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추억 여행기
99. 나는 학보사를 들어가기 위해 태어났다, 1985
대학을 갈 수 있을지 몰랐을 시절,
한문선생이 알려준 덕에
문학소년인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들어가면 대학신문에 들어가려고 했었다.
돌이켜 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이 좋아 한자도 일찍 깨우쳤으니
내 꿈이 기자 혹은 시사만화가였던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어려운 시험을 뚫고 들어간 그 곳은
들어가자마자 내 세상이었다.
숫기 없고 소극적이던 학생은
나를 알아주고 능력을 키워주는 동아리에서
성격도 바뀌고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그때가 내 인생의 클라이막스 중의 한 페이지였다.
처음에는 사진기자로 발령받아
시위 현장도 많이 나갔다.
동기들과 추억도 많았고
80년대 중반 전두환 폭정에
오죽하면 우리의 동아리 주제가는
산울림의 '청춘'이었다.
"언젠간 가겠지~푸르른 이 청춘..."
서러운 곡조와 가사가
우리의 어두운 현실과 맞았나 보다.
가난한 대학생에게 장학금도 주고 원고료도 주었으며,
기자라는 꿈을 더 꾸게 만들어 준 추동력의 학보사는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기사와 편집을 자랑했다.
학과는 등한시한 채
대학 4년을 저당 잡혔던
새내기 시절의 일장일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