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톰 포드는 구찌의 디자이너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구찌의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패션계의 거장이 스크린 위에 흩뿌려낸 이미지는 놀랍게도 그 시작부터 패션 산업의 대척점에 있다. 패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완벽하게 마른 몸, 올라붙은 근육, 기다란 팔다리. 그 모든 고정관념을 부수며 출렁이는 지방이 온다. 거대한 풍채를 지닌 이 여인들의 모습은 미디어가 절대 소비하지 않을 방식의 이미지다. '이상'을 포장해 파는 패션 디자이너 출신 감독으로서는 꽤 아이러니한 시도다. 대중은 '이상적인 몸'-현실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을 포토샵 된 이미지-를 소비하길 원하고 그 외의 몸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늙고, 상처 입고, 출렁이는 여인들은 반짝이를 온몸으로 받으며 신나게 춤을 춘다. 날씬하고 잘 차려입은 사람들로 가득 찬 미술관에서 그녀들의 몸은 예술의 이름으로 소비된다. 그들은 이 ‘비정상(으로 치부하는 것)’을 ‘예술’이라 포장함으로써 자신들이 이토록 관용적이고 열린 사람들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듯하다. 출렁이는 여인들은 마치 죽은 뒤 박제된 동물처럼 전시되어 있다. 결국 그 미술관 안에 ‘비정상’은 살아있는 인간으로서는 들어올 수 없다.
수잔은 이 작품을 두고 ‘완전 쓰레기’라고 평가한다. 그녀는 완벽한 직장에서 일하고 완벽한 집에서 완벽한 남편과 산다. 그러나 그녀는 행복하지 않고 미술관의 출렁이는 여인들은 그녀를 불쾌하게 한다. 그것은 그녀가 완벽한 삶을 살기 위해 버렸던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이고 추하고 나약하지만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것. 게이이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버림받았던 오빠 쿠퍼, 현실을 모르는 가난한 이상주의자(혹은 로맨티시스트)이기에 수잔에게 버림받았던 에드워드. 마침 그녀에게 에드워드가 쓴 소설 ‘녹터널 애니멀즈’가 배달되고, 그녀는 과거 에드워드와의 시간들을 다시금 기억한다. 자신은 엄마와는 다르다며 에드워드를 택했던 수잔은 결국엔 자신에게 완벽한 삶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허튼에게로 떠난다. 그녀가 그토록 혐오하던 엄마 같은 사람이 된 것이다. 수잔은 작품 그 자체보다 그 작품을 우아하게 멀리서 소비하는 허영심 많은 인간들에게 역겨움을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니까.
소설 ‘녹터널 애니멀즈’의 세상은 끝없이 잔혹하다. 에드워드는 소설 속 주인공인 토니에게 자기 자신을 투영시킨다. 토니의 부인과 딸은 수잔과 같은 머리색을 갖고 있다. 관객은 처음에는 토니의 부인에게 수잔을 투영시키게 된다. 소설의 이야기는 에드워드, 수잔의 과거와 병치되어 보인다. 두 가지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무력함이다. 토니는 부인과 딸이 납치되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차창 너머로 울부짖으며 멀어지는 딸의 모습을 지켜만 볼 뿐이다. 수잔이 에드워드의 아이를 임신중단한 때도 마찬가지다. 에드워드는 비 오는 차창 너머로 그녀를 바라만 볼뿐이다. 토니가 부인과 딸의 시체를 발견할 때, 수잔은 불안한 마음에 딸에게 전화를 건다. 그녀의 딸은 시체와 같은 자세로 누워있다. 수잔은 ‘딸의 시체’라는 이미지에 현재 다 자란 허튼과의 사이에서 난 딸을 떠올렸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생각했을 딸은 수잔에 의해 사라진 아기일 것이다. (수잔이 스스로의 신체에 대해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과 별개로 에드워드는 수잔의 선택에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이는 여성의 임신중단권이 비도덕적 행동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 사이의 사적인 감정 문제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소설 속 토니는 점점 변해간다. 처음에 그는 나약하고 무력한 존재다. 에드워드 또한 마찬가지다. 에드워드는 수잔의 오빠가 자신을 좋아했던 사실을 알지만 그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조용히 연락을 끊는다. 그는 태생적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그는 수잔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겪고 변한다. 소설 ‘녹터널 애니멀즈’는 에드워드가 심적으로 겪어야 했던 고통을 이야기로 표현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이 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 나약한 토니에게 바비가 다가온다. 바비는 토니가 직접적으로 복수하도록 움직이게 만든다. 상처(부인과 딸의 살해) 이전에는 그에게 없었던 감정이다. 복수라는 속삭임. 한편, 수잔은 Revenge라는 텍스트의 작품을 직접 사고도 기억하지 못한다. 살인범들이 그들의 죄를 쉬이 떠올리지 못하는 것처럼.
루를 죽인 바비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토니는 그를 말렸어야 했다며 울부짖는다. 그의 착한 심성과 복수에 대한 욕망이 부딪힌다. 트레일러에서 레이와 일대일로 마주친 토니는 여전히 망설인다. 레이가 부인과 딸이 죽을만했다고, 그녀들을 모욕할 때도 그는 총을 쏘지 못한다. 하지만 ‘넌 약해 빠졌어’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는 결국 방아쇠를 당긴다. 그 말은 수잔이 에드워드에게 언제나 하던 말이었다. 복수를 끝낸 토니는 그 자신도 시력을 잃는다. 토니는 결국 넘어지며 스스로에게 총을 쏘게 되고 헐떡이는 토니의 숨소리 위로 수잔의 숨소리, 심장소리가 겹쳐진다. 그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수잔이 토니의, 에드워드의 심정에 마침내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수잔은 에드워드를 만나기로 한다. 그녀는 그녀가 현존하는 세계와는 다른, 과거의 로맨틱하고 멋진 세계로 되돌아가기로 꿈꾼다. 하지만 레스토랑에서 기약 없이 에드워드를 기다리던 수잔은 비로소 자신이 소설 속의 살인범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 훌륭한 소설이 19년에 걸쳐 이뤄낸 복수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