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어른이들이 만드는 가족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엄마 아빠 혹시 어디 숨겨둔 언니 없나요?

by ERIN
나도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어



물론, 나도 멋지고 잘생긴 그리고 능력 있고 키도 크며 나를 아끼는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만큼 자주 그리고 간절하게 바랬던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주변에 편의점에서 맥주 한 잔 할 친구들이 사라져 갈수록 나도 편한 친언니 한 명 있으면 참 좋겠다.라고 혼자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말 안 해도 내가 왜 힘든지 바로 알아차리며, 어떻게 하면 힘이 나고 또 조언까지 해주는 그런 언니가 있으면 이 험한 세상, 혐생 잘 헤엄쳐 갈 텐데 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서 내 존재를 하나씩 박아가면서 힘들 때마다 혼자 맥주 마시며 한탄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아직은 잘생긴 오빠가 있는 게 더 좋지만) 내게는 맥주 한 잔에 '아 그랬으면 좋겠다'로 끝나는 이 망상이 영화 속 '스즈'에겐 아버지의 장례식 후 갑자기 닥쳐온 현실이 되었다.



15년 전, 바람이 나 가족을 버리고 간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보낸 어머니는 너무 힘들다며 아이들을 버리고 도망쳤고, 사치 요시노 그리고 치카(사진 상에서는 치카(셋째), 사치(첫째), 요시노(둘째) 순이다) 이 세 자매는 서로를 보듬으며 자랐다. 그렇게 떠나버린 아버지가 15년 만에 들려온 소식은 부고.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에 가야 할까 고민하던 세 자매를 결국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방문하게 된다. 아버지가 그들을 떠난 15년 동안 바람 난 여자랑 결혼해서 딸 하나를 낳은 후 사별해 부인을 보내고, 그다음 또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고 한다. 즉, 세 자매는 장례식장 영정 속에서 아버지를 보고, 장례식장에서 마침내 아버지가 두 번째 부인 사이에서 낳은 스즈, 아버지의 3번째 부인과 그 부인이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까지 보게 된다.



15년이라는 세월은 부모에 대한 원망을 줄이고, 부모가 아닌 한 남자 혹은 사람으로서 볼 수 있는 시간일까? 세 자매는 생각보다 아버지를 덤덤하게 보낸다. 부모는 그들에게 부모 된 도리를 마치지 못했지만, 세 자매는 그래도 낳아준 부모라고 자식 된 도리로 장례식을 다 마치고, 다시 그들의 집으로 향한다.



그때, 그들과 배다른 자매인 스즈가 그들을 불러 세운다.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 가지고 있었다는 세 자매의 흔적들. 그걸 고스란히 다시 세 자매에게 전해주며 아버지가 그들을 그리워했음을 알려주고, 세 자매에게 남아 있는 알 수 없는 그 기분까지 씻어준다. 개인적으로 딱 여기까지. 딱 여기까지는 아버지가 같다는 것 하나로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해주는 말로만 들어왔던 언니들에겐 아버지가 당신들을 잊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며 위로해 줄 수 있고, 아픈 아버지와 젊은 새엄마 그리고 어린 이복동생 사이에서 치였을 이복동생 스즈에겐 '새엄마가 아닌 네가 병상에 있는 아버지를 다 보살폈지? 고마워'라고 따뜻한 한 마디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후 세 자매는 스즈에게 가마쿠라에서 같이 살지 않을래?라고 묻는다. 그리고 스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네'라고 말하며 세 자매는 그렇게 네 자매가 된다. 사실 여기서 이 주인공들의 마음이 제대로 이해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앞으로 스즈의 앞날이 불안해 보이기는 했다. 어른스럽지 못한 새엄마는 자신의 아들만 끼고돌았고, 그런 새엄마가 스즈를 과연 책임지고 살까?, 저 애는 나중에 어떻게 되는 거지? 하고 나도 걱정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건 언제까지나 제삼자로서 사람을 볼 때 느끼는 연민에 가깝지, 그렇다고 저 사람이 안타까우니 내가 책임져야겠다!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솔직히 따지고 보면 우리 가정을 파괴시킨 여자의 딸인데, 가족으로 같이 살다니, 가능할까? 아무리 이 아이의 잘못은 없다고 하지만 우리가 언제 인간을 객채로만 바라보고 사람을 대하던가? 우리 셋 다 직장인이니까 너 하나 거둬줄 수 있어.라고 말하며 가볍게 스즈를 자신의 울타리로 데려오는 사치. 그리고 그런 사치의 결정에 아무런 토도 달지 않고 바로 웃으며 응! 그러자 라고 말하는 두 동생. 이거 뭐지? 너무 현실성 없이 아름답기만 한 거 아니야? 싶었다.

이런 나의 이해도와는 다르게 영화에서는 사치를 중심으로 세 자매는 아무렇지도 않게 스즈를 가마쿠라로 데려오고, 원래 그렇게 살던 사람들처럼 스즈와 함께 네 자매로 살기 시작한다.




세 자매에게 가마쿠라의 집은 어른들 없이 그들이 만들어 낸 그들만의 가족 공간이다. 세 자매는 종종 자신들의 집을 여학생 기숙사라고 말하는데, 개인적으로 그 분위기와 생활 패턴이 너무나 부러웠다. 그 말이 가지는 편안함과 안락함 그리고 그 안에서의 동료애(?)적인 느낌까지. 가족이자 그들의 친구인 자매들이 얼마나 가까우면서도 의지가 되는 사이인지 '여학생 기숙사'라는 말에서 느낄 수 있다. 스즈도 역시 이러한 여학생 기숙사 같은 집에 들어오면서 보다 나이에 맞는 웃음을 찾아간다. 아빠가 아파서, 엄마는 새엄마라서. 어린 학생인 스즈가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경험들과 감정들을 세 자매가 하나씩 채워준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

한 가족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추억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자연스러운 행복들 사이에는 스즈가 느끼는 불편함과 눈치 역시 존재한다. 너무나 일찍 철이 든 스즈는 자신이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언니들이 싫어할 거라는 생각과 자신이 언니들이 아닌 다른 가족들에게는 불행한 존재일 거라는 생각에 소극적이기도 하고,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기도 하는데, 그때 한 아이를 키위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처럼, 마을 이곳저곳에 있는 어른들이 스즈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잔멸치 덮밥에 대한 추억을 식당 아주머니, 카페 사장님과 공유하고, 스즈가 미쳐 알지 못한 전해주는 아버지의 이야기와 세 자매 이야기를 스즈에게 해주며 스즈가 가지고 있는 거리감을 좁힐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같이 매실주를 담그고, 유카타를 입고, 술을 마셔보고, 밥을 먹고, 오늘 하루를 나누고, 매니큐어도 발라보면서 서로의 추억을 쌓고 이야깃거리를 만들며 스즈와 세 자매는 비로소 네 자매가 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스즈가 점차 나이에 맞는 표정을 짓고, 해맑아하는 모습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이 벚꽃 터널 씬이 그런 스즈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아름답게, 그리고 행복하고 안정적으로 가족이 되어가는 와중에도 영화를 보면서 계속 '아니 대체 왜 저 세 자매는 말도 안 되게 저렇게 평온하게 새로운 사람을 가족으로 맞이할 수 있을까? 저게 다 자가가 있어서 가능한 주거안정의 힘인가?' 하며 부동산의 힘을 비로소 느끼려는 찰나, 왜 사치가 스즈에게 먼저 '우리랑 같이 살래?'라고 말했는지 이해가 되는 장면이 나온다.




어른스러운 스즈는 곧 어른스러워야만 했던 사치였던 것이다. 아빠는 다른 여자에 대한 동정심으로 가족을 버리고 나갔고,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한 어머니 역시 '너네는 데려갈 수 없어'라는 말만 남기고 아이들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런 상황 속에서 사치는 그저 즐겁기만 한 어린 시절을 보낼 시간이 없었고, 동생들을 위해서 가장 먼저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사치는 그런 스즈를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고, 스즈에게만큼은 어린 시절을 정말 어린이 시절로 남겨주고 싶어 가마쿠라로 데려오게 된 것이다.

이 장면이 나오자 조금은 해소가 되었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사치는 가족을 지키고 싶었고, 그 안에서 스즈가 어린아이로 남았으면 했구나. 조금은 이해가 되었고, 앞의 감정선이 조금은 억지스럽지 않게 되었다.




결국엔, 배다른 자매들의 동거 이야기.

어찌 보면 굉장히 자극적이고 또한 막장이며, 왜 저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굳이 동거를 할까?라는 근원적인 질문부터 나올 이 이야기가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그냥 당연히 순리대로 그렇게 되어야 하는 이야기처럼 나오며, '아닌데.. 이상하다' 하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그런 마력이 있다. 영화는 다른 가족들과의 관계보다 네 자매에 초점을 맞춰 어떻게 가족이 되는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그렇게 세 자매는 네 자매가 되었고, 매 년 담는 매실주는 청소년인 스즈를 위해 무알콜 매실주까지 따로 담으며 4인 4색 매실주를 담그게 된다.

사실, 이 영화는 이미 힐링 영화로 많이 알려져 있다. 영화의 배경인 가마쿠라는 보는 내내 '나도 가고 싶다'라고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비행기 가격을 검색해 봤고, 잔멸치 토스트나 잔멸치 덮밥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 먹는 건가 싶어 네이버에 검색을 해봤다. 이러한 힐링 요소가 무색할 만큼 사실 개인적으로는 유쾌하지 않은 대화들도 있다. 예를 들어 이모할머니가 '사실 너네 아빠 바람에는 너네 엄마 잘못도 있어'라고 말하는 책임전가론이나 본인이 얼마나 아버지의 불륜으로 힘들었으면서도 자신이 또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첫째 사치의 모습은 내로남불의 표본이었다. (물론, 사치의 캐릭터 설정은 감독의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왓챠에 나의 평점은 4.0 나중에 다시 볼 의향이 있는가? 에는 아마 스즈가 벚꽃길에서 어떻게 웃는지 기억이 안 날 때 다시 볼 것 같다.라고 남겼다. 딱 지금 같은 날, 여름날 맥주 한 캔 딱 따고 선풍기 바람 쐬면서 보기 좋은 영화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왓챠에서 볼 수 있다.

(이렇게 말하니 왓챠 직원 같지만, 안타깝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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