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불효 혹은 기회, 바르셀로나에서의 +1 day
미아 1 (迷兒) [미아]
[명사] 길이나 집을 잃고 헤매는 아이.
그래, 미아는 길이나 집을 잃고 헤매는 '아이'지 어른은 아니다. 그런데 참 나는 어른이 된 후 미아가 된 경험이 여럿 있다. 20살이 넘어서 엄마와 함께 대형 마트에 갔었다. 각자 볼일을 보고 엄마랑 어디선가 만나기로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는 엄마. 그때 때마침 배가 너무 아팠고, 20분을 기다려도 안 온 엄마가 5분 만에 올까?라는 안일한 생각에 바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리고 그렇게 엄마는 화장실에서 큰 일을 편히 보고 있는 나를 못 찾아서(심지어 집중한다고 핸드폰은 무음에 주머니에 넣어뒀다) 데스크에 가서 '20세 000님을 찾습니다'라는 방송을 내보냈다. 그 방송을 화장실에 앉아서 듣던 나는 처음에 듣자마자 '나?'라는 생각에 배 아픈 건 어느새 잊어버리고 세상 너무 창피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드는 생각 '와 씨, 여기 우리 집 근처인데 젠장 고등학교 동창이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나는 화장실을 나와 데스크로 달려갔다. 그리고 엄마는 머쓱한 얼굴로 내가 왜 20살 넘은 딸내미 미아 방송까지 하게 만드냐며 웃었고, 나는 아마 사람들이 방송 듣고 욕했을 거라며 고개를 푹 숙이고 터덜터덜 장도 보는 채 마는 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게 내 인생 미아 스토리의 전부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미아 스토리는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그것도 그냥 잃어버린 게 아닌 비행기를 놓쳐 공항에서 미아가 되는 스토리로 발전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밤이었다. 바르셀로나는 딱 생각만큼 활발했고, 밤에도 활기차게 깨어있는 도시였다. 그런데 딱 내가 생각한 만큼이어서 딱 그만큼만 좋았다. 반대로는 더 좋지 않아서 바르셀로나가 조금은 시시했고, 아쉬웠다. 가우디의 구엘 공원은 생각보다 더 괜찮았지만, 가우디의 생각과 인생을 모두 이해하기엔 당시의 난 너무 어렸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딱 생각만큼의 여행을 하던 와중 바르셀로나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그날은 아침부터 이상했다.
딱 떠나기 하루 전의 아침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옆방에서 이상한 신음 그것도 엄청난 신음이 들렸다. 다리 하나를 청바지에 넣고, 나머지도 넣으려고 하는데 들리는 그 엄청난 소리에 나는 멈칫했고, 그렇게 침대로 나자빠졌다. 방에 누구라도 있었으면 아침부터 화끈하네 하며 '하하호호' 그냥 웃기라도 했을 텐데, 혼자 있는 방에서 그런 소리를 들으니 입에서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는 욕이 나오더라. 그렇게 이상한 소리를 듣고 조식을 먹으러 나왔는데, 음식을 앞에 두고 내 머릿속에는 ‘누가 그 신음을 냈을까?’로 가득 차 있었다. 옆에서 단란하게 아침을 먹는 가족은 아닐 것 같고, 저기 여자 둘이서 온 사람들도 너무 평온해 보이고, 신음 속에서 카탈루냐 어가 섞인 것 같았으니 저 한국인 커플도 아닐 테고 누가 그 소리를 같이 들었다면 내가 이렇게 혼자 머리 아프진 않았을 텐데 혼자 고민에 빠졌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혼자 머리 터지게 고민하며 겉으로는 평화로운 조식을 마쳤다. 그렇게 찝찝하게 숙소를 나와 나는 달달한 추로스라도 먹어야겠다 싶어 바르셀로나 고딕 지구로 향했다.
고딕지구는 처음 바르셀로나 투어를 신청했을 때 같이 구경을 했는데, 보케리아 마켓이 그중 너무 좋아 다시 방문했다. 여행을 다니며 내게 많은 병이 있다는 걸 깨달았는데 이전에 언급한 것처럼 내겐 ‘CASTLE 병’과 함께 그 지역의 전통시장이나 지역 시장은 꼭 가야 하는 ‘MARKET 병’이 있다. 본래는 산 조셉 마켓이지만 보케리아 마켓으로 더 유명한 시장을 돌아다니며 과일로 끼니를 해결하고 생전 한국에선 먹지도 않던 추로스까지 맛있게 흡입하며 바르셀로나 여행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마지막의 밤을 보내려고 하는데, 카톡이 울렸다.
‘야 나 남자 친구가 바람 펴서 헤어졌어’
오 젠장. 그렇게 밤새 우리들은 ‘이 XX놈을 어떻게 할까?’를 주제로 토론이 시작됐다. 5W 1H로 시작해 이전에 낌새는 없었는데, 바람피운 년은 대체 누구인지. 그놈은 뭐라고 변명을 하는지 등 나와 친구는 카카오톡과 보이스톡을 이용해 한 밤의 토론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새벽 세 시쯤, 친구가 일단 여기까지 하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며 토론의 끝을 알렸고, 나는 그 끝이 내 여행기의 위기를 닥쳐올 것이락 생각도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그라나다행 비행기는 아침 7시 50분이었다. 그러나 열띤 토론으로 핸드폰 충전도 까먹고 잠든 나는 일어나 보니 6시 50분이었고, 나도 모르게 욕을 내뱉은 다음 내 눈에 보이는 물건을 챙겨 바로 택시를 탔다. 그렇게 7시 30분에 공항에 도착했지만, 항공사 직원들은 너무 늦었다며 날 안태웠고, 그렇게 나는 공항에서 길 잃은 미아가 되었다. 진짜 너무 울고 싶었는데, 울면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될 것 같아 꾹 참고 방법을 알아봤다. 먼저, 당일 기차를 알아보니 이미 야간기차는 SOLD OUT, 방법은 비행기가 제일인 것 같은데 당일 비행기는 너무 비싸 그다음 날 비행기가 제일인 것 같았다. 방법을 찾았으니 돈을 해결해야 했다. 나의 영원한 서포터 엄마에게 전화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욕 한 바가지를 먹었더니 내겐 엄마 카드 사용 기회가 생겼고, 그 날의 비행기는 너무 비싸 다음날 비행기를 타는 것으로 하고, 공항에 짐을 맡기고 다시 바르셀로나 중심지로 갔다.
어이없이 생긴 바르셀로나에서의 하루, 세상 우울한데 우울함을 그냥 느끼고 있기엔 하루하루가 아까웠다. 어떻게 도망 온 유럽인데. 뭐라도 하나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 몬주익 분수를 보러 나왔다. 당시 내가 갔을 때는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 분수 쇼를 했는데, 일정이 나와 전혀 안 맞아 일주일 정도 바르셀로나에 있었음에도 분수 쇼를 못 봐 아쉬웠었다. 그런데 비행기를 놓치는 덕(?)분인지 몬주익 분수 쇼를 볼 수 있었다. 고딕 지구에서 추로스와 맥주를 사서 몬주익 분수 쇼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를 탁– 따니 마음이 탁– 하고 풀리더라.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즐기자’
지금 생각해보면 몬주익 분수를 봐서 다행이다 싶다. 부모님에겐 참 예상치 못한 변수의 불효를 했지만, 덕분에 나는 하루라는 시간을 얻어 새로운 경험을 했다. 그렇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however 아직까지도 나는 핸드폰 충전도 안 하고 잔 나를 원망한다. 그냥 웃으면서 실패도 인생이지! 하고 넘어가기엔 난 쿨하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젠장, 그때 비행기 표 너무 비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