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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Dec 22. 2023

죽을만한 이유

좋은 곳에서 만나요_이유리 作

 들어가며

 정말 오랜만에 읽은 소설입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든 어느 정도 활자중독 증세가 있다지만, 저는 중증에 해당되는 편인 것 같습니다. 생산성만 따지는 제 성미에 소설은 비효율의 끝판왕이자 낭만의 산물 그뿐이었달까요. 생산성의 끝판왕인 재테크 서적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며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고 나니 이게 웬걸, 답지 않게 소설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김초엽 작가의 추천사를 보고 이 책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고백하건대 저 역시 평소에 좋아라 하는 작가가 있는 듯, 꽤나 문학을 즐기는 듯 보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별 것도 아닌 이유로 이 책을 펼쳤는데 뜻하지 않게 큰 울림을 느껴 기록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어느 작가든 간에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이름과 책을 검색해보지 않을까 싶다던 어느 작가님의 말을 믿으면서요.



마음에 드는 구절들

무엇 때문에 죽음을 택했는지야 알 수 없으나 이번에도 그렇게 할 수는 없었던 걸까. 많이 수척하고 나이 들었으나 아직도 오뚝한 콧날을 옆얼굴로 보여주면서 나 요새 죽고 싶다, 같은 말을 던져라도 보지. 죽을 용기와 힘이 있었다면 차라리 그걸로 오리배 페달을 꾸역꾸역 밟아볼 일이지.
언뜻 보기엔 화목하고 다정해 보이는 모습으로 모두를 작은 배에 가두어 뭍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하나 쪽에 달린 페달은 자기 발밑에마 둔 채로, 어차피 우리는 같은 배를 탄 인간들임을 깨닫게 하려고.
사실 자주 생각했습니다. 제가 두고 도망친 것들에 대해서요. (중략) 그랬다면 스스로의 죽음에 이토록 무심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나는 심지어 가끔은, 내가 죽은 것이 더할 수 없이 온당하게 느껴져 고소하기까지 해요. 죽어 마땅하지요. (중략) 마땅히 마주해야 하는 것들을 마주하지 않았으니까요. 비겁하게 도망만 쳤으니까요.
사랑을 무엇이라고 정의해 버리는 순간, 사랑은 순식간에 작아지고 납작해진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가 해야 할 일은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수천만의 행운이 겹쳐 만들어낸 오늘을 최대한 즐기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
죽었는데도 ‘옮겨지지’ 않은 인간들은 모두가 삶에 미련이 없던 이들이었어. 죽고 싶다, 까지는 아니지만 언제 죽어도 아쉽지 않은 그런 생을 살고 있었단 말이지. 그런데 막상 그들이 죽고 나니까 그게 아니더라는 거야.
아무튼 원하는 건 거의 비슷한데, 거기까지 다다르는 과정이 또 얼마나 다양한지 몰라. 결코 길지 않은 삶을 살면서 어쩜 그렇게든 끈질기게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지. 맘대로 안 되는데도 어떻게든 저들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애쓰는 게 굉장하기도 하고.



 

 마치며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책을 펼쳐드는 것 치고 저는 집중력이 참 짧은 인간입니다. ‘좋은 곳에서 만나요’는 여섯 개의 소설로 구성되어 있고 각 이야기의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풀어내 한 이야기의 호흡이 짧았습니다. 그래서 집중해서 읽기 좋았습니다. 또 여섯 가지 소설의 흐름과 주인공 선정이 예상치도 못하게 전개되어 흥미로웠습니다. 예컨대 ‘오리배’의 첫 번째 소설에 나왔던 등장인물 중, 제가 작가가 되어 또 다른 주인공이 될 한 명의 인물을 골라야 했다면 아무래도 지영의 엄마나 아빠에서 그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이야기인 ‘심야의 질주’의 주인공은 바로 지영과 마지막을 함께 했던 택시 기사였습니다. 주목받지 않았던 어떤 누군가도 결국 자신의 인생은 주(主)되게 살고 있음이겠지요. 그런 소박하고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하나하나 비쳐주는 게 꽤나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주인공들은 모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들의 삶에서 죽음의 이유를 찾는 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달리 말해 모두가 ‘죽을만한 이유’ 하나씩은 갖고 있었습니다. 그렇다 할 것 없는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이, 죽은 직후 인간이 아닌 초월적인 존재가 되어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어딘가 친밀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사는 것은 무엇이고, 죽는 것은 무엇일까’ 삶을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살아야 한다는 것, 힘들어하는 그 누군가가 버티며 자신의 몫 살아낼 수 있도록 지지해야 한다는 게 작가의 메시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비로소 삶을 긍정하게 된 것 같달까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죽어가는 우리가, 짧고도 긴 생을 살며 한 번쯤 좋은 곳에서 만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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