렇게 저렇게 꼬부라지고, 목재 의자의 등받이도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모양으로 깎은 앤틱한 가구들. 거기에 입구 안쪽에 도열해 있던 직원들. 아마도 유니폼 비슷한 옷까지 갖춰 입고 있었던 것 같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자마자 매장 곳곳의 손님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여유로움과 차림새를 보니 우리가 대단히 이질적인 공간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지금까지 지갑이 두꺼웠던 적은 없지만 그나마도 가장 얇았던 시절, 아주 비싸 보이는 이곳에서 커피값으로 쓰게 될 돈을 생각하자 차라리 공포영화가 나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호기롭게 돌아 나오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너무 어린 나이였다.

일단 커피를 마시자며 데리고 온 것은 나였으니 아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직원이 묵직한 메뉴판을 가져왔다. 첫 장을 넘기자 흡사 한글로 발음기호를 달아놓은 외국어 메뉴를 읽는 느낌이었다. 마끼아또니 꼰 빠나니 하는 단어들이 적혀있었을 텐데, 그것들 각각이 어떻게 다른지 안 것은 한참 후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리고 비쌌다. 가장 싼 것이 5천 원 정도였다. 당시 돈으로 5천 원이면 학생식당에서 저렴한 식사 네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돈이었다. 물론 영화 한 편도 그 가격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물론 지금도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커피에 쓰기에는 아까운 돈이었다. Y도 나도 놀랐다. 다만 나는 놀란 티를 낼 수 없었다. 마음을 진정시키자 눈에 익숙한 것이 보였는데 그게 바로 에스프레소, 메뉴의 맨 위에 적힌 에스프레소였다.

카페에 들어온 순간부터 받은 연이은 충격 속에 그 이름을 보자, 초등학교 때 헤어졌던 이탈리아 아저씨가 야심한 골목길 깡패에게 위협당하는 나를 구하러 나타나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 시뇨르 에스프레소. 더욱 반가웠던 것은 그가 아니, 에스프레소가 가장 저렴했다는 것이다.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걸 골랐다.

“나는 에스프레소.”

느낌표 반 개 정도의 톤으로 콕 짚어 외쳤다. 그 익숙한 듯, 확신한 듯한 말투에 Y는 아마 내가 늘 마시던 걸 주문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얼마 후 직원이 쟁반에 올려 들고 온 조그만 뭔가를 내려놓았다. 테이블 위에 놓기 전까지도 나는 커피에 앞서 작은 잔에 액상 크림을 담아 먼저 가져다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직원이 당당하게 내려놓고 간 그것은 향도 색깔도 영락없는 커피였다. 만들다가 엎지른 것을 쓸어 담아 왔나 싶을 정도로 양이 적은 것만 빼면.

생전 처음 보는 작은 잔을 앞에 두고 상황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건 내가 알던 에스프레소가 아니었다. 깡패들에게 붙잡힌 골목길에서 나를 구해줄 강인함이 이 커피의 자태에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어린 시절 엄마가 외치던 ‘정상적인’ 에스프레소와 이것의 양은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가. 잔 속에 저 액체는 왜 또 저렇게 찐덕찐덕해 보이는가. 주문이 잘못된 건가. 혹시 주유소에서 하듯 주문할 때 용량을 따로 말했어야 하나.

어쨌든 10년 만에 조금 낯선 모습으로 재회한 에스프레소와 데면데면하게 있을 수는 없으니 잔을 들어 입에 가져다 댔다.


이후 시간이 어떻게 흘렀던가. 제일 저렴한 걸 시켰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사실은 나도 견디기 힘들어서, 내가 이 음료를 무려 10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격지심에 Y에게 다소 길게 늘어놨을 것이다. 이곳의 에스프레소는 계보가 좀 다른 것 같다고, 세계사 교과서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지만 분명 2차 대전 때 이탈리아에서도 다수의 난민이 생겼을 수도 있다고 주절거렸을지도 모른다. 커피가 너무 그리울 때 아껴 마셨던 탓에 양이 이렇게 줄었을지도 모른다고 웅얼거렸을지도 모른다. 분명 10년 전 내가 알던 에스프레소는 이것보다 양도 많고 맛도 순했다고 속삭거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가 잘못됐다고 당당하게 말하기엔 가구와 식기가 너무 값져 보였다.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손님들이 너무 격조 있었다. 뭣도 모르고, 아니 맛도 모르고, 시킨 커피만이 오로지 저승사자처럼 검고 악마처럼 썼다. 너무너무 썼다. 그래도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며 벌칙으로 까나리 한 컵과 와사비가 떡칠된 초밥을 먹는 예능인처럼 머릿속으로만 갖은 몸서리를 치고 오만상을 써가며 한 모금도 안 되는 커피를 여러 차례 나눠 마셨다.

다 마시고도 문제였다. 언제 어떻게 일어서서 나가야 하는지, 저들은 우리가 나갈 때도 일렬로 도열해 손님을 배웅하는지, 설마 외국에서나 준다는 팁을 저들에게 줘야 하는지, 하는 생각들이 또 나를 괴롭혔을 것이다. 눈치를 보다가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온 뒤 그날 있었던 일이 내가 생각해도 우스워 인터넷 게시판에 이렇게 저렇게 늘어놨다. 하루를 마치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고 잠을 못 이룬 첫 경험이었다.


아이들이 부드럽고 달콤한 것만 찾는 것은 입맛이 극도로 예민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성인이 되어서야 잔가시가 박힌 생선살처럼 거칠거나 생마늘, 깻잎 같은 향이나 맛이 강한 음식들을 즐길 수 있는 이유가 그들이 어른스러워지기 때문이 아니라 입 안의 감각이 무뎌지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첫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5년 뒤 종로에 자주 찾는 카페가 생겼다. 여러 차례에 걸쳐 평균 이상의 커피를 마시다 보니 문득 메뉴 맨 위에 있는 에스프레소를 마셔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5년 전 경험을 떠올리며 다소 긴장하고 넘긴 첫 모금은 너무 매력적이었다. 5년 사이, 그로부터 15년이 더 흐른 지금까지도 내가 특별히 어른이 된 것 같지는 않으니 쓴 맛을 견디는 힘이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것도 결국 미각이 무뎌졌기 때문이 아닐까. ‘무뎌지다’는 단어가 풍기는 기운은 애잔하기 짝이 없지만, 대신 마실 수 있는 음료가 하나 늘었으니,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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