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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성 Jun 25. 2019

인공지능 살인 재판

단편소설

자살을 결심한 날, 그의 두 번째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는 오래전 아버지라 불린 남자다.


1.

소피아는 한참 동안 서서 그림을 봤다.

아치형의 이국적인 커다란 문, 그 너머 바다가 펼쳐진 그림이었다. 아치형 문 앞에 놓인 캔버스에도 역시 바다가 그려져 있어 얼핏 보면 배경과 하나처럼 보였다. 그림 속의 그림처럼. 보고 있자니 자신이 있는 병실도 그림의 일부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건조한 푸른빛의 바다. 게다가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오브제들까지. 이질적인 오브제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그림에 자꾸 시선이 가는 이유일까? 어쩌면 작은 창문 밖에 보이는 녹색 풍경과 캔버스 속의 바다가 주는 묘한 대비 감일 지도. 온통 하얗게 칠해진 정육면체 병실 안에 유일한 인테리어라서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넋 나간 사람처럼 뭘 그렇게 쳐다봐. 얼른 와서 일으켜 세우지 않고. 굼떠가지고. 쯧.”

언제 깨어났는지 노인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했다. 이글거리는 사막 한가운데 바짝 마른나무처럼 노인의 몸은 조금만 힘을 주면 우두둑하고 부러질 것 같았다. 소피아는 노인을 부축했다.

“왠지 눈에 익어서요.”

마른기침을 연신 내뱉는 노인의 얼굴은 잿빛이었다. 소피아는 물을 따라 노인에게 건넸다. 겁에 담긴 물의 반은 노인의 입으로 흘러내렸다. 물을 마신 노인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저런 흔해 빠진 바다를 어디서 봤다고.”

노인은 그림을 보기 위해 초점을 맞추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소피아는 탁자 위에 안경을 집어 노인에게 건넸다. 안경 너머 그림을 보는 노인의 눈은 여전히 일그러졌다.

“르네 마그리트 작이군. 꼴에 그림 보는 눈은 있네. 보면 볼수록 묘한 느낌이 들지.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가 그림인지 경계가 모호한 그림 아닌가?”

노인을 부축하고 있는 소피아는 고개를 돌려 그림을 쳐다봤다. 

경계선. 잡힐 듯 말 듯 한 단어였는데 노인이 쥐어줬다.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선에 있는 노인과 같았다.


*


노인의 대소변에서 악취가 점점 심해졌다. 죽음을 앞둔 인간의 냄새? 어쩌면 한 인간이 살아온 삶에 깊숙이 배어 있는 삶의 냄새일지도 모른다. 소피아는 더러워진 시트와 옷을 세탁실에 맞기고 돌아왔다. 병실 안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문 앞에 멈춰 섰다.

“천년만년 살겠다고? 기가 막혀서. 노인네 미친 거 아냐!”

“오빠. 조용히 좀 해. 듣겠어. 노인네가 정신은 오락가락해도 귀는 얼마나 밝은데.”

노인의 아들과 딸이었다. 노인의 모습을 그대로 찍어낸 붕어빵 같은 두 사람. 

노인은 미국에서도 손가락 안에 드는 군수업체 회장이었다. 40년을 넘게 그가 만들어낸 무기는 전 세계 인구를 두 번이나 몰살하고도 남을 거라고 노인은 우스갯소리처럼 말하곤 했다. 그렇게 말하며 웃는 노인의 얼굴에는 그로 인해 죽어간 이들의 숫자만큼이나 주름이 가득했다.

3년 전 어느 날 노인은 갑작스럽게 쓰러져 시카고에 있는 이 요양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곳에 온 후로 노인의 자식들은 매일 같이 찾아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지극정성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소피아는 두 남매의 표정을 보자 바로 알아차렸다. 노인은 이래저래 경영권 승계를 미뤘다. 저들이 흥분한 이유는 얼마 전 다년간 휴먼스사의 기술진 때문이었다. 

“회장님의 의식을 데이터로 변환해서, 여기 보시는 새로운 몸에 이식하면 됩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1시간 도 채 안 걸리는 간단한 시술이죠. 100% 안전한 방법이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신청한 VIP 회원만 해도 이미 1만 명이 넘을 만큼 인기가 대단합니다. 미 대통령뿐만 아니라, 영국의 수상, 그리고 인기 록스타 데니 로저스도 저희와 계약을 했으니까요. 곧 회장님도 20대의 육체로 영원한 삶을 누리실 수 있으실 겁니다.”

두툼한 안경을 쓴 남자는 알고리즘을 설계한 엔지니어였다. 노인은 손에 든 스마트패드를 귀찮다는 듯 건성으로 넘기더니 침대에 휙 던졌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나보고 악마에게 영혼을 팔라고?”

노인의 말에 웃고 있던 엔지니어는 난색을 하며 말했다. 

“아, 악마에게 영혼을 팔다뇨? 회장님 같은 1%만이 누릴 수 있는 신의 축복이죠.”

노인은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치더니 소피아 정을 보며 한마디 던졌다.

“자네 생각은 어때?”

아침 식사를 들고 오던 소피아는 하마터면 쟁반을 떨어뜨릴 뻔했다.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소피아의 입술을 쳐다봤다.

“글쎄요. 축복인지 저주인지.......”

저주라는 말에 엔지니어의 얼굴은 굳어졌다. 노인은 큰 소리로 웃었다.

“허허. 순진하긴. 당연히 신의 축복 아닌가? 안 그래? 물론 자네 같은 인간들에게 영생은 저주나 마찬가지겠지만.”

그제야 엔지니어는 안심한 듯 노인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소피아는 노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모두가 인간처럼 사는 게 아니다. 적어도 자신에게만큼은 삶은 고통이자 저주였으니.

소피아는 몸을 움츠리며 무작정 걸었다. 11월 시카고의 차가운 밤공기가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집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가봐야 기다리는 건 양아버지의 무자비한 학대뿐. 양어머니가 자살을 했을 때 그녀의 무덤 앞에서 다짐했었다. 당신처럼 살지 않겠노라고. 하지만 그런 자신도 그녀와 다를 게 없었다. 문득, 노인이 한 말이 떠올랐다.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나?’

다시 묻는다면 반드시 이렇게 대답하리라. 당신은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고. 그래서 살아 있는 시간만큼 가치가 없는 인간들을 모조리 죽여 달라고. 양아버지 같은 더러운 인간을. 

소피아는 차도로 발길을 옮겼다. 그녀의 옆으로 쌩하고 차들이 지나갔다. 여기서 한 발만 더 가면 이제 편히 쉴 수 있으려나? 불행히도 그럴 용기조차 없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삶도 죽음도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니. 

그때, 한통의 문자가 왔다.

- 친부의 부고를 알립니다. 변호사 박민규. 


*


아버지라고 불렀던 남자는 두 번 죽었다. 소피아가 스무 살이 될 무렵 사형집행으로, 그리고 십 년이 지난 지금. 이미 죽은 사람이 또 죽다니? 통화하는 내내 남자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떠들어댔다. 소피아는 전화를 끊고 싶었다. 그건, 반복적인 단어 때문이었다. ‘아버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귀에서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나니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살해’ ‘소송’ ‘보상금’이라는 단어만 맴돌았다. 보상금이라는 단어를 움켜줬다. 소피아는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시신을 보기 위해 간 곳은 영안실이 아닌 산업폐기물 처리장이었다. 

차가운 콘크리트 복도를 걷는 자신의 구두 소리가 머리를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복도는 끝도 없이 길게 느껴졌다. 이승과 저승을 잊는 차갑고 긴 터널. 

걷는 동안 같은 질문을 도돌이표처럼 반복했다. 이십 년이나 지난 지금, 시신을 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가 두 번 죽었건, 열 번 죽었건 무슨 상관인가? 자신에겐 오래전부터 아버지는 사전에서 지워진 단어였다. 원망조차도 만료된 공소시효처럼 사라졌다. 이제 와서. 아버지라니. 보상금만 챙기면 그만이었다. 그 돈은 최소한 자신을 인간답게 해 줄 것이기에.

복도 끝에서 한 남자가 걸어오는 소피아를 빤히 쳐다봤다. 통화한 남자였다. 머리는 온통 벗겨져 남아 있는 머리카락을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얼굴은 온통 검버섯으로 덮여 있었다. 곁에 다가가자 찌든 담배와 땀이 뒤섞여 노숙자 같은 냄새가 났다. 이런 남자가 변호사라니? 남자는 소피아와 눈이 마주치자 누렇게 착색된 이빨을 드러냈다.

“연락드린 박민규라고 합니다.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게 과연 그가 감사할 일인가? 소피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박 변호사는 커다란 철제문을 열자 쇳소리가 끼익 하고 귀를 긁었다. 싸늘한 냉기에 소피아는 몸을 살짝 떨었다. 실내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긴 복도 사이로 철제 캐비닛이 도서관 책꽂이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박 변호사는 걸음을 멈췄다. 

A-367

그가 멈춰 선 캐비닛 앞에 알 수 없는 기호가 적혀 있었다. 커다란 철제 서랍을 잡아당기자 독한 알코올 냄새가 훅하고 코 속을 파고들었다. 서랍 안은 텅 비어있었다. 소피아가 남자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는 서랍 끝 어두운 곳으로 눈짓을 했다. 어둠 속에서 뭔가 어렴풋이 보였다. 가까이 얼굴을 밀었다. 뇌였다. 소피아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눈을 찡그렸다. 소피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박 변호사를 봤다. 아버지라고 했다. 

‘아버지’ 

남자의 입에서 열두 번째 듣는 말이었다. 1.4kg의 저 덩어리가 아버지라니. 이제는 얼굴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저 세포 덩어리가 아버지라니. 물컹하고 쭈글쭈글한 저 단백질 덩어리처럼 아버지라는 말이 역겹게 들렸다. ‘아버지’라는 말 좀 그만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다 역한 냄새에 다시 삼켰다.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었다. 그는 소피아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더니 얼른 캐비닛을 닫았다. 

밖을 나오자마자 소피아는 입에 담배를 물었다. 냄새를 빨리 지우고 싶었다. 소피아가 가방을 이리저리 뒤적거리자 박 변호사는 라이터를 내밀었다. 불을 붙여준 뒤 그도 입에 담배를 물었다. 그는 연기를 길게 훅하고 내뱉으며 말했다.

“아버지는 얼마 전 살해되셨어요.”

담배 연기는 그가 내뱉은 ‘살해’라는 말을 뿌옇게 뒤덮었다.


2

“사건 번호 13048-7, 인공지능 페기 처분의 불법성 여부에 대한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판사의 말에 박 변호사는 벌떡 일어나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판사님. 이건 살인사건 혐의에 대한 재판입니다. 정정을 요청합니다.”

“기각합니다. 아직 판결도 나지 않은 사건입니다. 자리에 앉아 주세요.”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법정 안은 방청객과 기자들로 가득 찼다. 

입장하기 전 박 변호사는 이 사건에 많은 이목이 집중될 거라고 했다. 차세대 인공지능에 막대한 돈을 투자한 기업과 관련 투자자, 법안을 통과시킨 정치인, 그리고 언론까지도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며. 게다가 인공지능 살인사건이라는 전례 없는 재판이다 보니 대중의 관심이 집중됐다.

박 변호사는 테이블 위에 변론 자료를 올려놓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판사와 피고소인의 법률 대리인은 모두 인공지능 로봇이며 휴먼스사에서 제작된 제품이라 재판에 불리할 수 있다고 했다. 인공지능과의 법정 대결이라니? 게다가 피고 측의 제품이 판결을? 소피아는 재판에 승산이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판사의 안면 근육은 정교하게 움직였다. 소피아는 가끔씩 머리를 끌쩍이는 저 습관은 저장된 기록일까 아니면 만들어진 습관일까 궁금해졌다

“원고는 휴먼스사의 인공지능 제품, A-367의 폐기 처리에 관해서 이를 살인 사건이라며 고소하셨습니다. 맞습니까?”

“네.”

판사의 질문에 박 변호사는 짧게 대답했다.

“2027년 휴머노이드 법, 즉 인간의 의식과 인공지능의 결합에 대해 국회에 승인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살인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뭐죠?”

판사의 말이 끝나자 박 변호사는 일어나 대답했다.

“휴머노이드 법은 잘 알고 있습니다. 위헌을 따지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차상의 문제점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인가요?”

“관련법에 따르면 의식 이전은 가족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휴먼스 사는 그런 동의 절차를 무시하고 불법적으로 정철민의 의식을 백업받았습니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명백한 살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 타인을 살해한 아버지가 '인간의 존엄성‘의 대상이 되다니. 소피아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원고의 주장에 대해 피고 측 변호인은 답변해주시겠습니까?”

맞은편에서 앳된 얼굴의 남자가 일어섰다. 잡티 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에 요목조목 잘 생긴 미소년. 예상 밖이었다. 소피아 정 옆에 앉아 있는 박 변호사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2023년 고등학생 3명을 살해한 정철민은 사형수로 복역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뒤 2033년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사형이 집행하기 전 정민철은 휴먼스사에 자신의 의식을 기증한다는 서명을 했습니다. 정철민은 당시 10살인 정서윤이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그가 복역하기 전 2023년 11월, 정철민은 딸은 미국인 다니엘 윌슨에게 입양됐습니다. 즉, 법적 대리인으로 자격이 상실된 시점입니다. 관련 서류를 증거로 제출하는 바입니다.”

휴먼스사의 변호인은 스마트 태블릿에 있는 자료를 판사에게 전송했다. 소피아가 박 변호사를 쳐다보자 그는 예상한 바라는 듯 가볍게 웃었다. 한 시간 내내 박 변호사의 주장을 상대는 가볍게 받아쳤다. 소피아는 승산이 있는 싸움인지 의심스러웠다.

판사는 피고 측 변호인에게 말했다.

“피고 측 휴먼스사 변론해 주세요.”

“고소인은 입양 후 한 번도 친부인 정철민을 찾지 않았습니다. 왜죠?”

상대편 변호인이 소파아의 얼굴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박 변호사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판사에게 말했다.

“피고소인 측은 사건과 관련 없는 내용으로 재판의 본질을 흐리고 있습니다.”

“살인자의 딸이라는 것이 부끄러워서 아닌가요?”

“피고 측은 지금 본 사건과 관련 없는 내용으로 고소인의 인격을 모욕하고 있습니다.”

박 변호사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판사는 자리에 앉으라고 지시했다.

“인정합니다. 피고 측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친부를 찾아온 이유에 대한 설명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모든 시선이 소피아에게 집중됐다. 박 변호사는 소피아를 보며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사인을 했다. 소피아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어떤 인간인지 궁금했습니다.”

소피아의 대답은 짧았다. 박 변호사의 얼굴은 휴지통에 버려진 원고지처럼 구겨졌다. 

피고 측 변호인의 표정에 묘한 미소가 감돌았다.

“정서윤씨 직업은 어떻게 되죠?”

박 변호사는 소리쳤다.

“사건과 상관없는 질문입니다.”

“계속하세요.”

판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상대편 변호인은 비웃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서 왠지 그렇게 느껴졌다.

“소피아 씨는 아마도 돈이 필요했겠죠. 보상금 말이죠.”

“피고소인은 지금 사건과 관계없이 원고 측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피고소인은 상대의 인격을 훼손하는 발언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1차 공판은 그렇게 끝났다. 김 빠진 공방뿐이었다. 2차 공판은 일주일 뒤로 잡혔다. 

법원 앞을 나오자 이미 수많은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에는 인공지능 연구에 대한 찬반 시위로 시끄러웠다. 한쪽에서는 ‘휴머노이드 법안을 당장 철폐하라’며, 반대편에는 ‘인류를 위한 진보를 막으려는 한심한 러다이트.’라며. 소피아를 본 기자들은 피를 맛본 모기 때처럼 달려왔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플래시 세례가 퍼부었다. 기자들은 소형 마이크를 들이대며 정신없이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아 본 건 처음이었다. 소리도 사람들도 떡진 것처럼. 머리가 핑핑 돌았다. 박 변호사는 능숙하게 기자들을 헤치고 소피아를 차에 태워 호텔로 향했다. 

“예상했던 겁니다. 저들은 가족사를 가지고 프레임을 짤 겁니다, 언론도 한패니까요.”

호텔 키와 함께 변호사는 낡은 카메라 한 대를 소피아에게 건넸다.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품이라고 했다.

“Nikon사에서 나온 마지막 필름 카메라더군요.”

소피아는 낡은 카메라를 이리저리 살폈다. 아버지에 대한 유일한 흔적이라니. 저 안에 뭐가 있을까? 소피아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뭐가 있든 무슨 상관이냐며 카메라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침대에 그대로 쓰러졌다. 지금은 무언가를 생각할 기력이 없었다. 

다음 날부터 기자들이 호텔로 몰려와 소피아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문틈으로 기자는 고개를 들이밀며 꼬치꼬치 물었다. 하나같이 아버지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소피아는 기억조차 없었기에 할 말이 없었다. 언론은 이 재판을 따분한 세상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자 삼류 드라마처럼 다뤘다. 이십 년 전 정철민의 살인 사건과 소피아의 입양 그리고 소송을 하게 된 것을 재조명했다. 뉴스가 나간 이후 박 변호사는 공판 전까지 누구든 상대하지 말라며 매일같이 전화로 체크했다. 

TV에서는 매일같이 ‘휴머노이드 법’에 대한 찬반 토론이 이어졌다. 찬성과 반대자 모두 맥락 없고 공허한 토론이었다. 법원 앞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인공지능 로봇법에 대한 반대 집회가 열렸다. 집회 자들은 소피아의 이름을 외치며 함께 끝까지 용기를 내서 싸워달라고, 그러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되찾아 달라고 했다. 한심한 것들. 인간의 존엄성은 승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을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채널을 돌려도 온통 소송과 관련한 내용들뿐이었다. 소피아는 TV를 껐다. 닫힌 커튼을 젖혔다. 햇빛이 순식간에 쏟아졌다. 눈을 찡그리며 밖을 봤다. 진흙탕 같은 세상. 이곳이 현실이 아니길 바랬다. 병원에 걸려 있는 그림처럼, 어쩌면 현실은 다른 곳에 존재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박 변호사의 전화를 받은 게 후회됐다. 그때, 목숨을 끊었다면 얼마나 홀가분했을까를 생각했다. 합의금이라는 말에 헛된 희망을 찾으려고 했다니. 그때는 지긋지긋한 시궁창에서 벗어날 유일한 탈출구이자, 한때 아버지라고 부른 인간이 남겨준 유일한 유산이라고 믿었다. 소피아는 테이블 위에 놓인 카메라를 봤다.

박 변호사와 저녁 식사를 한 소피아는 카메라를 꺼내며 말했다.

“이 카메라 팔면 얼마 나올까요?”

“네? 그래도 아버님의 유품인데?”

“상관없어요.”

“음....... 필름 카메라는 이제 유물이나 다름없긴 한데. 이런 카메라를 고가로 매입하는 사진작가가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한번 확인해보죠.”

이틀 후 변호사는 호텔로 찾아왔다. 그는 테이블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사진이었다.

“필름이 남아 있어서 현상해 온 겁니다. 온통 소피아씨 사진들이네요.”

사진 속에는 어린 소피아 사진이 가득했다. 소피아는 처음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봤다. 소피아는 사진을 하나씩 넘겨봤다. 박 변호사는 물었다.

“찾는 사진이라도 있어요?”

“아뇨.”

거짓말이었다. 소피아는 엄마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사진 속에는 엄마가 없었다. 사진을 보던 소피아의 얼굴은 굳어졌다. 한 장의 사진에 그림이 있었다. 소피아가 요양원에서 본. 사진 속에서 어린 소피아가 그 그림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뭔가가 속에서 꿈틀거렸다. 그림은 소피아가 애써 지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잔상이었다. 그래서 그 그림에 눈길이. 폭죽이 터지듯 기억의 파편들이 머릿속에서 터졌다. 아직은 희미하지만. 웃는 엄마의 얼굴과 두 팔을 벌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마음속 심연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묵직한 덩어리 같은 게 치밀어 올라왔다. 불쾌함이 아니었다. 두 뺨에 끈적거리는 액체가 느껴졌다. 이 모습에 박 변호사는 당황했다. 그녀의 두 볼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입술에 닿은 눈물은 뜨겁고 짭짜름했다. 


*


두 번째 공판, 판사가 들어오자 모두 자리에 착석했다.

“사건 번호 13048-7, 인공지능 살인 사건에 대한 공판을 이어가겠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의 따라 고소인은 피고소인의 범죄 사실을 입증해주세요. “

박 변호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법정 중앙으로 걸어 나와 피고 측을 향해 말했다.

“정철민의 사형 집행 후 의식을 이식받았다고 했습니다.”

피고 측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 변호사는 만족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번엔 판사를 보며 말했다.

“증거로 요청한 영상을 잠시 보여드리겠습니다.”

방청객들은 어리둥절했다. 법정 안이 암전 되면서 허공에 홀로그램 영상이 재생됐다. 힌 가운을 입고 머리가 벗어진 남자가 등장했다. 아래에 인터내셔널 병원의 외과의사라고 자막이 떴다. 의사는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인간의 죽음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심장이 정지된 상태를 말합니다.”

“심장정지가 곧 사망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영상에서 박 변호사의 음성이 나왔다. 

“아닙니다. 심장이 멈추고 나서 몇 분간 인간의 뇌는 아직 살아 있는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심장의 활동이 멈추면 뇌로 공급되는 산소가 중단되기에 결국 인간의 뇌도 정지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를 의학적으로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화면은 여기서 정지됐다. 박 변호사는 피고소인 측을 향해 다시 질문했다.

“사형집행 이후 의식을 이식했다고 하셨죠?”

피고 측 변호사는 표정의 변화 없이 박 변호사를 쳐다봤다. 박 변호사는 다시 판사를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휴먼스사는 인간의 의식은 전기적 신호라고 했습니다. 전기적 신호는 뇌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만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박 변호사는 잠시 말을 멈췄다. 법정 안의 모든 시선이 박 변호사의 입술에 모아졌다.

“의식은 전기적 신호라고 했는데, 인간의 뇌가 정지하면 전기적 신호는 사라집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은 정철민의 의식을 다운로드할 수 있죠? 의식은 뇌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만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즉 이 실험 자체가 명백한 위법 행위라는 증거입니다.”

방청객은 웅성거렸다. 기자들의 타이핑 소리와 함께 카메라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졌다. 판사는 잠시 정숙을 요청했다. 피고 측 변호사는 일어나 답변했다. 표정은 흔들림 없었다.

“장기 이식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장기를 이식하기 위해서는 세포가 살아 있을 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장기를 이식한 의사를 살인죄가 성립이 될까요? 게다가 이식된 장기를 이식한 사람이 다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궤변이었다. 상대편 변론에 박 변호사는 피식하고 웃었다. 흔들림 없는 저 고철덩어리의 표정 뒤에서 과부하가 걸린 회로를 상상하며. 아직 재판에 이긴 건 아니었다. 승리를 확신하기에는 일렀다.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정도였다. 박 변호사는 소피아의 표정을 봤다.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이었다.

법원을 나오자 비가 퍼부었다. 택시 안에서 소피아는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박 변호사가 안내한 곳은 강남의 한 이태리 음식점이었다. 미슐랭 별 5개를 받은 곳이라며 음식 자랑을 늘어놨다. 식사하는 내내 박 변호사는 오늘 재판으로 흐름이 반전된 것 같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떠드는 동안 소피아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안색이 안 좋네요?”

박 변호사는 걱정되는 듯 물었다. 소피아는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조금 피곤해서요.”

소피아의 얼굴에는 핏기라고는 없었다. 

“올라가서 좀 쉬는 게 좋겠어요.”

소피아는 ‘네’라고 대답하고 자리에 일어나려다 멈칫하더니 다시 앉았다. 계산서를 든 박 변호사는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소피아를 쳐다봤다. 크게 심호흡을 하던 소피아가 입을 열었다.

“사람이 죽으면 기억도 사라지겠죠?”

“음. 아마도 그렇겠죠. 왜요?”

“아뇨.......”

소피아는 잠시 말을 삼키는 가 싶더니 다시 내뱉었다.

“아까 재판장에서 말씀하실 때 살아있는 상태에서만 이식이 가능하다고 했잖아요.”

“그렇죠.”

“그럼 그 사람 어딘가에 기억이 남아 있을까요?”

“기억을 제거했으니 아마도....... ”

소피아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결과를 어떻게 보세요?”

박 변호사는 뭔가 중요한 결심이라도 한 듯 말했다.

“아직까지는 반반. 추가로 휴먼스사에 자료를 요청할 겁니다.”

“무슨 자료요?”

“정철민씨의 실험 기록.”

박 변호사의 말에 소피아는 다시 포크를 들었다.


3.

아침부터 비가 세차가 내렸다. 폭우 속에서도 법원 앞은 방송국과 방청객들로 가득 매웠다. 마지막 재판을 앞두고 관심이 집중됐다. 언론은 이 사건을 인간과 인공지능의 전쟁이라며 새로 개봉한 SF 영화인양 기사를 썼다. 피고소인 측은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반면에 박 변호사는 초조한 듯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그의 말대로 확률은 반반이기에. 결정적인 뭔가가 아니면 승리는 쉽지 않다는 듯.

판사가 입장하자 모두 기립했다. 좌우를 둘러본 판사가 자리에 앉자 모두 착석했다. 

“원고 측 변론하세요.”

잠시 심호흡을 던진 박 변호사는 일어났다. 박 변호사는 사진 몇 장을 허공에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어린 남자아이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여자가 팔을 벌려 아이를 안으려는 사진이었다. 모두들 의아해했다. 

“제 어릴 때 사진입니다. 기억에는 없지만 아마 10살 때쯤인 거 같습니다. 저분은 저의 어머니죠. 11살 때 돌아가셔서 기억이 희미합니다.”

“본 사건과 관련 없는 내용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판사의 말에 박 변호사는 홀로그램을 끄며 말을 이었다.

“의식과 자아는 다릅니다. 의식이 있다고 자아는 아니죠. 기억은 한 개인이 누구냐를 말해줍니다. 방금 본 사진 속의 여자분은 제 기억에는 없지만 사진 속에서는 그걸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기억은 곧 자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휴먼스사에 요청한 정철민의 실험 과정에 대한 데이터입니다.”

다시 한번 허공에 홀로그램이 떴다. 알 수 없는 숫자와 기호들이었다.

“화면의 데이터는 정철민의 의식입니다.”

다시 화면에는 기호가 아닌 영상이 재생됐다.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들이 화면을 응시하는 영상이었다. 

“이건 그의 의식 속에서 남아있는 실험 장면입니다.”

실험실의 영상들이 몇 배속으로 빠르게 재생됐다. 마치 한 장면이 계속 반복되듯 같은 영상이 재생됐다. 

“하고 싶은 말씀이 뭔가요?”

판사는 재촉하듯 말했다.

“혹시 이 영상 속에서 이상한 장면을 보신 분 있으신가요?”

알 수 없는 박 변호사의 말에 모두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박 변호사는 영상을 다시 뒤로 감은 뒤 한 장면에서 멈췄다. 아버지의 사진 속에 있던 사진, 요양원에 본, 바다가 그려진 그림을 보는 어린 소피아의 사진이었다. 방청석은 다시 술렁거렸다.

“정철민의 의식에 담긴 기록 중에 한 장면입니다. 삼십 프레임 중에 한 장면입니다. 여기 웃고 있는 이 아이가 바로 소피아, 아니 정철민의 딸 정서윤입니다. 왜 이게 여기에 있을까요?”

박 변호사는 피고 측 변호사를 쳐다봤다. 상대의 표정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제가 말씀드릴까요? 이건 정철민의 기억입니다. 다시 처음 제가 한 말로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의식과 자아는 다르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자아는 개인의 정체성, 즉 그 사람만의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실험실에서 죽기 전까지 자아가 남아 있는 상태였습니다. A-137은 정철민이자 여기 있는 소피아의 아버지이며, AI가 아닌 우리와 같은 한 인간입니다. 재판장님, 본 사건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훼손이며 엄연한 살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며 변론을 마치겠습니다.”

법정 안은 조용해졌다. 박 변호사는 소피아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으며 자리에 앉았다. 

소피아는 허공에 떠있는 사진을 바라봤다. 그림을 보고 있는 어린 소피아를.

법정에 들어오기 전에 인터넷으로 그림을 검색했다. 르네 마그리트의 [인간의 조건], 1935년 작. 그림 속 배경인 바다와 그 앞에 놓인 캔버스 속의 바다, 어떤 게 현실이고, 그림일까? 다시 봐도 모호한 그림이었다.

그림을 계속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이건, 작가의 함정이었다. 두 바다 모두 작가가 그린 2차원 그림일 뿐이었다. 저 사진 또한 어쩌면 자신이 만들어낸 사고의 틀로 보고 있는 건 아닌가? 르네 마그네트의 저 그림처럼. 사진이 새롭게 보였다.

아버지의 시점으로. 소피아를 보는 아버지의 시점. 

그렇게 보니 이상하게 가슴 한 구석이 아려왔다.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눈물은 자신의 것이 아닌 아버지의 눈물 같았다. 


*


먹구름이 걷히고 햇빛이 강렬하게 비쳤다. 차에 올라타자 박 변호사가 말했다.

“이제 뭐 할 거예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생소한 질문이었다.

“글쎄요. 그런데.......”

소피아는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따가운 지 손바닥으로 가리며 말했다.

“왜 이 재판을 하려 했죠?”

“빨리도 물어보시네요.”

박 변호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결심하듯 입을 열었다.

“정철민씨의 담당 변호사였어요.”

그는 당시를 회상하는 듯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세 명의 미성년자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죠. 하지만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의외의 말에 소피아는 당황했다.

“그 학생들은 유아를 성추행했죠.......”

박 변호사는 말끝을 흐렸다. 그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 아이가.......?”

그는 대답 대신 연기를 훅하고 뿜었다.

“상대는 재벌 2세에 정치계 2세였죠. 돈이 넘쳐나는 곳이니 대형 로펌을 세웠고. 결국 유아 성추행에 대한 물증이 없다고 기각됐죠. 억울한 나머지 학생들을 찾아가 그저 진심 어린 사과만을 요구했지만, 오히려 학생들은 아버지를 폭행했죠. 만취한 한 학생이 들고 있던 양주를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그게 그만, 학생들 몸에 불이 붙어 버렸어요. 아버지는 불을 온몸으로 끄려다 심한 화상까지 입었지만 구하지 못했어요. 이해할 수 없는 건, 그 이후에 검찰은 서둘러 아버지를 기소했죠.”

박 변호사는 가루가 될 정도로 꽁초를 발로 비벼댔다.

“사형수로 복역하기 전에 저한테 딸을 입양시켜달라고 부탁했죠. 사형수의 딸로 살아가길 바라지 않았던 거죠.”

박 변호사가 얘기를 마치자 호텔에 차가 정차했다. 차에 내리며 소피아가 말했다.

“왜 굳이 이 장면만 남아 있었을까요?”

“음. 가장 소중한 기억이었나 보죠.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는 게 대단 한건 아니지 않을까요? 아주 사소한 기억이 오래 남기도 하니까. 아마도 제 생각에는 저 그림이 아니라 그림을 보고 있는 소피아씨 모습이 아버지의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쩌면....... 제가 아버지라면.”

그 많은 기억 중에 고작 이따위가 잊고 싶지 않은 것이라니. 고개를 까닥하고 차문을 닫으려는데 박 변호사는 한마디 덧붙였다.

“아버지라면.......”

아버지라면. 아버지라면. 소피아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딸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소피아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제 뭐 할 거냐고 질문하셨죠?”

차를 출발하려던 박 변호사는 소피아를 쳐다봤다.

“아버지의 의식을 저한테 이식할 거예요.”

그녀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아버지’라는 단어였다. 박 변호사는 잘못들은 게 아닌가 싶어 멍한 표정으로 소피아를 쳐다봤다. 

소피아는 웃고 있었다. 처음으로. 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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