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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칠칠 Nov 03. 2020

누가 이파리게?

칠월 일일. 일본 치바현.


    여전히 우리가 묶었던 곳에 변기가 있는지 없는지는 지금도 수수께끼다. 이용했던 사이트에서도 기록이 날아가서 더 이상 확인할 방법도 없다. 차라리 잘됐다.


    아직도 이런데, 지금보다 더 정신이 없었던 그 날 아침에는 그 문제점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는 빠르게 이곳에서 탈출해 올 때 봤던 백화점도 들리고 근처 공원도 들려서 짧은 일본 여행을 즐기고 싶었다.


    유흥가 속 변기 없던 숙소는 사요나라다!




    앞서 소개했듯 우리가 거치는 일본 지역은 지바현이다. 한자로는 일천 천자와 잎 옆으로 쓸 수 있다. 여행 전 아무리 구글링을 해도 볼만한 장소가 나오지 않아 관광으로 유명한 도시도 아닌 듯싶었고 우리의 호주행 비행기 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어서 다음날에는 간단하게 지바 역 근처인 지바 공원과 지바 쇼핑몰만 들리기로 했다.


    숙소에서 빠르게 나오고 보니 그제야 전날에 세수와 양치만 했던 게 생각났다. 진성 지성인 내 머리카락! 대충 휴대폰으로 비춰봐도 번들번들한 게 당장 가려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캐리어에 모자를 챙긴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쇼핑몰부터 가서 모자를 사는 수밖에!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호주 여행을 가기 전까지도 일본으로 여행 간 적이 꽤 됐는데, 대형 백화점을 간 적은 한 번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또 일본 백화점과 우리나라 백화점의 분위기가 막 다르다는 건 아니었지만 새삼 생각해보니 그랬다. 다음 여행 때는 꼭 가봐야지, 다짐하곤 평소 사고 싶었던 벙거지 모자를 사서 푸욱 눌러쓰고서는 백화점 지하 식료품 코너로 가 점심을 골랐다.



참치 초밥, 생새우 초밥, 가리비 초밥, 연어 초밥, 그리고 바삭한 돈가스


    그리고 전날 숙소에서 겪은 모든 피곤함이 모두 씻겨져 갔다. 그냥 백화점에서 파는 초밥 정식에 돈가스인데도 이렇게 맛있다니. 사기다. 아니면 그냥 어제 하루 종일 캐리어를 끌고 다니고 잘 못 씻어서 뭐든 맛있던 타이밍에 밥을 먹었던 걸까. 그렇지만 아무렴 어떠랴. 숙소는 망했어도 일본에서 먹었던 음식은 망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후식으로 치즈 타르트까지 알차게 챙겨 먹고 든든해진 우리는 지바 공원으로 향했다.


    지바 공원에는 꽤 사람이 많았다. 운이 좋게도 그때 공원에 연꽃이 화려하게 피어서 호수에서는 뱃놀이도 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공원을 한 번 돌고 늦지 않게 공항에 가야 했던 우리는 탈 생각도 못 했지만, 여유로운 상황에서 다시 간다면 한 번은 타보고 싶다.


입은 옷이랑 잎 색깔이 똑같잖아! 이파리로는 구분 못하겠다고 해줘!


    민망하지만, 연꽃 사이에서 꽃받침도 해봤다. 뭐, 그때 입었던 옷이 연꽃잎 색깔과 비슷하니… 누가 이파리게? 하고 물어보면 다들 머뭇거릴지도?




    그리고 다시 공항으로 가는 길은 긴장한 것만큼 스릴 넘치지 않았다. 여권을 보여주고, 짐을 부치고, 탑승 시간을 기다리며 라멘도 먹고.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며 시킨 라멘을 기다리며...


    비행기에 타서는 점심으로 먹었던 일본의 초밥을 잊지 못해 기내식으로 초밥을 또 골랐다가 괜히 좋은 기억만 망칠 뻔했지만, 그래도 이게 호주의 초밥이구나~ 하며 그런대로 배를 채웠다. 초밥보다는 사이드 디쉬로 줬던 빵이 더 맛있었다. 아니다, 버터가 맛있어서 빵도 맛있다고 느낀 건가.


약은 약사에게, 초밥은 일본에서


    비행기에서는 유쾌한 에피소드도 있었는데, 식사의 마지막에 음료를 선택할 수 있었다. 탄산음료와 물, 주스와 핫초코였는데 첫 번째 음료를 받을 때 종류가 그렇게 많은 줄 모르고 승무원의 말 중간에 핫초코,라고 외쳤다. 당연히 대답과 질문이 동시에 들렸으니 승무원에게 핫초코라고 두어 번 더 말했고 그는 알겠다며 핫초코를 내밀었다. 그리고 다음 두 번째 식사에서 음료를 받을 때 첫 번째 식사 때 봤던 승무원이 다시 나타났는데, 그도 나를 기억했던 모양인지 씨익 웃으며,


“당신은 핫초코죠? 엄청 강조했잖아요.”


라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맞았다. 나 역시 작게 웃으며 핫초코를 받고서는 맛있다고, 고맙다고 하자 그도 멋지게 마주 웃어주며 트레이와 함께 우리를 지나갔다. 기나긴 비행 중에 생긴 유쾌한 기억이다.


사진 오른쪽에 방문할 도시가 몇 군데 보인다. 아래 시드니, 맨 오른쪽 위 브리즈번


    두 번째 식사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비행기는 호주 캔버라를 지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멜버른 공항에 도착, 호주에 첫발을 내딛는다.


도착하는 날 아침, 비행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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