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학교에 돌아왔다. 결심하기 전까지는 무서웠지만 돌아오니 의욕이 솟았다. 한 달가량 남은 학예회를 위해 아이들과 영어 연극 대본을 쓰고, 학교 폭력 예방 동아리 예산을 신청하고. 아이들이 느꼈을 빈자리를 더 큰 추억으로 메꾸어주고 싶다는 생각에 바쁘게 움직였다.
내가 간사로 주최하는 회의에 부장님은 참여하지 않으셨다. 불참하겠다 일언반구 없으셨지만 그러려니 생각하고 개의치 않았다. 학년 일에도 눈치껏 참여했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진정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다면 눈에 띄지 말았어야 했다.
초등학교는 다른 학교급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교무실 단체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게 큰 차이다. 그렇다 보니 전달할 사항이나 물건이 있을 때는 전체 쪽지를 보낸다. 그날은 학년별로 한 명씩 와서 다과를 가져가라고 했다. 타르트 한 조각에 커피 한 잔이 담긴 봉투 5개. 만삭 임산부도, 꼬꼬 할머니도 들 수 있는 정도의 무게였다. 다과를 가져와 단톡방에 메시지를 올렸다. 타르트는 학년 협의실에 있다고. 인사를 바라고 한 일은 전혀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 그럴 여유가 되니 한 것이었다.
내 생각이 짧았다.
간식 가져다주어서 고마워요. 다음부터는 몸을 생각해서 학년 물건 옮기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물건 옮긴다고 힘들었다는 소리를 또다시 듣고 싶지 않네요. 분리수거도 교과서 옮기는 것 등등. 그-냥 두세요. 동학년에 샘 많아요.
동학년 단톡방에 아침 댓바람부터 이런 글이 올라왔다. ‘간식 가져다주어 고마워요’까지만 보고 당장 확인할 생각을 못했다. 감사 인사를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니었고, 어떤 날이든 등교시간은 바쁘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옆 반 선생님이 왜 사색이 되어서 우리 반에 들어오시는지 몰랐다. 저 글을 나보다도 먼저 읽고 가슴이 철렁하셨다고 한다.
‘물건 옮긴다고 힘들었다는 소리를 또다시 듣고 싶지 않네요.’라니. 어디서 나온 궤변일까 한참 생각했다. 올해 나는 여러 가지 업무를 맡았다. 전교생의 교과서를 주문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방학 중 교과서가 도착하면 학년 선생님들께 안내해야 한다.
근데 굳이 안내하지 않아도 교과서가 도착한 건 알 수 있다. 학생동 1층 로비에 한가득 교과서가 쌓인다.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다. 우리 학년의 책은 며칠 째 로비에 쌓여 있었다.
나는 3학년 전교생의 책을 반 학생들과 함께 옮겼다. 내년에 정년 퇴직 하시는 선생님 두 분과 올해 명예퇴직 예정인 선생님 한 분. 이런 상황에 함께 옮기자고 얘기하기는 어려웠다. 사실 며칠을 쌓여있는 교과서를 보고도 아는 체하는 사람이 없기에 알아서 옮겨야겠다며 자초해서 눈칫밥을 먹었다.
그날 부장님께서는 본인이 부탁한 수행평가가 그리 어렵냐고, 쉬운 건데 왜 못 해주냐고 하셨다. 그 말씀에 내게 주어진 상황이 허락할 때는 학년을 위해 노력했다며 앞선 일화를 얘기했다. 그렇게 한 말을 이렇게 곡해하고 공공연하게 언급해 공격할 줄이야.
동학년에 사람이 많아서일까. 왜 당신은 배달해야 한다는 간식 한 번을 옮기지 않았는지, 공동 공간인 협의실 분리수거 할 때는 얼굴 한 번을 안 비치시는지. 이런 일을 문제 삼아 얘기한 적이 없는데, 제대로 대거리 한 번 해본 적 없는데. 속에 있는 말 한 번 시원하게 내지르지 못하는 내가 한없이 답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