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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칠칠 Nov 02. 2020

여기 변기가 없는데?

유월 이십 구일. 일본 지바현.


    6월 29일부터 7월 24일까지 약 한 달 여행의 막이 올랐다.


    70만 원 왕복 비행기 표 1회 경유지는  일본 지바현이었다. 일본만 대여섯 번 다녀온 경험이 있는 나는 경유지가 일본이라서 반가웠다. 길을 물어볼 정도의 일본어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일본 음식이 입맛에 맞았다. 일본은 어쩜 백화점에서 파는 도시락도 귀엽고 아기자기하고 내 입맛에 착 붙는지.. 딱 하루 경유라서 자주 가던 오사카가 아니어도 좋았다. 공원도 가고 근처만 돌아도 반나절 보내는 건 거뜬할 테니까.


    게다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2시간 비행에 이용하는 항공사가 아시아나였다. 단거리 이동 때 대형 항공사를 한 번도 이용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용해보니 왜 저가 항공사보다 몇 배나 비싼지 이해가 갔다. 좌석 크기와 간식. 좌석이 푹신한 건 1년이 지난 기억이니 가물가물하지만, 확실히 좌석 간 거리가 넓다는 건 아직도 확실히 기억한다. 다리를 쭈욱 뻗어도 넉넉한 좌석 하나만으로 2시간 비행이 편안했다. 그리고 자주 줬던 맛있는 간식들... 뭐, 다시 일본에 가고 싶어 하릴없이 스카이스캐너를 보다 일본 왕복행 비행기 값이 30만 원부터 시작하는 걸 보면 너무 비싸서 눈이 휘둥그레지긴 하지만, 이렇게 경유로 껴있다면 또 이용하고 싶다.



공항 한 쪽 벽면을 꽉 채우던 일본 전대물 포스터


지바현으로 향하는 숙소 안, 알라의 모습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후 목적지까지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후 지바현 내로 향하는 버스도 탑승해야 했다. 그때까지는 어떤 버벅거림도 없이 스무스하게 진행됐다. 내가 예약한 에어비앤비 숙소 안내 문자도 오고 했으니 앞장서서 당당하게 걸어갔다.


    문제는 에어비엔비에 표시된 숙소가 너무 멀었다. 8개 정도의 사진을 차례대로 따라갔는데 고가도로 입구가 나오고 기계식 무인 주차장 뒤편이 나와서 무섭기도 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오후 9-10시가 되자 정말 어두워졌다. 그렇지만 앞으로 가자니 위와 아래에 자동차 도로 뿐이지 인도는 끊겨있지… 오른쪽을 봐도 주차장과 철 울타리가 보여 이게 길이 맞나? 싶었다.


    핸드폰 라이트에 기대서 주차장을 나와 제대로 된 길에 도착해서 번화가가 보이기 시작하니 반가웠지만, 그마저도 대학생 두 명 여행자를 위한 번화가가 아니라, 유흥가였다.


    유흥가에 숙소를 잡다니... 알라에게 정말 너무 미안했다. 정말로, 그때 화를 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설상가상으로 추적추적 부슬비까지. 비 오는 유흥가 거리에 멈춰서 커다란 가방에서 작은 우산을 꺼내서 펴고 가방을 닫고 숙소를 찾는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비 오는 날씨에 주변이 어둡다 보니 숙소 입구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대여섯 번을 숙소 주변인 것만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도는데,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몇 번이고 혼자 다짐했는지 모른다.


    다신 나대지 말자 칠칠아.

    다신, 정말 다시는 몇 번을 다녀왔다고 해도 절대 자신만만해하지 말자.

    넌 아무것도 모르는 감자다. 감자다...




    몇 번을 되뇌었을까, 드디어 사진과 똑같은 입구를 찾아 사람 한 명과 감자 하나가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예약한 숙소는 3층 건물에 한 층마다 한 팀이 이용 가능한 구조였고 현관은 공용이었다. 아무튼 헐레벌떡 들어가서 우산을 털어 현관에 두고 우리가 예약한 1층 방에 들어가서 짐을 풀고 헤매던 중 편의점에 들러 산 주전부리를 저녁 삼아 먹었다.


    그리고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간 알라가 발견한 마지막 문제점.


“칠칠아, 여기 변기가 없는데?”


    황당하겠지만, 정말 나도 그랬지만, 장장 1시간 반을 빗속에서 걸어 지칠 대로 지친 우리에게 화장실 안 변기는 보이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진짜?... 와, 진짜 없네...”


    속으로 한 번 더 중얼거렸다. 죽자. 죽자 최칠칠. 호주 땅은 밟지도 못했는데 벌써 이런 대형 사고를... 어쩔 줄 몰라서 당황한 나에게 알라가, “그럼 우리 볼 일은 어떻게 보지...?”라고 물어봤다.


    빗 속을 걸을 대로 걸어 몸은 지쳤지, 제대로 씻지 못해 옷은 꿉꿉하지, 대충 때운 끼니로 배는 채워져 슬슬 졸리지...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던 나는 나름 열심히 고민해 대답했다. 그래도 아무렇게나 내뱉은 답변이긴 한데, 다행히 알라는 아직도 그 대답이 웃기다고 칭찬해준다. 내가 볼 땐 더러운 대답인데.


“마렵기 전에 일찍 자자.”


    적당히 순화해서 담아봤다. 아무리 학보사에서 하룻밤 꼴딱 새며 떡진 머리나 퀭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해도 이런... 이런 더러움을 공유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의 천사 같은 알라는 모두 이해하고 웃기다고 넘어가 줬다. 그날 잠에 들며 오랜만에 학보사에 감사함을 느꼈다.


    변기 없는 숙소도 유흥가에서 못 찾아 헤맨 날 받아준 알라를 만나게 된 곳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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