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매일 아침 사직서를 가슴에 품는가
: 지옥철에서 쓰는 생존 일지
오전 6시 59분. 지하철 1호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틈이라곤 없는 이 빽빽한 공간에 내 몸을 구겨 넣는다. 타인의 샴푸 냄새와 덜 마른 옷 냄새, 그리고 피로에 절은 날숨들이 뒤섞인 공기. 이것이 나의 하루를 여는 첫 호흡이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신나는 아이돌 댄스곡이지만, 내 표정은 흡사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스마트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습관처럼 메모장 앱을 켠다. 그곳에는 작성일이 2년 전으로 찍혀 있는, 그러나 아직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한 글 하나가 저장되어 있다.
'사직서'
겨울철 가슴속에 품고 다닌다는 3천 원(붕어빵 값)보다, 나에게 더 뜨겁고 위안이 되는 존재. 나는 오늘 아침도 이 보이지 않는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출근한다.
"오늘 진짜 그만둔다, 내가."
이 말은 직장인들에게 '아침 인사' 혹은 '식사 기도'와 같다. 출근하자마자 터지는 팀장의 히스테리, 점심시간에도 울리는 업무 카톡, 분명 회의는 1시간을 했는데 결론은 "다시 검토해 봅시다"로 끝나는 허무함. 이 모든 순간마다 나는 마음속 뒷주머니를 만지작거린다.
'나한테는 비장의 무기가 있어. 언제든 이걸 던지고 나갈 수 있다고.'
역설적이게도, 사직서는 나를 회사를 떠나게 하는 도구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하는 부적이었다.
내가 이 회사를 당장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백 가지도 넘는다. 다음 달 만기인 전세 대출 이자, 나를 스쳐 지나가는 월급이라는 이름의 사이버 머니, 이직 시장의 한파, 그리고 무엇보다 '소속'이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
우리는 모두 자본주의의 노예라지만, 나는 꽤 성실하고 겁 많은 노예다. 카드값 알림 문자가 올 때마다 "그래, 팀장님이 저렇게 화를 내는 건 다 나에게 금융 치료를 해주기 위해서야"라며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하곤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굳이 '퇴사'와 '생존'에 대한 글을 쓰려 하는가.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그렇다고 무작정 "퇴사하고 네 꿈을 찾아라!"라고 외치는 무책임한 욜로(YOLO)를 찬양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기록하고 싶은 것은 그 사이의 '애매한 투쟁'이다.
월급은 받고 싶지만 영혼까지 팔고 싶지는 않은 마음.
인정받고 싶지만 호구는 되기 싫은 마음.
회사의 부품이 아니라,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고 싶은 욕구.
이 글들은 완벽한 커리어 우먼의 성공담도 아니고, 홧김에 회사를 때려치운 호쾌한 퇴사 무용담도 아니다. 사직서를 품에 안고서도, 묵묵히 제 몫의 업무를 해내는 평범한 직장인의 치열한 내면 일기다.
매일 아침 출근길, 지하철 창문에 비친 당신의 얼굴이 유독 지쳐 보인다면.
오늘 하루도 "네, 알겠습니다"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느라 속이 문드러졌다면.
부디 이 글이 당신의 퇴근길에 아주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우리의 사직서는 아직 주머니 속에 있다. 그것은 우리가 비겁해서가 아니라, 아직 지켜야 할 일상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사직서를 고쳐 쓴다. 그리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일단은, 살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