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기헌 Aug 09. 2021

여로(旅路)

소소한 추억 여행기

7. 롤러코스터 첫 휴가여행 1988


88 올림픽 때문에 신병교육대는 만석이었다.

군대는 비상인 셈이니 많은 신병들이 군대에 끌려왔다.


우리 병력은 경기 인천 병력(지역별로 모집하니까)이었는데,

빨간 모자 조교들은 '뺀질거린다'며 두들겨 팼다.

맞는 게 당시 일상이라 안 맞고 자는 게 소원이었다.


날은 얼마나 추운지 전방의 1월은 

혹한기가 따로 없었다.

배도 고프고 씻고도 싶고 모든 게 부족하던 

신병교육대가 끝나고 자대에 왔다.

최전방 GOP 철책 근무였다.


밤에 근무, 낮에 취침 일과가 챗바퀴처럼 이어지고

적응하느라 정신없던 5월,

갑자기 중대에서 호출이 왔다.


중대장은 누나가 결혼하냐고 물어보면서

어머니가 '아버지 안 계신 집안의 장남이 

누나 결혼식에 꼭 와야 한다'면서 

편지를 여러 통 보냈다고 보여준다.


어머님의 정성이 통했는지

어렵다는 전방 포상휴가가 주어졌다.

원래 후방보다 일찍 휴가는 주지만 

아직 나는 몇 달 남은 상태였다.


후견인 제도로 나를 돌봐주는 상병 선임은

휴가복을 정성 들여 다려주고

군화에 물광을 내주었다.

상병 계급장을 달고 나니 명랑한 내무생활은 아니더라도 몸과 마음은 좀 편해졌다.

전방을 빠져나와 시내에 내렸는데 

누가 내게 이등병은 쪽팔리지 않냐,며 

일병으로 계급장 갈고 가자는 것이다.


그도 그럴듯하여 일병으로 계급장을 바꾸고

시외버스를 탔는데. 

아뿔싸

정작 서울시내까지는 수많은 

검문소가 있는 걸 내 어찌 알았으랴.


보기 좋게 첫 번째 검문소에서 걸렸다.

연행? 당한 헌병 초소엔 

윽박과 야단과 호통이 이어졌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내게

헌병은 선착순을 시키며 얼차려를 주었다.


간신히 불쌍한 이등병에게 은혜를 베풀어 

다음 버스로 올 수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24시간을 잤다.

그렇게 간절했던 라면과 초코파이도 좋지만

꿀잠이 너무 고팠다.


결혼식 당일, 군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헤어진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복귀했다.


물당번에 밤 철책근무에 

오로지 동물적 욕구와

생리현상에만 몰두하게 되는 

이등병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여로(旅路)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