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추억 여행기
7. 롤러코스터 첫 휴가여행 1988
88 올림픽 때문에 신병교육대는 만석이었다.
군대는 비상인 셈이니 많은 신병들이 군대에 끌려왔다.
우리 병력은 경기 인천 병력(지역별로 모집하니까)이었는데,
빨간 모자 조교들은 '뺀질거린다'며 두들겨 팼다.
맞는 게 당시 일상이라 안 맞고 자는 게 소원이었다.
날은 얼마나 추운지 전방의 1월은
혹한기가 따로 없었다.
배도 고프고 씻고도 싶고 모든 게 부족하던
신병교육대가 끝나고 자대에 왔다.
최전방 GOP 철책 근무였다.
밤에 근무, 낮에 취침 일과가 챗바퀴처럼 이어지고
적응하느라 정신없던 5월,
갑자기 중대에서 호출이 왔다.
중대장은 누나가 결혼하냐고 물어보면서
어머니가 '아버지 안 계신 집안의 장남이
누나 결혼식에 꼭 와야 한다'면서
편지를 여러 통 보냈다고 보여준다.
어머님의 정성이 통했는지
어렵다는 전방 포상휴가가 주어졌다.
원래 후방보다 일찍 휴가는 주지만
아직 나는 몇 달 남은 상태였다.
후견인 제도로 나를 돌봐주는 상병 선임은
휴가복을 정성 들여 다려주고
군화에 물광을 내주었다.
전방을 빠져나와 시내에 내렸는데
누가 내게 이등병은 쪽팔리지 않냐,며
일병으로 계급장 갈고 가자는 것이다.
그도 그럴듯하여 일병으로 계급장을 바꾸고
시외버스를 탔는데.
아뿔싸
정작 서울시내까지는 수많은
검문소가 있는 걸 내 어찌 알았으랴.
보기 좋게 첫 번째 검문소에서 걸렸다.
연행? 당한 헌병 초소엔
윽박과 야단과 호통이 이어졌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내게
헌병은 선착순을 시키며 얼차려를 주었다.
간신히 불쌍한 이등병에게 은혜를 베풀어
다음 버스로 올 수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24시간을 잤다.
그렇게 간절했던 라면과 초코파이도 좋지만
꿀잠이 너무 고팠다.
결혼식 당일, 군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헤어진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복귀했다.
물당번에 밤 철책근무에
오로지 동물적 욕구와
생리현상에만 몰두하게 되는
이등병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