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추억 여행기
94. '라떼는' 소싯적 소풍, 1972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고향 용인에서 나온 사람은
알 것이다.
봄가을 소풍을
지겹도록 자연농원, 민속촌만 갔더랬다.
광주, 부산 사는 친구들에게는
'꿈의 동산'이겠으나
지척의 명소가 우리는 지겨웠다.
자연농원, 민속촌이 생기기 전
우리는 걸어서 가는
최대의 거리로 소풍을 갔다.
저학년 때는 말죽거리라고 칭하는
용인 시내와 양지읍 사이 계곡을 갔다.
아마도 사통팔달 조선시대
말을 관리하는 곳이었을 터.
그리고 중학교 때인가
화운사를 몇 번 갔다.
비구니 절로
지금의 수원 방향 삼거리 방향 절인데,
봄 땡볕에 검은 교복 입고
흙길을 터벅터벅 갔다.
그 덥고 건조한 날씨의
'짜증'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래도 뒷산에서 먹었던
김밥과 사이다 맛은 괜찮았다.
고등학교 때는 교련복 입고
어느 봄날 소풍도 아니고 훈련도 아니고
용인 IC 근처 해꼴(해골)이란 곳을 가서
식목일 나무를 심던 기억도 있다.
그렇게 당시엔 산불도 많이 나서
나무 심는 행사가 많았다.
드디어
1976년 자연농원이 개장했다.
국내 굴지의 삼성그룹이 지은
테마파크는 예나 지금이나 만원사례이다.
어린이날 어머니와 형제가 갔다가
비 오는 날 처마에서
김밥 먹었던 흑백 사진 같은 장면도
몰래 개구멍으로 들어오는 친구들이
많았던 것도 추억이다.
자연농원은 '농원'으로 허가받아
세제혜택을 누렸을 것이다.
그래서 튼실한 밤과 멧돼지 사육도 했다.
특히 멧돼지 고기가 맛났다.
당연히 우리 동네니까
아는 사람들이 직원으로 있었다.
당시 사촌 형이 직원인데
종이에 아무개 이름 쓰면
공짜로 놀이기구를 태워줘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던 기억도 있다.
고등학교 때는 아르바이트로
후룸라이드, 주차장에서
용돈도 벌었다.
후룸라이드 물난리에
손님들 목걸이와 모자가 날아가
일이 끝난 뒤 안 쪽 잔디밭에서
모자 줍는 게 우리의 전리품이기도 했다.
민속촌은 말 그대로 '민속마을'인데
좋은 것도 한두 번이지
늘상 일 년에 한 번은 갔다.
지금이야 이벤트도 하지만
우리 같은 시골 애들은 우리 집이나
민속촌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외국인과 '쌀나무' 타령하던
서울 애들을 위한 무대였다.
당시 암행어사 인기 드라마 주인공
이정길과 임용식 탤런트 보고
사진을 멀찌감치 찍었던 기억도 새롭다.
그렇게 소풍이 일 년에 두 차례 지나고
우리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시골에서 소풍과 운동회가
최대 이벤트인데,
어머니가 싸 준
김밥과 삶은 계란,
칠성 사이다 맛이
아직도 여전히 느껴진다.
엄마 손맛을
아들과 딸들은 평생 갖고 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