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by 윤기헌

98. 첫 직장 용인자치신보, 1992

90년대 초 지금보다 나았겠지만

그때도 젊은 청춘들에게

취업은 바늘구멍이었다.


배운 게 만화고 언론이라

여기저기 뚫었지만

나에게 기회를 주는 곳은 없었다.


이력서가 동이 날 즈음

도움이 될까 하여 서울에 있는

신문 잡지 편집학원에 등록했다.


그때는 그게 인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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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고향 동아일보 지국에서

지역신문을 창간한다고 연락이 왔다.


아마도 광고지 끼어 팔다 재미가 들린

지국장이 대충 만든 모양이다.


돈을 더 벌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그는 얼마 못가 언론이란 게

돈 먹는 하마임을 뼛속 깊이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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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학보사 경력에

유일하게 편집도 하고 배우고 있는터라

일주일 3일만 일하기로 했다.

배운 것을 바로 실습하기도 좋았다.

이른 바 나도 지역신문을 우습게 봤던 터라

거쳐가는 곳으로 삼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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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언론 조금 일했던 경력의 어르신 국장님과

교수 부인인데 여가시간 이용 차 도전한 아주머니,

그리고 대학교 막 졸업한 처자까지 4명이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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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었고

팀워크도 좋았다.


당시 지역신문이 붐이었는데

대부분 지역 사이비 일간지들보다

더 좋은 기사를 쓴다는

보람도 긍지도 있었다.


그러다 몇 달 못가 신문사는 폐업했다.

광고는커녕 인건비도 못 맞출 지경에 이르니

지국장은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


처자는 강원도로 시집가고

성격 좋은 국장님은 몇 해 후 돌아가시고

교수 부인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이후 나의 기자생활은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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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후반

젊고 날카롭던

새내기 기자의 칼날 같은 추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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