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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칠리 Oct 05. 2022

10 | 갑자기 팀 에이스가 되었다.

허울뿐인 추앙 대신, 돈으로 주세요

네가 우리 팀 에이스잖아.


많은 일 끝에, 나는 기존에 맡고 있던 운영 업무에 전념하기로 했다. 본래라면 다른 신생 프로젝트에 투입되었겠지만, 기존 업무를 이어받을 사람이 돌연 잠수를 탔으니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런데 웬걸. 나는 갑자기 팀 에이스로 불리기 시작했다.



책임님께 들었는데, 칠리님이 저희 팀 에이스라면서요?


사실 '에이스' 소리는 조금 일찍이부터 들었다. 유니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신입 직원이 있었는데, 다른 브랜드를 보조할 사람이었지만 초반에는 내가 담당하고 있는 브랜드 업무를 배우며 적응하기로 했었다. 그래서 잘 해보자는 의미에서 밥을 사주러 가고 있었는데 그때 그 사람이 내게 책임이 했던 말을 전했다.



누가요? 제가요? 제가 에이스라고요?


나는 당혹스러움이 컸다. 이제 막 1년 차를 넘긴 시점이었다. 우리 팀에는 나보다 2~3년은 더 경력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겨우 적응을 끝마친 햇병아리에게 에이스라니. 나는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곧장 되물었다.



책임님께서 칠리님이 에이스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칠리님 같은 에이스가 될 수 있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이어진 대답에 나는 괜히 너털웃음을 지으며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제가 에이스는 아니에요, 하고 반박했다. 에이스는 둘째치고, 책임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책임은 늘 나에게 '필요 없다'를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입버릇처럼 내게 퇴사하고 싶으면 하라고 했고, 내가 없어도 다른 사람을 쓰면 된다고 했다. 내가 퇴사 의사를 밝힌 적도, 일을 하지 않은 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 사람이 나를 '에이스'라는 단어로 칭하다니. 부사수에게 보여주기식으로 칭찬한 것이라 생각해 봐도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일단은 칭찬이었기에 그때만 해도 나는 그냥 웃어넘겼다.



좀 잘 챙겨줘. 잘 알려주고. 네가 우리 팀 에이스잖아.


문제는, 이제는 책임이 직접적으로 내게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책임은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내게 잘 챙겨주고 잘 알려주라고 했다. 나보다 경력직인 사람들을 두고도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내가 에이스이기 때문이었다. 이게 무슨 에이스 비스킷 씹어먹는 소리도 아니고. 덕분에 '에이스'라는 단어가 좋은 의미가 아닌, 귀찮은 일을 시키기 딱 좋은 명분으로 들렸다.



이쪽은 칠리씨. 상세페이지 기획 전문가지.


그 이후로는 다들 나를 에이스로 부르기 작정이라도 한 듯 나를 추대했다. 하다못해 수석님마저 나를 전문가이니, 에이스이니 하는 호칭을 덧붙였다. 원래는 새로운 직원이 들어와도 간단하게 이름만 소개하고 끝났는데, 이제는 웬 기획 전문가라는 호칭이 붙었다. 거의 모든 상세페이지를 기획하고 있었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지만, 아직도 수석님께 피드백을 많이 받던 시기였기에 그렇게 소개받는 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제는 전체 회식 자리에서도 나를 에이스라 불렀다. 수석님이 운을 떼고 책임이 받고. 심지어는 몇몇 동료 직원들마저 동조하니 부끄럽다 못해 민망했다. 한두 번 불리면 어떻게든 칭찬으로 받겠는데, 시도 때도 없이 그러니 이제는 나를 놀리려는 건가 싶었다.


이 외에도 '에이스이니까' 당장 업무가 많아도 새로운 제안 시안에 참여해야 한다거나, '에이스라서' 신입을 챙겨야 하거나, '에이스이기 때문에' 팀 이슈에 대해 책임도 져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왕왕 오갔다. 이쯤 되니 나는 '에이스'라는 단어에 환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놈에 에이스, 에이스! 그럼 그만큼의 돈을 줘!


마음 같아서는 에이스라는 핑계로 업무를 늘려가는 그들에게 연봉이나 제대로 쳐달라며 소리치고 싶었다. 에이스이기 때문에 책임져야 할 일들은 너무 많은데, 에이스라서 받는 혜택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가볍게 쏟아지는 추대와 종종 회식 자리에 불려나가는 정도. 하지만 그것은 내게 하등 쓸모없는 것들이었다.



오, 에이스! 에이스면 대단한 거 아냐?

그동안 고생한 게 헛되지는 않았네! 멋있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대단하다느니 고생했다느니 축하부터 해주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고작 1년이 막 넘은 시점에, 다른 경력직을 두고도 에이스 소리를 듣는다니. 나의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니 영광스러운 칭찬이었다. 그러나 나는 달갑지 않았다. 너무나도 고마운 호응에 나는 쉬이 웃을 수 없었다.


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에이스라는 단어 끝에는 꼭 '그러니 업무를 더 해'라는 꼬리표가 붙어왔다. 심지어 연봉이나 복지 수준은 그대로인 채 말이다. 내가 에이스던 아니던 팀에서 내 의견이 묵살당하는 것도 신입 때와 다를 게 없었다. 이러니 어찌 칭찬을 칭찬으로만 듣겠나. 허울만 좋은 일종의 놀림과 노동 착취로 듣지. 결국 나는 칭찬마저 외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더 지났다. 정신없이 굴러가는 시즌 인아웃에 어느덧 나는 곧 2년 차를 바라보고 있었고, 이제는 에이스니 뭐니 하는 말에도 농담으로 받아칠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기어코 책임이,  작업물을 훔쳐 가고  것이다.





*본 글은 시리즈로, 이야기가 다음 회차에 이어집니다.

이미지 출처

Photo by Klim Musalimo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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