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할까 말까 할 때에는 해라

반짝이는 날씨와 선선한 바람 그리고 술 한잔은 천국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by ERIN
할까 말까 할 때는 하고, 먹을까 말까 할 때에는 먹지 말아라


누구나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나만의 지론을 만든다. 내겐 '할까 말까 할 때는 하고, 먹을까 말까 할 때에는 먹지 말자'가 무언가 선택을 할 때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생각의 틀이다. 이걸 만든 계기가 무엇이냐 물어본다면, 내가 문득 거울을 봤을 때 느낀 감정을 다 나타낸 것이랄까? '먹을까 말까 할 때에는 먹지 말자'는 결국 먹고 나면 다 살로 가는 걸 지금 내가 거울을 보며 느끼기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대체 뭘 먹고 이렇게 살이 쪘지? 기억도 안 나는데 결국 남은 건 살뿐이랄까? 그래서 언젠가부터 먹을까 말까 고민할 때에는 먹지 말자고 다짐했다. 물론, 다짐과 행동의 상반됨은 항상 존재하고, 그래서 아직도 거울을 보며 이 말을 곱씹곤 한다. 언젠가는 음식의 유혹에서 벗어나겠지! 하면서.


그리고 '할까 말까 할 때에는 하라는 말'은 체코의 체스키 크룸로프에 도착하자마자 결심했다.


프라하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바로 버스를 타고 달려온 체스키 크룸로프. 오랜 버스를 타고 체스키 크룸로프에 도착한 나는 생각보다 더 피로했고, 더 초췌했으며 모든 의욕을 잃었다. 모든 사람들이 체스키 크룸로프는 동화 같은 마을이며, 야경이 너무나 아름다우니 꼭 야경을 보라고 했다. 근데 야경을 보기엔 내 체력이 정말 0에 수렴했다. 그때 어디선가 악마의 소리가 들렸다. '너 버스 타고 지나오면서 야경 다 봤잖아, 더 봐야 해? 그냥 자' 세상에 로하스보다 더 달콤한 목소리였다. 일단 짐부터 숙소에 두고 생각하자 싶어 숙소에 짐을 두려고 숙소로 향했는데 웬걸? 숙소가 생각보다 더 좋다. 당장이라도 눕고 싶다. 그러나 오늘 자면 내일은 오전 시간을 체스키에서 보내다가 바로 오스트리아로 떠나야 한다. 야경을 봐야 한다면 바로 오늘, 당장뿐인데 내 안의 악마와 천사가 미친 듯이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들 예감하다시피 결국 승자는 '천사'. 천사 덕분에 나는 내 인생에 손꼽히는 야경을 얻었다.


IMG_6843.JPG
IMG_6852.JPG 실제로 이 사진보다 1000000000배 더 이쁘다


누군가 현실에는 사진으로 담으려고 해도 안 담기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사진에 집중하지 말고, 내 눈으로 많이 담아야 한다고 매번 내게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겉으로는 '네, 그렇죠. 현실의 아름다움은 사진에 안 담겨요'라며 고상한 척 이야기했지만, 내심 속으로는 내 핸드폰 갤러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사기 셀카들을 보며 적당히 보정되어 있는 사진이 현실보다 낫다고 단정 지었다. 그러나 체스키 크룸로프의 야경을 보고 난 후의 나는 바로 결론 내렸다. ‘그래, 안 담기는 게 있네, 체스키 크룸로프의 야경 넌 안 담긴다’


내 마음속 천사의 승리로 감사하게도 나는 밤늦게 체스키 크룸로프에 도착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야경을 보러 나갔다. 여기저기 돌길을 걸어 다니며 나만의 야경 장소를 찾아 사진을 찍어댔고, 한 수십 장을 찍었을 때쯤 ‘아, 이건 어떻게 해도 현실의 아름다움이 다 안 담기는구나’를 깨달았다. 그리곤 포기하곤 그저 야경을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 밤늦은 시간이라 양쪽 다 이어폰을 꽂는 게 무서워서 한쪽만 꽂고 한쪽은 빼놓고 있었는데, 그때 한쪽 이어폰에서 나오던 노래 'Birdy의 Skinny Love'를 잊지 못한다. 오른쪽 귀에선 노래가 흘러나오고, 왼쪽 귀에서는 나뭇잎 스치는 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새벽 소리가 들리는데 그대로 딱 벤치에 앉아서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사진 찍는 걸 멈추고 눈으로만 담고 숙소로 돌아왔다.


IMG_6877.JPG
IMG_6881.JPG
IMG_6883.JPG


전 날의 피로 덕분인지 덕분에 시차 적응은 완벽히 극복하고 꿀잠을 자고 일어나 과일 하나 입에 물고 밖으로 나섰다. 낮의 체스키 크룸로프는 밤의 체스키 크룸로프와는 다른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정말 동화 속에 들어온 것만 같은 유럽의 돌길과 건물에 시선을 뺏겼고, 게다가 화창하다 못해 반짝거리는 날씨는 나를 자연스럽게 펍으로 이끌었다. 반짝거리는 돌길과 사람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나 혼자 분위기란 분위기는 다 잡으면서 피자에 맥주 한잔 걸쭉하게 들이켜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술에 취해 체스키 프롬 로프의 길거리를 걸었던 것 같다. 기억나는 건 괜스레 더 기분 좋았던 그 느낌과, 푸른 하늘 그리고 더 빛나는 것 같은 시냇물뿐이다. 낮술의 힘일까? 실제로 내 기억 속의 체스키 크룸로프는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보다 더 이쁘고, 반짝거리고, 몽글몽글 아름답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