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셉션>
죽음 때문이건 혹은 다른 이유 때문이건 우리는 언제나 가까웠던 이들과 이별을 겪는다. 상처를 묻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그 기억은 때때로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 내가 저렇게 했더라면, 이런 상황이 오지는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무의식 저편에서 끊임없이 재생된다. 나 또한 이별한 사람들이 꿈속에 등장하는 경우를 자주 겪는다. 단순히 그들을 다시 보고 싶다는 감정을 넘어서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꿈속에서 그들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오해를 풀고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영화 ‘인셉션’은 떠난 이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마음에 대한 영화다.
영화는 꿈이고, 꿈은 영화다. 인간이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상상이라는 점에서 둘은 크게 차이가 없다. 우리는 매일 밤 자신의 무의식이 연출하는 영화를 시청하는 셈이다. ‘인셉션’은 코브의 무의식이 만들어 낸 꿈이다. 맬은 떠났지만, 코브는 맬을 놓아줄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코브의 무의식을 지배해 그의 뇌는 계속해서 맬의 형상을 그려낸다. 이것이 꿈인지 실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의 뇌는 그것을 명확히 구분해내지 못할 테니까. 영화의 모든 과정은 코브가 자신의 죄책감을 떨쳐내기 위한 방어기제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아내를 죽음으로 몰고 간 과거를 코브의 무의식은 용납할 수 없다. 때문에 코브는 고장 난 시디처럼 끊임없이 과거를 반복하여 재생한다. 자기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계속 상처를 들여다는 것이다.
코브의 꿈은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것. 맬의 살인범으로 수배당해 아이들을 떠나야 했던 코브는 사업가 사이토에게 매혹적인 제안을 받는다. 상대 사업가인 로버트 피셔에게 인셉션, 아이디어를 심는 일에 성공한다면 수배를 풀어주겠다는 제안이다. ( 이 인셉션이라는 개념은 곤 사토시 감독의 2006년작 ‘파프리카’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파프리카’에서는 DC미니라는 기기를 이용해 타인과 꿈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해진 세상을 그리고 있다.) 코브에게 있어 이 인셉션에 성공하는 것은 과거, 즉 맬을 극복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코브의 무의식은 양가적인 감정에 부딪힌다. 그는 맬을 극복하고 싶으면서 맬을 극복하고 싶지 않다. 둘 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맬을 지우는 것도, 맬을 지우지 않는 것도 그에게는 고통이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 내내 선택의 기로에 선다. 죄책감을 떨쳐낼 것인가, 죄책감에 매몰될 것인가. 맬은 꿈속에서 사사건건 코브의 일을 방해하고 나선다. 이는 일상에서 죄책감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기도 하다. 그것에 매몰되어 버리면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영화의 후반부, 코브는 마지막 기로에서 맬을 영원히 떠나보내기로 마음을 먹는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아이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사랑했던 사람을 진정으로 놓아주는 일은 이토록 지리하고 긴 과정을 거친다.
믿거나 말거나 ‘인셉션’은 힐링 영화다. 떠나버린 이에 대한 상처를 직면하고 그것을 놓아주는 과정이다. 인간은 언제나 이별을 겪는다. 이별의 기억은 인간을 괴롭히지만 이 또한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에 겪어야만 하는 반작용이다. 사랑하고 이별하고 극복하고. ‘인셉션’은 삶에서 반복되는 하나의 과정을 아름답게 풀어낸 한 남자의 꿈을 그린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