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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아리콩 Aug 31. 2022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속물

영화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여기 가장 인간적인 여우가 한 마리 있다. 그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을 중시하고, 자기 말만 하고 남의 말은 듣지 않는, 오만하고 허세로 똘똘 뭉친 속물이다. 우습게도 가장 인간적인 이 여우는 야생동물의 본능에 따라 살기를 추구한다. 여우력으로 12년째 도둑질에서 손을 털고 지역 신문기자로 살아오던 미스터 폭스는 가난한 굴 생활이 지긋지긋하다.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던 부인 펠리시티와의 약속을 저버린 채 마을의 농부들, 보기스, 번스와 빈을 털기로 마음먹는다. 폭스의 아들 애쉬는 작고 왜소한 찌질이로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그는 운동신경이 뛰어난 아버지 폭스를 닮으려 노력하지만 타고난 사촌 크리스토퍼슨과 비교당하며 질투심을 느낀다.


 웨스 앤더슨의 첫 번째 애니메이션 영화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에는 그의 미적 취향이 오롯이 녹아있다. 한 땀 한 땀 장인정신으로 만들어낸 스톱모션 장면들은 여타 다른 애니메이션 영화들과는 다른 질감을 선사한다.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털을 보면 누가 봐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임을 알 수 있도록 거친 느낌을 표현한다. 그럼에도 캐릭터들은 실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생함을 보여준다. 요즘의 3D 애니메이션이나 다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이 완벽하게 매끈하고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덜 인간적이었다면, 웨스 앤더슨의 캐릭터들은 훨씬 거칠고 부자연스럽지만 인간적이다. (여우지만)


 감독은 왜 폭스를 그토록 인간적으로 표현했을까? 폭스가 도둑질을 시작한 것은 야생동물의 본능보다는 인간의 본능, 가진 자들을 한 방 먹이고 싶다는 객기와 남들에게 으스대고 싶다는 허세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그는 자꾸만 야생동물의 본능을 들먹이며 변명을 한다. 그에게 있어 야생동물은 “멋있고 간지 나 보이는 삶”이다. 그가 말하는 이 “야생동물”의 정의는 영화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애쉬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지만 남들과 다른, 조금 뒤떨어진 아이로 취급받는다. 폭스는 “쟨 왜 저래?” 라며 애쉬를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펠리시티는 애쉬에게 말한다. “다르기에 멋진 점도 있지 않겠니?” 남들 말은 듣지 않고 가족과 친구들을 위험에 빠뜨리던 폭스가 애쉬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둘은 성장한다.

 이 영화에서 야생동물이 진정 의미하는 바는 “다양성”이다. 여러 모습의 동물들처럼 우리 모두가 각자 나름의 장단점을 지닌 다르지만 특별한 존재들이라는 것.


 크리스토퍼슨과 꼬리를 되찾아 돌아가는 길. 그들은 야생 늑대를 마주한다. 늑대는 저 멀리 설산의 절벽 위에 서있다. 그는 폭스처럼 옷을 입지도, 말을 하지도, 두 발로 걷지도 않는다.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의 세계에서 유일한 진짜 야생동물이다. 폭스는 말한다.


“정말 아름다운 동물이야. 행운을 빌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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