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여행을 만드는 3대 福
완벽한 여행을 만드는 건, 나의 치밀한 계획이나 충분한 돈이 아니다. 단연컨대 완벽한 여행을 만드는 건 '福'이다. 여행의 3대 복이 있다면, 그건 아마 '동행자 복', '음식 복' 그리고 '날씨 복'일 거다.
홀로 여행을 하는 사람은 물론, 단체로 다니는 사람들도 해외여행을 가면 꼭 그렇게 필연적인 것처럼 또 다른 한국인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한 잔 거칠 때도 있고, 혹은 '다음 여행지 어디세요?' 하면서 자연스럽게 동행을 하거나 하다 못해 대중교통이나 택시라도 돈을 아끼기 위해 같이 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럴 때 꼭 '나쁜'사람이 아니더라도 나랑 '안 맞는'사람을 만나면 그게 그렇게 짜증 나고 힘들다. 게다가 내가 평소에도 의견 충동이 나면 그냥 남에게 '잘 맞춰 주는 사람'이라면 여행지에서도 결국 왕비 시중은 시녀가 든다고 꼭 내 의견을 접고 남의 의견을 따르고 있다. 그렇게 맞춰 주다가 다 씻고 누운 침대에서 눈을 딱 감으면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물밀듯이 밀려온다. '아니 내가 내 돈 내고 여기까지 와서 남 맞춰주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며 갑자기 그 동행인은 (아마 동행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한지도 모를 거다. 솔직히 말해서 다 맞춰준 건 나니까) 썅년 혹은 썅놈이 되고, 나는 여행에 와서도 동행인 복도 없는 사람이 된다.
음식 복, 메뉴 복 역시 비슷하다. 해외여행 스타일이 '남들이 이미 블로그에서 천만번은 맛보고 올려놓은, 조금 생각해 보면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이태원에서 먹을 수 있는 메뉴'만을 선별해서 먹는 사람이 아니라면(아니 그런 사람도 꼭 레스토랑을 잘 못 선택해서 낭패를 보기도 한다.) 음식점에 가서 괜히 시도한 메뉴가 유난히 짜고, 달고, 시고, 쓰고 혹은 이상해 낭패를 겪곤 결국엔 숙소에서 컵라면을 끓여 먹으며 배고픈 배를 부여잡곤 한다. 왜 나랑 같은 곳에서 같은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나만 왜 나만 맛이 없었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들이 생긴다. 물론, 동행자 복이나 음식(메뉴) 복은 내가 어느 정도 선택하고 조율 가는 한 것들이라고 한다면, 날씨 복은 진짜 내가 조율할 수 없는 하늘이 주는 복이다. 그리고 난 단연컨데 내 모든 날씨복을 유럽여행에선 영국에서 다 쏟아부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TODAY WEATHER IS SO CRAZY’ 런던에서의 첫 아침, 영국인에게 처음으로 들은 영어였다. 오, 진짜 영어를 들었어!라고 놀라기도 전에, 그들이 말하는 crazy weather에 더 놀랐다. 새파란 하늘에 떠 다니는 하얀색 구름. 마치 누군가의 화풍을 꼭 닮은듯한 그 하늘은 전날 밤 시차 적응 실패로 밤을 꼴딱 새운 나에게 주는 선물처럼 느껴졌다. 분명, 교과서 속에서 본 영국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우울한 날씨의 대명사였는데, 내가 있던 일주일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의 천국이었다. (물론, 내 유럽여행의 모든 날씨복을 영국에서 다 몰아서 쓴 건지 이때까지는 몰랐다) 어느 정도였냐면, 가는 공원마다 반나체의 영국인들이 누워서 일광욕을 하고 있었으며, 커피숍에서 만난 유쾌한 영국인들 몇 명은 내게 이런 날씨가 갑자기 선물처럼 떨어지면 자기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내게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물론 이런 날씨가 하루 이틀만 지속되었다면, 내가 이렇게 호들갑 떨지 않을 것이다. 입국한 첫날부터 출국하는 그 날까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지속되었고, 더 신기한 건 내가 다른 나라 비행기를 타자마자 영국에 내린 소나기였다. 오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thanks a lot!
영국 여행에서 만난 나의 최고의 날씨는 나를 미친 듯이 걷게 했다. 한국에 있을 때 운동을 좋아했던가? 아니 전혀. 그렇다면 걷는 걸 좋아했던가? 뭐 두 다리가 있으니 걷긴 하는데 좋아한다고 말할 정도는 절대 아니다. 그러나 영국에서 만난 운으로 도배한 듯한 날씨는 그런 나를 한 손에는 카메라, 다른 한 손에는 핸드폰 구글 지도를 들게 하고 매시간 걷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영국 내의 거의 대부분의 관광지를 모두 걸어서 이동했다. 구글 지도 검색 후 걸어서 1시간 이내면 그냥 바로 걸었다. 처음엔 숙소에서 걸어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대영박물관을 카메라 가방 하나 메고 무작정 걸었다. 그곳이 생활 구역인 사람들 틈에서 조금은 촌스럽게 여기저기 구경하며 걸었다. 똑같은 하늘인데 왜 영국의 하늘은 그리도 이뻐 보이고, 같은 건물인데도 왜 저 벽돌은 또 다르게 보이는지 괜히 더 특별해 보여 지금 보면 왜 찍었는지 모르는 사진들을 마구 셔터를 눌러가며 찍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혼자서 구글 맵 지도를 보며 한적하게 걷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내딛는 발걸음마다 그 행복을 그대로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