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날씨 복은 영국이 끝이었다. 내게 남은 건 비와 돌풍과 혹한과 한파였다.

by ERIN
난 스카이다이빙이 하고 싶어


아무런 대책 없이 떠난 이 여행에 네덜란드에서 사는 친구가 합류했다. 친구는 자신의 체코 여행의 목적은 '스카이 다이빙이다'라고 누누이 이야기하며 꼭 해야 한다고 내게 몇 번 다짐을 받았다. 스카이 다이빙? 나 번지점프도 안 해봤는데,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10초 정도 흘렀다가, 뭐 쟤도 하고 걔도 했으면 나도 할 수 있는 거지 뭐. 그래 하자! 싶었다. 잊었는가? 내가 유럽여행을 온 목적은 '도피'였고, 도피의 최고봉은 하늘에서 뛰어내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 당시 나 스스로에 대해 '도전하지 않는 겁쟁이'라고 생각했기에 스카이 다이빙은 정말 내게는 나를 한번 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래서 숙소를 정할 때에도 스카이다이빙 예약이 편하고, 예약 후 모든 것들을 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한인 민박으로 정했고, 우린 다른 한국인 사람들과 다 같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차를 타고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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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다이빙은 랜덤으로 짝을 지어 다이빙 준비를 했고, 다른 한국인들이 빨리 하고 싶어 하길래 '그럼 우린 좀 뒤에 하지 뭐' 하며 맨 마지막 팀으로 배정받고 사진을 찍으며 놀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조금 날씨가 흐린가 싶더니 우리 앞 팀이 비행기를 타고 올라갔다가 그냥 내려왔다. 아래에서 보기엔 '조금 흐리고 비가 좀 내리네, 아 스카이다이빙 할 때 볼 따갑겠다' 싶었는데, 아래에서는 그냥 비지만 위에선 우박이 내린다며 오늘 스카이다이빙은 여기서 끝이라는 거다. 세상에? 저희는 이거 하려고 오늘 하루 다 썼는데요? 진짜요?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람? 싶은 생각에 터덜터덜 비 오는 프라하 길거리를 헤쳐 숙소로 돌아왔다.


그러다 이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건 좀 아니다 싶어 같이 스카이다이빙 못한 한국인들끼리 모여서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고, 그렇게 체코의 전통음식인 꼴레뇨를 먹으러 갔다. 꼴레뇨는 족발이랑 맛이 비슷한데, 정말 운이 좋게도 그때 그 한국인 중 한 명이 유럽 여행비를 벌기 위해 6개월 정도 족발집에서 족발 해체하는 아르바이트만 했던 사람이 있어 우리의 꼴레뇨는 그 사람이 다 해체해 살을 발라 줬다. 세상에 그렇게 살과 뼈 사이를 나이프를 이용해 잘 분리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우리 모두 그 사람을 보며 박수와 환호했고, 그 사람은 나이프를 들고 브이-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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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다 와서 우리는 숙소 사장님에게 하루를 그렇게 날린 걸 이야기했고, 사장님은 어쩌냐며 일정을 조율해서 하루 더 내주면 우리를 가장 먼저 스카이 다이빙을 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이후에 바로 차로 픽업해 기차를 탈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친구는 체스키 크룸로프를, 나는 프라하 하루 일정을 줄여 다시 스카이 다이빙을 하러 갔고, 우리는 그렇게 하늘에서 1분 간 구름 사이를 헤엄치며 날아다녔다. 스카이 다이빙 이후에 우리의 다이빙 모습이 찍힌 영상이 있는데 그건, 차마 아직 열어보지도 못했다. 안 열어봐도 흑역사 모음집이라는 건 너도 나도 다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친구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수 틀어지는 그 순간 결혼식에서 이 영상 재생이라며 우스갯소리로 영원히 함께하자며 우리의 우정을 보다 단단히 했다.


그리고 그 영상은 내 옷장 속 가장 깊은 곳에 학교 졸업 앨범들과 함께 혀 있다. 흑역사 봉인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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