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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려놓기 Jul 29. 2016

슬픈 남미 이민 역사

아순시온 2015년 7월 26일

노동력 부족 때문에 남미 국가 중 처음으로 한인 이민을 허용했다.

꽈뜨로 메르까도에는 한인들의 슬픈 이민 역사가 묻어 있다.


파라과이가 독립을 이룬 이후 19세기의 정치적 환경은 순탄하지 않았다. 5년 임기의 집정관이 된 변호사 출신의 '호세'가 경제 개발, 공교육 강화 및 악습 폐지 등 국가 발전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1816년 총통으로 지명되어 영구 집권자가 된 이후에는, 1840년 83세로 사망할 때까지 반대파에 대한 가혹한 숙청과 독재 정치를 실시하고, 밖으로는 쇄국 정책을 폈다. 


그 뒤를 이어 로페스 부자가 세습 독재 정권을 이어 갔다. 그들은 농지 개혁과 교육 확대 등을 통해 파라과이를 남아메리카 최대의 부국으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우루과이의 내분에 브라질이 개입하고, 파라과이가 이에 대한 반대를 명분으로 브라질을 침공하면서 삼국동맹 전쟁(1864~1870년)이 일어났다. 내륙국이었던 파라과이는 해안 지방을 확보하려는 목적이었고 주변국들은 파라과이를 견제하려 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3개 국가를 상대로 한 전쟁이었다. 수도인 아순시온이 1869년 1월 동맹군에게 점령당했고, 1870년 측근들에게조차 버림받은 로페스 대통령이 전사하면서 전쟁은 파라과이의 패배로 끝났다.


이 전쟁으로 이과수 폭포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빼앗겼고 산업 기반이 모두 파괴되었다. 그리고, 총인구의 60%가 죽음을 맞이했다. 특히 젊은 남성 90%가 사라져서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남미 최빈국으로 추락했다. 슬픈 파라과이의 현대사이다. 


그 노동력 부족 때문에 남미 국가 중 처음으로 한인 이민을 허용한 국가 중 하나이다. 파라과이의 국토 면적이 남한의 네 배가 넘는 데다 국토의 70%가 산지인 우리와 달리 대부분이 평지다. 하지만 19세기의 전쟁으로 인해 인구는 400만 명에 불과했다.


60년대 초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GNP 기준)이 82달러(1961년)에 불과한 나라였다. 변변한 일자리가 없어 실직자들이 넘쳐났다. 70~80년대 '파라과이에 가면 굶지는 않는다'는 이야기가 돌며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파라과이 이민이 줄을 이었다 한다.  


하지만 1965년 시작된 파라과이 농업이민은 쉽지 않았다. 배정받은 개척지는 개간은커녕 생활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변변한 농기구도 없이 개미떼와 독충과 싸워야 했다. 그들의 대부분은 후일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이나 상파울루(브라질), 부에노스아이레스(아르헨티나)와 같은 대도시로 재 이주했다. 


맨손으로 타지에 온 그 이민자들이 고생해서 터전을 마련한 곳이 아순시온의 4 시장(꽈뜨로 메르까도)이다. 처음에는 거리의 행상을 하다가 봉제업, 의류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혀갔다. 이제는 대부분 기반을 잡고 조금은 큰 상점들의 사장님 소리 듣고 있다. 4 시장의 주변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슈퍼마켓, 공장들이 많다.


4 시장은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재래시장이다. 4 시장의 좁은 골목 사이의 노점에는 아이를 안은 현지인 아주머니의 작은 채소 바구니들이 보인다. 아무것도 없이 처음 이 시장에 발을 들였을 때에는 한국인 이민자들의 모습이 그러했을 것이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그들이 이 시장의 구석에 자리 하나씩 잡아가는 세월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파라과이는 한국 여행자들이 거의 방문하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일본 여행객들은 파라과이를 대부분 방문하고 남미 여행국 중 이곳이 가장 좋았다고도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인터넷을 찾아보다 접한 것이 4 시장 이야기였고 어쩔 수 없이 나를 이 곳에 오게 만들었다. (일본인의 경우 농업에 계속 종사하며 그들만의 전원도시를 만들었다. 일본인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것은 그곳이 목적이다.)


이민 1세대가 만든 기반을 바탕으로 1.5세대는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이 되어 대부분 이 곳을 떠났다. 오가며 눈에 띄는 지긋한 연세의 한인들에 연민이 느껴진다. 어디 사연 없는 사람이 있겠냐만은 이 곳의 한인 사장님들도 모두 가슴 아픈 사연 하나씩은 간직하고 있으리라.


꽈뜨로 메르까도의 모습들
콰뜨로 메르까도는 규모가 큰 시장이다. 반듯한 상가들도 한쪽에 많다.
국경이 되는 파라과이 강. 강 이름이 국가 이름이 되었다.
바다가 없어 해군이 강에 있다.
대통령궁
정부청사
정부청사 주변에는 독립을 기념하는 공원들이 있다.
대성당
대통령궁과 정부청사의 사이에 빈민가가 형성되어 있다.
신시가지의 모습


한인 슈퍼마켓에서 발견한 새우깡, 한국의 것보다 덜 짜다.
4시장 주변에는 한식당 십수 곳이 있다. 순대국이 먹고 싶어 갔는데 순대가 요즘 수입 안된다는 슬픈 소식을 듣고 육개장으로 달랜다.
남미 다른 곳의 한식당은 한두 곳의 독점이지만 이 곳은 완전 경쟁 시장이다.
일반적인 현지 음식, 고지대에서 내려와 더워지니 맥주는 필수가 된다. 
벌새가 자주 날아 다니며 꿀을 빠는 숙소의 나무 - 벌새를 찍는 것은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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