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by 윤기헌

96. 내 고향 집 언덕, 1965-2022


오랜만에 나 살던 고향을 찾았다.

이제 동생집 마저 떠나버려

일부러 올 일도 없어진 터지만

어머니 기일 시간이 남기에 들렀다.


마을 입구 느티나무가

아파트 숲과 온갖 건물 틈 속에서

살아 남아 나를 반긴다.


죽지 않고 버텨줘서 고맙다.


저 그늘 아래 어른들이 소주를 기울였고

우리는 버스를 기다렸으며,

단오 때 그네를 탔었다.


마을로 들어서니

첫 번째 집 찬복이 형네 집은 빌라가 들어섰다.


마당 깊은 집.

앞마당에서는 늘 여러 가지 놀이를 했었고

겨울 양지바른 툇마루에 앉아

너덜너덜해진 <소년중앙>을 읽던 기억이 새롭다.

KakaoTalk_20220623_082449728.jpg


동네 원주민은 대개 떠나버려

부서진 옛집 사이 거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내 어머니 아버지를 아시니

면이 익지 않지만 반갑다.


그리고 바로 연수 할머니네 집터가 보였다.

집은 점점 부서져 가고 있었다.

KakaoTalk_20220623_082503159.jpg

할머니네 우물은 맑고 차가웠었다.

할아버지는 한량이었지만 멋이 있었고

서울에서 가끔 놀러 오는 연수는 우리랑 잘 어울렸다.


우리의 공인 주경기장,

뒷동산 잔디밭과 송림은 사라졌다.

KakaoTalk_20220623_082514367.jpg

깎이고 흙투성이가 되었다.

우리의 추억도 저 무더기에 묻혔다.


KakaoTalk_20220623_082543801.jpg

동네 마지막 남은 우물이자

우리 집과 여남은 가정의 식수원 우물은

이제 수명을 다해 초라한 모습으로 남았다.


중 고등학교 때 물지게를 지고 오르락내리락하던

나에게는 노동의 현장이기도 했다.


KakaoTalk_20220623_082521396.jpg

내 살던 언덕 위 집 터는 잡목과 화원의 공간이 되었다.

그나마 형제가 이 딸을 갖고 있어 다행이다.


저 산과 언덕과 밭이

내 청소년기 전부를 대표하는 장소라 할 것이다.

연두색 혹은 녹색 꿈을 꾸었더랬다.


우리 집 옆 고갯길을 따라

넘어가면 또 다른 동네가 나온다.

형제 동네 이른바 '고개 너머' 마을이다.

개울가 빨래터가 있었고

가로로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갔다.


유일무이 동네 이발소 아저씨는

중국 아저씨 시다를 두고 버티다

결국 미용실로 바뀌었다.

하기사 아저씨도 이제 힘 빠진

은퇴할 노인이 되신 것이다.

고생하셨네요, 아저씨!!


KakaoTalk_20220623_082556299.jpg

늘 발동기 힘찬 경유 냄새를 뿜던 정미소는

흔적만 남았다.

KakaoTalk_20220623_082612585.jpg

그리고 이제는 멸종되어 가는 살구가 반긴다.

저 살구처럼 사라져 가는 고향과

추억과 기억들이

한여름 습도처럼 끈적하다.


아듀.

내 사랑,

내 고향.


작가의 이전글여로(旅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