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 책 100권 읽기

책 읽기 편

by 봉봉주세용

신입사원 때 부산에서 팀 회의가 있었다. 다음 분기 판매 계획을 세우는 회의였는데 분위기가 무거웠다. 판매가 어렵던 시기라 어떻게든 돌파구가 필요했다. 조를 짜서 각 조별로 판매 리뷰를 하고 다음 분기 판매 전략을 짰다. 왜 판매가 어려웠는지 원인 파악을 하고 다음 분기 어떻게 판매를 할 지 고민했다.


아이디어를 취합하고 토론을 거쳐 다음 분기 판매계획을 완성했다. 완성된 계획은 각 조별로 발표했는데 발표 중간중간 본부장님이 날카롭게 질문을 했다. 하루가 참 길게 느껴졌다. 아침 일찍 시작된 회의는 늦은 저녁에 겨우 마무리됐다. 회의를 마치고 광안리 근처에 있는 횟집에 가서 회식을 했다.


마침 그날이 내 생일이었는데 팀장님이 본부장님에게 생일 선물로 덕담 한마디 해 달라고 했다. 팀원들이 모두 잔을 채우고 덕담 후 건배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본부장님은 한참 생각하다가 한마디 했다.


책을 많이 읽어라.


그리고 덧붙여서 얘기했다.


쌓여가는 책의 높이만큼 실력이 쌓인다.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인생을 살아갈 때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 전에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한번씩 책을 사기는 했지만 몇 장 보다가 접어두고 책상에 올려 두었다. 한참이 지난 후 다시 책을 펼치는데 또 몇 장 읽다가 다시 접어서 책상에 올려 두었다. 그런 것이 반복되다가 기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럽게 읽던 책을 그만 읽게 된다. 접었던 페이지는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1년에 책 1권을 안 읽었던 것이다. 조언을 들은 그날 이후로 책을 제대로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읽어야 하나 생각하다가 100권 정도 읽으면 충분할 것 같았다.


책 100권을 읽으면 본부장님 얘기대로 실력이 쌓일 것 같았다.


처음 읽은 책은 최인철 교수가 지은 ‘프레임’ 이었다. 당시 팀장님이 선물로 준 책이었는데 신입사원이었던 내가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라는 메세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프레임’을 다 읽기까지 한달 정도 시간이 걸렸다. 퇴근하면 시간이 될 때마다 카페에 가서 책을 읽었는데 집중이 잘 안 됐다.


책을 잠깐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졸고 있었다. 그러다 정신이 들면 다시 몇 장 읽다가 지루해지면 어느새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 실시간 기사를 읽고 카톡을 확인하고 그러다가 다시 책 읽는 것을 반복했다. 책 읽는 습관이 안 되어서 그랬던 것 같다. 책을 띄엄띄엄 읽으니 책 내용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그렇게 책 한권을 다 읽으니 뿌듯함이 컸다.


책을 읽고 다 읽은 책은 바닥에 쌓아 뒀다. 책이 쌓이는 모습을 보며 내 실력이 쌓인다고 상상했다. 한권 씩 한권 씩 다 읽은 책의 권수가 늘었다. 100권까지 책을 쌓으려고 했는데 30권이 넘어가니 한쪽으로 책이 쏠리며 넘어졌다. 그래서 책 제목을 앞, 뒤로 엇갈리게 하여 책을 쌓았다. 그것도 50권이 넘어가니 역시 쓰러졌다. 벽에 기대서 책을 쌓다가 그냥 30권씩 나눠서 책을 쌓았다.


그렇게 100권을 쌓는데 1년8개월이 걸렸다.


100권의 책을 읽으면 큰 변화가 생길 줄 알았다. 실력이 확 늘고 인사이트가 생길 줄 알았다. 책 100권을 읽었지만 크게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다만 예전에는 집에 있을 때 티비를 틀어 놓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는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티비를 없애고 책을 읽었다.


밖에서 시간이 생기면 카페에 가서 책을 읽었다. 책 읽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초반에는 100권을 채우려고 억지로 읽었는데 어느 순간 책 읽는 재미가 생겼다. 내가 관심있었던 분야의 책을 찾아서 읽고 마음에 울리는 책이 있으면 그 작가가 쓴 책을 찾아서 읽었다. 목표로 했던 100권 읽기를 끝냈지만 이미 책 읽기가 습관이 되어 있어서 멈출 수 없었다.


100권을 더 읽어서 200권을 채워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100권을 더 읽는 데는 1년2개월이 걸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4 소주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