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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ll dude Aug 14. 2022

아니 그럴거면 한국에 계속 있지 그랬어

어학연수, 유학 가서 이러기야?

이제는 까마득한 옛날, 2003년 여름.

역대 최악의 폭염으로 프랑스 파리의 40도에 육박하는 더위는 가히 살인적이었다. 에어컨이 설치된 집이 거의 없었고 독거노인수가 상당히 높은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고령자를 비롯하여 약 1만4천명이 사망할 정도의 잔인한 더위가 지속되는 여름이었다.


에비앙 1리터 짜리를 한개 팔에 끼고 프랑스어 사전이 들어 있는 무거운 가방을 매고 길을 걷다보면 숨이 퍽!하고 차고, 눈앞이 피잉! 도는, 살이 저절로 쭉쭉 빠지는 여름이었다.


솔직히 - 에비앙 워터는 당시 지하철에서나 카페 테라스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멋진 갈샛 머리의 빠리지엔느가 바닥에 놓아둔 자신의 에비앙 생수 1리터 패트병을 들고선 벌컥 벌컥... 아니 갈증을 해소하는게 느껴지면서도 너무나 우아하게 마시는 그 모습을 보고 매료당해, 그  순간부터 나는 에비앙 생수병을 들고 다녀야 파리 시내를 활보 할 수 있기나 한 것 처럼, 1일 1에비앙을 실천하고 있던 우둔한 멍청이였다.


그렇게 파리에서 보내는 나의 두번째 여름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하루하루가 기대되는 그런 날이었다. 단기 어학연수로 2개월 있었던 지난 여름과는 달리, 올해는 학교를 다니게 될 나는 여름이 끝나도 파리에 계속 머무르게 된다는 사실로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나에겐 이런 폭염 따위는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책은 물론, 프랑스 tv도 열심히 보고 당시 힙합을 좋아하던 난 프랑스 힙합음악을 들으며, 단어 공부와 프랑스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속어, 은어도 섭렵하며 불어공부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프랑스에 있는 매 순간을 언어학습의 시간으로 삼아 프랑스어 원어민이 되겠다는 결의에 차있었다.


건식 사우나처럼 뜨거웠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거실의 창문을 열어놓고선 밤9시가 되도록 해가 지지 않는 하늘이 조금씩 코발트 빛의 짙은 파란색으로 변해가는 것을 쳐다보기도 하고, 맞은 편 건물의 몇 몇 집에서 오렌지 색의 조명이 켜지고 움직이는 실루엣들을 한번씩 힐끔힐끔 보면서 프랑스어 공부 중이었다.


이윽고 매트한 회색 컬러의 선불 폰 노키아의 단조로운 벨소리가  크게 울린다.


보르도에서 어학연수 중인 친구 A의 전화다. 대학 동기인 친구 A와는 같은 시기에 프랑스로 유학을 와서 가끔씩 연락을 주고 받으며 지냈다. A는 보르도의 어학원에서 만난 다른 한국 학생들과 함께 몇 주 후 주말에 파리로 올라와서 몇일간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 그럼 파리 오면 만나자. 파리에서 우리가 만나다니. 정말 재미있겠는데? 곧 만나!"

 



2-3주 후 보르도에서 파리로 온 A와 그녀의 친구들을 식당에서 만났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각자의 어학원 정보도 공유하며 수다를 떨었다. A와 친구들은 아직 불어가 술술 나오지 않는다며 식사 주문때도 그러더니 디저트를 시켜야 할때도 나에게 부탁했다. 아니, 불어를 유창하게 말하지는 못해도 메뉴판을 보며 '이거 주세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A와 나는 명색이 대학에서 불어 전공자로 거의 매일 약 4시간 정도는 불어 전공강의를 들어왔기에, 프랑스 현지에서 중급반 이상의 어학원을 다니고 있으면 식당에서의 주문쯤은 혼자 해결할 수 있어야지 싶었지만 그녀들의 엥엥거리는 애교섞인 등쌀에 못이겨 그녀들이 원하는 디저트를 대신 주문해줬었다.


A와 함께 보르도에서 파리를 방문한 친구들은 한명은 우리보다 나이가 꽤 많은 언니었는데 모 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강사로 지내 프랑스의 미술 대학원 박사 과정을 밟으러 왔다고 한다. 어학능력 시험을 합격해야 학교에서 정식으로 입학을 허가해준다고 하여 프랑스어 마스터가 시급한 언니었다. 다른 한명은 Y대 정치외교과에 다니고 있는 친구였는데 외교관이 장래희망이어서 제2외국어로 불어를 선택해서 외무고시를 준비할 예정으로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어학연수를 왔다고 한다.


유창한 불어 실력을 목표로 프랑스에서 지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 기특하기도 하고 여러가지 문화 충격 혹은 인간으로서 삶에 대한 새로운 사실과 단계들을 배워가며 여기 있다는 생각을 하니 울컥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는 파리보다는 조용한 보르도에서 지내고있는 들이 파리에 있는 동안 내가 이 곳에서 사귄 친구들도 만나면 좋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에 우리집으로 와. 파티하자! 우리 어학원 친구들이랑 다른 친구들도 부를게!"  


"어머, 정말? 그래! 그럼 문자로 주소 보내줘! 토요일에 다시 만나!"


이튿 날 나는 어학원 친구들에게도 하우스 파티를 알리고, 자주 가는 레코드 가게에서 알게 된 파리 친구들도 문자 메시지로 파티에 초대했다.




이틀 후 토요일 저녁, 보르도 친구들을 위해서 하우스 파티를 준비했다.


자주 가는 빈티지숍에서 알게 된 파리 친구들, 어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는 각국의 친구들을 초대했다.


저녁 8시부터 파티를 할거라 알렸었는데, 아시아권 친구들은 모두 8시 정각을 기준으로 10분 전후로 도착했다.  이후 북미권 친구들도 도착을 하고, 집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처음 만나는 친구들끼리 비주(bisous, 서로 반대편 볼을 부딪히며 쪽~하고 뽀뽀하듯 소리를 내는 - 볼에 입맞춤 소리를 내는 프랑스식 인사) 를 하고 통성명을 하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유럽, 남미 친구들은 일찍 온 친구들도 있지만 많은 남미친구들은 밤 10시부터 줄줄이 비엔나처럼 도착을 했다. 잔잔하게 틀어놓은 라운지 하우스 뮤직도 누군가에 의해 볼륨이 한층 높여져 흘러나오고 있었고,친구들의 음성도 점점 높아져만 가는 북적북적한 홈 파티였다.  A와 그녀의 친구들에게도 좋은 시간이기를 바랐다.


바닥난 음식과 음료를 채우다가 고개를 돌려 A와 그녀의 친구들을 찾아보았다. 그녀들 셋은 나란히 소파에 앉아있는데 이를 어떡한담. 다양한 국적의 나의 클래스 메이트들이 인사를 건네도 영어와 프랑스어 모두 잘 하는게 아니라며 무조건 대화를 차단해버린다.


"Um... No English. Je parle pas francais!(불어를 말하지 못해요!) We are good. Thank you!"


"Oh you speak French! Oh you speak English too! Haha! (아니에요, 불어를 하는데요?! 하하!)"


한 친구가 농담으로 '영어, 불어 모두 다 잘 하잖아?!'라며 걱정말라며 계속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이 친구들이 있는 쇼파 쪽으로 냉큼 달려가 "이 친구는 마티유야. 내 친구의 친구였는데, 친구가 되었어." 라며 친구를 소개했다.


A가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내게 귓속말을 한다. 모르는 사람들이랑 자꾸 영어 또는 불어로 얘기를 해야 하는게 편하지가 않다고 한다.


불편해하는 친구를 위해 나도 쇼파에 앉아 얘기를 나누었지만, 오늘의 모임 주최자인 나는 여기저기 불려다니기도 했고, 늦게 도착한 친구들과 인사도 하느라 A의 곁에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부엌 냉장고 앞에서 몇몇 친구들과 얘기 중이었는데, 떠날 채비를 마친 A와 그녀의 친구들이 작별인사를 하러 왔다.


벌써 가냐고 붙잡았지만, 그녀들은 별 다른 말 없이 모두에게 "빠이~!"라는 인사를 한번에 남기고 떠났다.  그녀들이 남기고 간 순간의 차가운 정적은 다시 음악소리, 담배연기, 시끄러운 대화들로 사라졌다.


이튿날, 보르도로 돌아가는 그녀들을 Gare du Nord(북역) 기차역에서 만나 커피를  마셨다. 뭔가 섭섭한게 있는 듯한 A에게 파리에 다시 오면 만나자고 했더니, 그땐 "절대 절대로"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지 말라며 어제 저녁 파티가 불편했다며 기차에 올라탔다. 그러자고 얼버무리며 작별인사를 했다.



계절이 바뀌고 A는 파리에 다시 왔지만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은 샹젤리제 명품거리에서 쇼핑만 하다가 내려갔다. 나를 불러내서는 핸드백이며 구두며 호화로운 매장에 가서 이것 달라 저것 달라, 사이즈 한 치수 더 큰걸로 달라 등 프랑스어로 통역 좀 해달라고 했던 씁쓸한 기억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A는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프랑스 와인회사를 운영해오고 있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소싯적에 프랑스로 1년 넘게 어학연수를 다녀왔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불어를 구사하지 못한다.





A와 그녀의 친구들처럼 - 처음 만나는 이들 또는 - 친구들의 SNS에서 많이 봐오고 얘기도 많이 들어온'친구의 친구들'을 실제로 만나면, 너무나 어색해하고 이유없이 부끄러워하는 친구들을 꽤 많이 봐왔다. 외향적이지 않은 개인의 성격으로 인하여 사회생활을 즐기는 성향이 다른 것일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그룹의 친구들을 한자리에 초대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를 소개해서 네트워크를 넓히는 데 일조했다고 믿으며 짬뽕 파티를 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나는, 이러한 성향의 친구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던 걸까?


나도 A도 그녀의 친구들도 모두 프랑스어를 현지에서 배우기 위해 프랑스에 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현지 친구를 사귀고 국적을 불문하고 함께 수업을 듣는 어학원 친구들과도 불어 말하기 연습을 하는 것이야말로 불어공부의 산체험 아닐까? 난 그랬다. 프랑스까지 와서 굳이 한국인 학생들 모임을 찾아 거기서 언니, 동생, 오빠하며 오로지 한국인 무리에서만 활동하는 이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한국의 같은 고향 출신이라 친해지고,  같은 학교 출신 등의 이유로 무의식적으로 자동생성되는 정(情)을 통해 타국에서의 외로움도 같이 달래고 정보도 공유하면서 여러가지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장점의 효력도 크다. 하지만 이런 그룹에만 한정된 교류로 어학연수, 유학 생활에서의 인간관계를 넓힌 친구들은 결국엔 한인사회를 못벗어나고 현지 언어를 사용할 기회가 많이 없으니 자연히 언어실력은 향상되지 않아 준비하는 미래가 좌절되거나 힘들어 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하였다. 그런 생활을 한국에서부터 계획했던 것이라면 몰라도, 유학을 준비하고 꿈꾸던 그 시기엔 아마 다들 해외에서 언어도 유창하고 내가 꿈꾸던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보내리라고 다짐했을 것이다.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외국에 나와서까지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저녁마다 보고



이건 비단 사석에서의 만남뿐만 아니라 어학원, 대학교, 직장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풍경이다. 국적이 다른 친구들과 앉아 언어를 배우다보면, 아시아 출신 학생들은 꿀먹은 벙어리마냥 질문도 없고 선생님이 묻는 질문에 크게 답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비아시아 국가에서 온 친구들은 아시아계 친구들보다 문법도, 어휘도 모두 엉망이지만 너무나 자신있게 대답을 하고 발표를 한다. 그 중에 몇명은 정말 개인교습 시간인 마냥 쉬지 않고 말을 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어학연수 시절 스페인에서 온 어느 건축가 아저씨 한명은 정말 1:1 개인과외 시간처럼 혼자 질문하고 선생님이 하는 질문에 가장 크게 답하는데, 문법적인 오류를 일으키거나 단어를 잘못 선택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 확인하고 싶은 것은 다 얘기하는데 얄미울 정도였다. 그런데 1개월 후의 프랑스어 실력을 비교해보자. 이 민폐남 스페인 건축가 아저씨의 프랑스어는 이미 술술술 쏼라쏼라 이비자 섬의 해질녘 바닷물처럼 부드럽게 흘러나오고 있었고, 수줍음 많은 동양인 학생들의 불어실력은 정말 수분이 날아간 말라비틀어진 가래떡 마냥,  뻣뻣한 ...  '문자그대로' 첫번쩨 수업날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어학연수이건, 워홀? 이건 유학이건간에 - 어떠한 연유에서든 어학 실력을 늘리고 싶어 현지로 간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한국인 친구가 있으면 유학생으로서의 동병상련의 시련도 함께 나누고 의지할 수도 있어서 좋으나, 이 친구들이 나의 해외에서의 삶을 지배하면 안된다고 꼭 당부하고 싶다. 이왕이면 해외에 나온 김에 각자도생하고 나중에 우리끼리 만나서 또 서로에게 있었던 일 얘기하자고 약속하고 헤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한국인 친구들에게 둘러쌓여 한국 예능을 유튜브로 보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메신저 하고 이러면서 하루를 보내지 말았으면 한다.



서툴어도 오늘 어학원에서 배운걸 활용해서 문장으로 혼자 말해보기도 하고,

일부러 슈퍼에서 직원한테 질문해보기도 하고

버스정류장에 앉아있는 할머니한테 얘기해보고 해봤으면 좋겠다.



당신이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더 -  낯선이들과의 대화, 접근, 도움의 손길, 도움을 주려는 손길에 훨씬 순수하고 넓은 마음과 낮은 경계심으로 당신의 첫 문장에 대답하고 대화를 이어갈 사람들을 많이 만날 것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당신의 외국어 문장이 문법적으로 틀렸어도 어떻게든 대화는 연결 될 것이다. 설령 상대방이 전혀 다른 뜻으로 이해를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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