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ed by 초조
나는 태생이 캐치볼을 잘 못하는 인간이었다. 누군가 공을 던지면 허공에서 받아내지 못했고, 땅에 착지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걸 주우러 가곤 했다. 주운 공을 돌려줄 때에도 의도치 않게 변화구를 던지거나 강속구를 던지기 일쑤였다. 물리적으로 캐치볼을 잘하지 못하는 게 그와 닮아있는 모든 활동들을 못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까? 스몰톡의 순간마다 나는 상대를 실망시키고야 만다.
“초조 씨는 어떤 색 좋아하세요?”
불쑥 가벼운 질문과 함께 대화가 시작된다. 나는 바짝 긴장하고야 만다. 상대는 나를 알고 싶어 하지만 그건 지적 호기심과는 다르다. 그러니 상대의 질문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나의 민낯, 그 너머의 속살까지 펼쳐 보여서는 안 된다. 상대의 의도는 명확하다. 나를 알고 싶어 한다고 여겨지는 것. 그런 의도를 이해했다면 내가 취해야 할 태도 역시 명확해진다. 내가 상대에게 닫혀있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 그렇게 서로를 알고 싶어 하고 알려주고 싶어 하는 흉내가 진짜가 될 때까지 말을 주고받는 것을 우리는 스몰톡이라고 부른다.
그런 류의 대화에서는 질문과 답변이 캐치볼처럼 이루어져야 한다. 야구나 피구에서처럼 상대를 아웃시키기 위해 공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받기 쉽게 공을 던져야 하고 반대편에서는 안정적으로 공을 잡아내야 대화라는 플레이가 이어질 수 있다. 온건하게 공이 오가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관계가 생겨나기도 하고 의미 없는 시간만 남기도 한다.
다시,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공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색을 좋아한다’는 것은 어떤 걸까? 어릴 때는 보라색을 좋아하면 독창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보라색을 좋아하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은데, 사실은 꽃집에서 보라색 꽃을 사본 적도 없고 우산을 살 때도 보라색을 골라본 적 없었다. 옷은 흰색이나 검은색이 많은데, 깔끔하게 입으려고 했을 뿐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회색 머리를 한 만화 캐릭터를 보면 마음이 가지만 그 색은 캐릭터 머리 위에 얹어져 있을 때에나 설렌다. 생각하는 사이 상대가 던진 공은 나를 지나쳐서 바닥에 툭 떨어진다. 데구르르 굴러가는 모양새를 보면서 뭐라 답하면 좋을지 고민한다. 딥그린, 색상 자체만 놓고 봤을 때에는 아름다운 색이다. 그런데 그걸 좋아한다고 말할 만큼의 경험과 확신이 없었다. 사람이 자신이 좋아하는 색상을 깨닫는 순간은 언제일까?
“글쎄요. 좋아한다는 말은 너무… 어려운데요.”
한참만에 주어 든 공을 다시 상대에게 던진다. 상대는 뜻밖의 과제를 껴안았다는 얼굴이다.
“흠. 고백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었는데….”
불편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아차, 내가 상대의 기대와는 다른 궤도로 공을 던졌다는 것을 깨닫고 만다. 무슨 답을 했어야 할까? 좋아하는 색들에 대해 구구절절 말하려던 것을 간신히 참는다. 그 역시 상대가 기대하는 답과는 거리가 멀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던진 공을 주우러 상대가 저 멀리까지 다녀오는 동안, 혹은 공을 주우러 가는 척하면서 퇴장하는 것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후회하고야 만다.
내가 명쾌한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좋아하는 색상 정도는 단정한 명사로 말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말이다. 그런 후회는 사람들과 스몰톡을 나눌 때마다 켜켜이 쌓여갔고, 제대로 돌려주지 못한 공들을 매만지다가 어느 날은 결심하고야 만다. 사람들과 함께 지내려면 명쾌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문제에 답이 있다.
“초조 씨는 어떤 색이 좋아요?”
내가 생각하기에 명쾌한 사람은 그거다. 이해하기 쉬운 형태가 되어주는 사람. 스스로를 어떻게 빚어내야 할지 알고 있고, 그걸 타인의 관점에서 완성할 수 있는 사람.
그 경지에 다다르기에는 나는 스스로를 종잡지 못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색상에 대해서만 고민한 게 연 단위가 된 지 오래였다. 답을 정할 수 없는 문항들은 그것 외에도 수두룩하게 많았다. 생각이 없었더라면 오히려 그것대로 명쾌했을 텐데 생각이 너무 많은 게 탈이었고, 생각들이 결을 이루지 않고 극과 극을 오가는 게 문제였다. 어느 날은 뼛속까지 관념론자였다가 그다음 날엔 극단적인 유물론자가 되어 있는 그 모순과 분열이 나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모든 생각들이 정리되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지 확신할 때쯤에는 아마 죽을 때가 다 되었거나 몇 번의 생을 더 거친 뒤가 아닐까.
스스로 명쾌해지는 방법을 모른다면, 누군가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차라리 공을 던지는 상대에게서 답을 찾기로 했다.
가볍게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자신만의 명쾌한 지점을 가지고 있고, 그게 내게는 힌트가 된다.
꾸미는 일에 관심이 많은 상대라면,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웜톤 계열 색들이 제 피부톤에 잘 맞더라구요.”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은 상대라면, “어릴 때 XXX 팬이었어서 지금도 XX색 좋아해요.”
정치나 사회에 관심이 많은 상대라면, “상당히 민감한 질문인데요? 일단 지금은 XX색이죠.”
대화 상대를 조건문 삼아 내 안에 있는 답을 길어 올린다. 그 모든 것이 진심이니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 셈이다. 이어서 내가 어느 궤도로 공을 던져야 하는지도 명쾌해진다. 유도탄처럼 날아드는 공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제법 만족스러운 캐치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에 답이 있다- 그 명제는 분명 참이었다.
다시 이어지는 캐치볼.
“초조 씨, 이번 주말에 뭐 하세요?”
A로부터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리며 공이 날아온다. 나는 상대를 바라보며 공이 도착할 위치에 가서 선다. A는 부드러운 시선 뒤에 예민한 성정을 숨긴 사람. 소란스럽지 않은 식물과 같은 부류를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A와 밥을 먹을 때는 식기류 부딪히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유의할 것. 그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시간은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주말에 하려고 했던 일 가운데 A가 준 힌트들에 부합하는 항목들을 가만히 더듬어본다. A에게 있어서 안정적이고 예상 가능한 나는 아마도 심심한 활동에 몰두해 있을 터였다.
“아마도 햇빛 쬐면서 책 보고 있을 것 같은데요.”
“아, 저도 주말에…”
“무슨 얘기 중이에요?”
그때 캐치볼 현장에 난입한 것은 B였다. 나는 A의 미간이 아주 잠깐 찌푸려졌다가 펴지는 것을, 그리고 B가 그걸 눈치챘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주말에 뭐 할지 얘기 중이었어요.”
B가 눈을 반짝였다. 나는 긴장하고야 말았다. B로 말할 것 같으면, 자유로움과 대책 없음을 구분 짓지 못하는 사람. 모든 사람이 동일한 밑바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원초적 쾌락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이고 가식이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B와 얘기할 땐 게으름 혹은 유희를 앞세울 것. 그렇지 않으면 논쟁이 벌어질 각오를 해야만 했다. 내가 긴장한 것은 다름 아니라 A와 B가 상극이기 때문이었다. B는 나의 긴장마저 눈치챘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A가 내게 던진 공을 빼앗아 갔다.
“초조 씨 이번 주말에 저랑 클럽 가기로 했어요.”
“클럽이요? 무슨 클럽?”
“클럽이 클럽이지, 무슨 클럽이겠어요. 독서 클럽일까 봐요?”
“그럴 수도 있죠. 초조 씨 취미가 독서잖아요.”
B는 웃음을 참으며 나를 바라봤다. A는 A대로 동의를 구하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순간 아찔함을 느꼈다. 공놀이의 장르가 바뀐 것일까? A와 B 양쪽에서 공이 날아오는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묘기와도 같은 저글링이었다. 나는 애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캐치볼도 겨우 하고 있는데 저글링을 해낼 만큼의 역량이 내게 있을 리 없었다. 그런 순간에도 공놀이는 계속된다.
“초조 씨는 글자로 된 건 설명서도 안 읽어요.”
“난 초조 씨 활자 중독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한번 양쪽에서 공이 날아왔지만 어느 한쪽의 공도 받아낼 수가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자기 경험에 비춰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설명서를 읽지 않고 전자기기를 사용하다가 B에게 핀잔을 받기도 했고, 시간을 때우기 위해 온라인 회원가입 약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다가 A에게 들키기도 했다. 다만 어느 때는 글자라고는 질색이었다가 또 어느 때는 글자만 보면 미친 듯이 읽고 싶어지기도 하는 게 사람 아닌가. 또, 낮에는 책 속에서 사유하다가 밤에는 클럽에서 흔들어 재끼기도 하는 게 사람 아닌가.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걸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빚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나는 입체적인 사람이 되기보다는 명쾌해지기를 택했고, A와 B 각각에게 일관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써왔다. 오늘날의 이 미묘한 삼각관계는 나의 두 가지 일관성이 서로 맞서고 있는 데에서 생겨난 문제였다.
A와 B로 이루어진 연립방정식 앞에서 종잡지 못하고 있자 그들의 눈빛에 경계심이 어리는 것 같았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어떤 모호함이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게 분명했다.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배제하려는 본능을 가진다.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함으로써 해소하거나, 대상 자체를 눈앞에서 치워버리거나…. 나는 그들에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남아있고 싶었다. 그들의 옆에 서서 살아가고 싶었다.
찰나일 게 분명했지만 영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마도 나는 당황한 낯빛을 숨기지 못했을 것이다. 공을 줍지도 던지지도 못했다. 잠자코 나를 보던 B가 분위기를 전환하듯 A에게로 공을 던진다.
“그래서 A 씨도 클럽 같이 갈 거냐구요.”
나는 극도의 긴장 상태 속에서도 감탄하고야 말았다. 저런 게 아무 말이구나. 다시 말하지만 A는 예민한 성정 탓에 소란스럽지 않은 것을 선호했고, B와는 상극이었으며…
“저 처음 클럽 데려간 게 A 씨인 거 알아요?”
B가 나를 향해 천연덕스럽게 덧붙인 말에 나는 벙찌고 만다. A가 클럽을? 무슨 클럽? 독서 클럽? 내가 알던 A와는 어울리지 않는 의외의 장소라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A를 돌아보았다. A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눈을 피하는 A에게서 어떤 불안함과 민망함이 엿보였다. 마치 숨기고 싶었던 사실을 들킨 사람 마냥.
아하.
그랬다. 서로에게 명쾌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건 나뿐만은 아니었다. 누군가의 곁에 서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분열된 자신을 추스르고 있었다. 어쩌면 의외라는 표현은 누구에게나 무례할 것만 같았다.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미묘한 동질감이 A와 나를 관통했다. 우리는 그런 서로에게 다정할 수도 있었겠지만, 자신의 모호함을 어쩔 줄 몰라하며 서둘러 자리를 파했다. 혼자 남은 B가 우리가 남긴 공을 통통 튕기며 어깨를 으쓱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