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3년의 공백', 아빠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진짜 마츠다 마사토씨 장례식에 온 게 맞으신가요?
한 골목에 두 개의 장례식이 열린다. 우연히도 모두 다 마츠다의 장례식. 예의를 갖춰 차려입은 사람들은 꽃으로 화려하게 뒤 덮인 큰 절에서 열리는 장례식장으로 찾아가고, 초라하게만 보이는 작은 장례식장에는 찾아오는 사람들도 없으며, 찾아오는 사람들 마저도 큰 장례식장에 가야 하는데 잘 못 온 사람들뿐이다. 이 초라하고 작은 장례식장의 주인은 마츠다 마사토. 13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이다.
어릴 적, 아빠에 대한 기억이 크진 않다. 아빠는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으나 되지 못했으며, 그 꿈을 내가 대신 이뤄주길 바랬다. 아빠는 야구 방망이를 내려놓은 대신 손에 마작패를 쥐었으며,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항상 아저씨들과 마작을 했다. 아버지의 성심은 착했던 것 같은데 경제관념은 없었던 것인지 어느 이유에서 사채를 쓰게 되었고, 아빠와 엄마 그리고 형까지 있던 어느 날 사채업자는 하루 종일 문을 두드리며 돈 내놓으라고 소리쳤다. 사채업자가 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돈 갚으라고 소리치던 그 날, 담배를 사러 가겠다고 나갔던 아빠는 테이블에 가득 찬 담배 한 갑을 그대로 둔 채 그렇게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엄마도 나도 모두 아빠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았다. 엄마는 자연스레 아빠 대신 일을 하러 나갔으며, 엄마의 빈자리는 형이 채우며 그렇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그리고 잇몸이 없으면 서로에 대한 책임감으로라도 버티며 13년의 공백을 채운다. 그렇게 13년이 흘렀고, 형은 어엿한 대기업 회사원이 되었으며 나 역시도 옆에는 아름다운 여자 친구(진짜 아름답다. 일본의 전형적인 미인상이다)와 넉넉하진 않지만 부족하진 않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어느 날, 아버지와 연락이 닿았고, 그렇게 영화를 중반으로 흘러간다.
사채업자 피해서 13년 전 가족과 집을 떠났으면 잘 살기라도 하던가, 13년 후 갑자기 나타나서는 3개월 시한부라고 한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람. 한국 드라마에 나왔다면 벌써부터 욕 한 바가지에 신파 조금 더 섞어서 내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숨겨진 이유를 버겁게 나열할 텐데, born to be japan이라 그런가? 영화 내내 뭐야 사람들 왜 이렇게 차분하고 덤덤해? 내가 이상한 건가? 싶을 만큼 조용하고 차분하며 그리고 덤덤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 해 있대.
갈 거야?
나는 가기 싫은데.
그렇지? 이제 와서 무슨 아버지야.
마치, 아까 먹은 밥이 좀 짰나? 물이 마시고 싶네와 같은 시시콜콜함으로 이야기를 한다. 13년 만에 나타난 아버지가 시한부의 모습으로 나타났대. 아마 한국에서 이 문장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나는 욕 한 바가지와 함께 휴지 한 뭉텅이를 가지고 갔겠지만, 이 영화에서 그렇지는 않다. 영화 보던 날 혹시나 해서 챙겨간 휴지가 그날 빛을 보지 못하고 지금 내 책상에서 선풍기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아마, 이게 일본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강점이지 않을까 싶다. 가끔은 너무 쳐져서 혹은 너무 덤덤해서 지루하기도 하고 싱겁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만의 스토리의 힘이 있고, 유머가 있으며 영화를 보고 집에 가는 길에 다시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아직 개봉도 안 한 영화라 이 영화에 대한 모든 생각과 마음 그리고 중간중간 캐릭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생각해 자세히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만, 이 영화의 모든 부분에서 가장 마음이 쓰였던 캐릭터는 엄마 역을 연기 한 칸노 미스즈이다. 남편이 담배를 사러 간다는 말을 하자, 엄마는 '밖에 아직 사채업자가 있을지도 몰라 조심해요'라고 이야기한다. 담배를 못 사 올까 봐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못 도망갈까 봐 이야기하는 것이다. 엄마는 아빠가 도망갈 것이라는 걸 알았고, 그 마지막까지도 아빠를 걱정한다. 그리고 그렇게 남겨진 두 아들을 책임지기 위해 여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 남편의 장례식장에 갈까 말까 고민하던 엄마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아마 영화를 보면 그녀가 어디로 발자국을 내는지 알 수 있을 텐데, 그녀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끝나는지 보면 처음에는 '어? 뭐야' 하다가 집에 가는 길에 '아, 뭐 나라면 달랐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캐릭터는 이 영화의 감초라고 할 수 있는 요카무네 타로역을 한 사토 지로(사진 속 흰색 셔츠). 개인적으로는 영화 보는 내내 계속 EBS 한국사 강사였던 큰별쌤 최태성 선생님이랑 너무 닮아서 혼자 허벅지 꼬집으면서 봤다.
영화는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아버지가 떠나기 전 아들이 보던 아버지의 모습과 아버지가 떠난 후 13년 동안 가족 없는 아버지를 보던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 모습들은 아이러니하게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융화된다. 13년 동안 볼 수 없던 아버지의 모습이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 장례식장에서 알려지는데 여기서 눈물과 웃음의 수위를 조절하며 웃기는 사람이 바로 큰별쌤.. 아니 사토 지로이다.
영화는 71분. 짧은 러닝타임으로 보다 보면 두 번 당황한다. 영화 중간에 나오는 제목에 당황하고, 생각보다 더 빠른 71분 영화에 더 당황한다. 아직 개봉은 9일 전, 개인적으로 애정 하는 잡지사의 이벤트에 당첨되어 일본 영화 13년의 공백을 보고 왔다. 정식 개봉은 7월이며, 아마 마케팅은 일본 영화 중에서 좀 알려진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황금종려상을 받은 어느 가족으로 하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이야기의 소재가 비슷한 것 같고 그보다는 좀 더 잔잔한 시냇물에 유쾌함을 가득 담은 돌이 퐁당퐁당 거리는 느낌이다.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다고요? 그냥 볼 만합니다) 감독은 배우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사이토 타쿠미(평일 오후 3시의 연인에도 나왔는데, 몰라도 상관없다. 이제 알면 되지 뭐)'로 본 영화에도 출연한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두 배우가 눈에 들어왔는데 마츠오카 마유와 타카하시 잇세이.
타카하시 잇세이의 목소리가 너무 좋았고, 그리고 얼굴이 예전에 미국에 있을 때 알던 일본 친구랑 닮아서 계속 눈이 갔다. 그 친구 잘생겼던 거구나...
그리고 또 한 명은 마츠오카 마유. 세상에 뭐 이렇게 이쁘담? 전체적으로 영화가 흑백톤이라면 마츠오카 마유가 나오면 영화가 밝게 변한다. (저 여잡니다) 잔잔한 시냇물이 71분 동안 흐를 수 있던 영화가 마츠오카 마유의 얼굴과 사토 지로의 유쾌한 대사 그리고 타카하시 잇세이의 목소리로 영화는 잔잔한 시냇물 속 굽이치는 흐름을 만들어 낸다. 생각보다 짧은 영화지만 곱씹으며 생각할수록 여운은 짧지 않아 한번쯤 봐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