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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성 Aug 19. 2015

끝내 못 버린 것

30년 전, 서울에서도 별을 꽤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등화관제를 하는 날이면 하늘은 온통 별천지였다.
당시 집에서 유일한 고가품이라고 할 수 있는 쌍안경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고작 볼 수 있었던 건 동네 집들 홈쳐 볼 수 있는 정도였다. 
지금의 쌍안경으로도 웬만한 별은 관측된다고 하는데
당시는 성능으로는 어림도 없었던 것 같다.

  

3년 전에 큰 맘먹고 망원경을 구매했다.
소박한 망원경 하나 사야지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매장에 들렀다.
대 포만한 돕소니안 12”(SKY-WATCHER 12" FLEX DOB)에 홀딱 반해버렸다.
반사식 망원경이라 행성 외에 DeepSKY(성운/성단/은하)까지 선명하게 관측이 되다는 점,
GOTO 기능을 추가하면 좌표만 입력만 해도 자동 탐색을 해준다고 한다.
직원의 현란한 말주변에 아차 싶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지갑은 다 털려버렸다.


아! 충동구매의 큰 후유증은, 하루만 지나면 관심이 확 식어 버린다는 것.

첫 날은 설레는 마음에 이것저것 만져보지만
결국 복잡한 기능에 매뉴얼은 뭐가 이리도 복잡한지.

기가 질려
다음에 해야지 하며 구석으로 밀어버린다.
다음 단계가 자기 합리화 단계이다.
기능이 너무 복잡해서 숙지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느니,
너무 크고 무거워서 이동하기 어렵다느니,
밤 공기가 차서 감기에 걸릴 수 있다는 별 핑계가 다 나온다.
그럼 볼 장 다 본거다.

결국, 3년째 제대로 된 관측 한 번 못해봤다.


얼마 전에 안 쓰는 물건 정리한답시고
책이며, 노트북이며, 기타까지 다 중고로 팔아버렸다.
마지막 남은 건 애물이 된 망원경.
한 달째 고민하다, 매각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하고 
제품 사진을 찍어서 중고장터에 꼼꼼히 정리해서 올렸다. 
이제 클릭만 하면 정든(?) 이놈과 작별을 해야 하는 순간.
심호흡을 크게 한 후, 팔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등록’을 클릭하기 전에 잠시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대 물었다.
폐 속으로 깊이 한 모금 들이는 순간 내 눈에는 밤하늘이 들어왔다.
날씨가 좋은지 은하수도 선명하게 보였다.
이런 날 관측하면 운 좋으면 목성도 볼 수 있으리라.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릴 적 남아있던 순수한 꿈을 단돈 몇 푼에 팔려고 했다니!
먼지가 수북이 쌓여도,
녹이 슬어 몸통이 움직이지 않아도,
10년 뒤에 다시 꺼내볼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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