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제일 우유부단한 내가 확고한 취향을 가지기까지
넌 뭘 좋아해?
과거, 개인적으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질문이었다. '네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서 뭐 어쩌게?'라는 삐딱한 시선으로 질문을 바라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건 다 나의 자격지심에서 나온 생각이었다. '넌 뭘 좋아해?'라는 질문을 받으면 순간적으로 '이 사람의 질문 의도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서는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 다음에 그가 좋아하는 것에 맞춰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열하곤 했다. 어릴 적, 그게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고, 내가 연인 관계를 떠나 모든 인간관계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와 너 나랑 취향이 진짜 비슷하다'라며 좋아했고, 그렇게 인간관계를 이어나가곤 했다. 그러나 좋아하지 않는걸 혹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을 따라 하는 사람이 뭐 얼마나 그것을 취향 삼아 즐기고, 재미있어하겠는가? 그렇게 내 취향이 아닌 것들을 한껏 하고 온 날에는 잠 자기 전 문득 현타가 오곤 했다. '내가 오늘 뭐한 거지?' 그리고 '난 대체 뭘 좋아하지?' 게다가 그렇게 억지로 인연을 이어온 사람들이 내게 함부로 하는 그 날이면 혹은 그들에게 상처를 받는 그 날이라면 집에 와 침대에서 나 스스로 내 자존감을 낮추곤 했다. 그러다 문득, 이러다간 나 자신은 없겠구나 싶어 나도 내 취향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 취향을 찾아 준 것은 '다른 사람들의 취향을 같이 좋아하는 척 하기'였다. 그간 내가 모두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했던, 나의 자존감을 매우 하락시켰던 '척'하기, 모든 사람들에게 맞춰주기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게 해주는 경험들이었다. 경험이 모든 일의 바탕이라고, 그들과 그들의 취향을 함께 하면서 나 스스로가 느끼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그리고 어떤 류를 싫어하는지 하나 둘 경험을 하면서 느꼈고, 그걸 글자로 표현하니 나의 취향이 되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경험을 통해 얻은 나의 선호를 수집해 하나의 리스트를 만들었고, 그걸 나는 'FAVORITE LIST'라고 부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의 리스트엔 50여 가지의 목록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개인적인 취향에 과자는 봉지 닭다리(박스에 들은 것 말고 봉지!), 꼬북 칩 콘수프 맛이 제일이고, 외국 가수는 Birdy, Charlie Puth, Shawn Mendes, Troye Sivan, Lukas Graham이 제일이다. 그리고 화가는 Gustav Klimt, Egon Schiele, Frida Kahlo를 제일 좋아한다. 이렇게 단호하고도 분명한 취향을 가지게 된 것은 앞에 말한 주변인들의 취향을 따라한 것과 여행을 통해 별의 별것을 보며 별의별 것을 체험하다 보니 얻게 된 경험치에서 나오는 취향이다. 그리고 나만의 단호한 취향은 경험에서 나온다고 굳게 믿으며, 여러 사람들에게 설파하며 다닌다.
이러한 단호한 취향 덕에 다른 그림은 안 봐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그림은 어떻게 해서든 실제로 보고 죽고 싶다고 항상 이야기했다. 그러다 보니 내게 오스트리아는 여행지라기보다 '구스타프 클림트 보러 가는 곳'이었다. 내게 오스트리아는 그저 구스타프 클림트가 살았던 곳이었고, 그의 작품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내 오스트리아 일정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을 보는 것에 집중되었고, 그 이후에 남는 시간에 오스트리아에서 유명하다는 곳들을 스치듯 구경했다.
이탈리아 어로 전망이 좋다는 뜻의 벨베데레, 그 말과 딱 맞게 개인적으로 쇤부른 궁전보다도 벨베데레의 느낌이 더 좋았다. 벨베데레 궁전의 궁전 테라스에서 보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 나 있으며 상궁과 하궁 사이에는 프랑스식 정원이 사진처럼 잘 가꿔져 있어 산책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중 가장 유명한 키스는 방 하나에 그 그림 하나만 전시되어 있다. 금으로 색칠된 그림을 보다 극대화하기 위해 천장 조명 하나 없는 검은 방에 그림 하나만 있고, 양쪽에서 조명을 쏴 그 화려함이 더 빛을 보도록 전시해뒀다. 그 앞에 의자가 많은데, 내가 간 날 그 미술관에 사람이 없어서 거의 혼자 1시간을 그 앞에서 그림을 보며 멍하니 있었다. 생각보다 더 큰 규모의 그림에 놀랐고, 그 화려함에 두 번 놀랐으며, 그 화려함 뒤에 섬세하게 덧칠해진 붓 터치가 좋아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서도 봤다. No photo zone이라 사진은 못 찍었는데, 그림을 다 보고 나오는 길에 다들 몰래 찍는 것을 보며 나도 찍을 걸 그랬나 싶었다. 그래도 한 시간을 눈에 담았는데 그립겠어?라는 생각에 발걸음을 돌렸는데, 나는 이를 아직도 후회한다. 이 전에 말했던가? 역시 할까 말까 할 땐 해야 한다고. 이 경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할까 말까 할 때에는 해야 한다.
구스타프 클림트 그림을 다 보고 나니 할 게 없어졌다. 어딜 갈까, 다른 미술관을 들러볼까 하다가 또 와중에 내 속에 잠재되어 있던 ‘CASTLE 병’이 도졌다. CASTLE 병이란, 어딜 가든 ‘성’, ‘궁전’이라고 적힌 곳이 있으면 일단 들어가 봐야 속이 풀리고, 그 안의 역사를 알아야 마음이 시원한 병을 말한다. 긴 도피성 여행을 통해 느낀 건, 나는 CASTLE 병 중증환자라는 것. 그렇게 다음 목적지는 곧바로 쇤브룬 궁전으로 정해졌다. 쇤브룬 궁에는 한국어 해설이 있다. 오디오 해설인데, 무료로 빌려 궁의 역사를 장소에 대한 설명과 함께 들을 수 있다. 한국어 해설이 있어도 문법적 오류가 많아 영어로 듣는 것만 못한 적이 많았는데, 쇤브룬 궁의 해설은 들으면서 이해 못 한 적은 없고 오히려 예상보다 더 자세하게 알려줘 혼자서 해설을 들으며 천천히 걷기에 가장 좋은 궁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제일은 궁을 다 돌아보고 나오면 있는 정원의 뷰는 가슴을 탁- 트이게 하는데 안성맞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