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면 알아요.
산책길에 산수유 꽃을 만났다. 노란색 꽃은 신호등처럼 잠시 기다리면 금세 봄이 올 것 같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분명 어제까지 메마른 가지 위에 몽올진 매화가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더니 오늘은 매화 한 송이가 망울을 터뜨리며 이제 봄이라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지천에 봄의 꽃잔치는 시작되었다. 이제야 봄이 왔구나 겨우내 기다리던 봄이 왔다고 두꺼운 옷을 벗고 나섰는데 갑자기 패딩을 다시 입어야 할 만큼 찬바람이 불어온다. 지금 봄은 꽃샘추위와 밀고 당기고 주거니 받거니를 하며 술렁술렁 오고 있다. 겨울의 끝자락을 놓지 않으려는 듯 매서운 바람이 몰아쳐도 담벼락 외진 곳에서 작은 꽃이 앙증맞게 웃고 있다. 봄바람이 제 아무리 변덕을 부려도 꽃은 제 때에 맞추어 피어난다. 봄바람의 밀당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은 사람뿐이다. 사람의 밀당은 작은 꽃의 꿋꿋함만 못하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주저하고 어렵게 시작하고서도 봄바람처럼 변덕을 부린다. 하지만 바람이 훈훈해지고 꽃이 터지면 옷은 벗어 팔에 걸어두는 날이 온다. 더 이상 밀당도 없고 변덕도 없이 모두 완연한 봄기운에 녹아내린다. 시작은 좀 서툴지라도 일단 해보면 봄의 꽃이 왜 피어나는지 알게 된다.
운동하러 멀리 가지 않고 집 근처 생활체육센터에 나가 배드민턴을 해보기로 했다. 동네에서의 운동모임을 통해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보자는 생각도 생활체육센터를 찾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저기요... 아침 배드민턴반에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저랑 배드민턴을 안 하면 어쩌죠? 그때는 환불이 되나요?”
동네 생활체육관의 아침 배드민턴을 등록하면서 인포데스크에 계신 분에게 물었다.
“일단 해 보세요. 운동하러 가시면 다른 분들이 그냥 돌려보내지는 않을 거예요.” 인포데스크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내 귀에 이렇게 들렸다. ‘해보면 알아요’
아침 6시 어디서 주어온 배드민턴 라켓 하나를 덜렁 들고 생활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윤이 반지르한 마루 바닥 위에 고목처럼 서서 주위를 살폈다. 그날 이게 내가 한 전부였다. 그 후 한 시간이 지나서 나는 마루 바닥 위를 망아지처럼 뛰어다녔고 강아지처럼 굴렀으며 원숭이처럼 깔깔거렸다. 아침 배드민턴반의 꽃님이 누님이 라켓의 그립을 새로 감아 주었고 문식이 형님이 내게 자세를 다시 알려주었다. 다음날 나는 배드민턴장에 나가지 못했다.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했다. 며칠이 지난 지금은 새로 들어온 막내 신세가 되어 대기 선수로 기다리다 투입 명령이 떨어지면 비장하게 코트에 들어선다. 그리고 셔틀콕을 따라 좌우 앞뒤로 뛰어다니며 농락을 당한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인포데스크에 계신 분의 차분한 말이 되살아났다. ‘해보면 알아요.’
실패가 두려워 용기를 내지 못하는 순간에 일단 해보면 안다는 말만큼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말이 없다. 밀고 당기지 않고 이리저리 재지 않고 일단 해보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일들이 봄날에 꽃망울 터지듯 벌어진다. 봄꽃들이 밀당을 즐기며 피어날 때 삶은 좀 더 과감하고 단호해야 꽃을 피울 수 있다. 밀고 당길 여유가 없다. 일단 해보면 아는 일들이 즐비하다.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드럼을 배우러 홍대 근처의 드럼학원에 갔다. 드럼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요라는 바보 같은 질문에 홍대 인디밴드에서 드럼멤버로 있는 강사도 그날 귀에 익은 소리를 했다. “해보시면 알아요” 그렇게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박자에 맞춰 정확하게 드럼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아주 아주 느린 박자를 익혀야 한다. 느리지만 박자를 가지면 드럼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경지에 이르기 위해 거쳐야 하는 일들을 건너뛰고 가는 길은 없다. 그러하길 욕망할 뿐 현실은 너무도 느리고 더디다. 드럼으로 속주를 하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느린 박자를 수없이 반복하며 아주 조금씩 속도를 높여가면 된다. 빠르고 현란한 필인을 구사하고 싶다면 느린 박자를 반복해 연습해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드럼 선생님에게 레슨비를 주는데 도대체 무얼 알려주는 건지 의심하기도 했다. 일 년이 지나 본 조비의 ‘always’를 어설프게 완주하고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를 드럼 선생님과 합주를 마쳤다. 지금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스트로크 연습만 하고 있다. 드럼으로 박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스트로크를 다루는 능력이다. 가끔 드럼학원에 들러 밀폐된 공간에서 음악에 맞춰 드럼을 두드리는 즐거움에 빠진다. 드럼의 스트로크가 좀처럼 늘지 않아 포기하려 할 때 그때도 드럼 선생님이 말했었다. ‘어느 순간 되는 날이 와요. 일단 해보면 모두가 다 할 수 있어요’
실패나 실수가 문제가 아니라 좀 뻔뻔함이 있어야 시도해 볼 취미들이 있다. 사람은 모두 자신을 객관화해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 나이가 걸리기도 하고 내가 아직 남자라는 통념이 또 나를 걸고넘어져 시작을 주저하게 한다. 요즘은 요가반에 중년 남자들이 조금 보인다.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요가반은 여자 전용구역처럼 대부분이 여성 회원들이다. 여자들 틈에서 매트를 가지고 겨우 구석에 앉아 요가를 따라 한다. 정면에 있는 커다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민망해지면 나는 눈을 감는다. 요가반에 들어가 운동을 하는 나를 보고 어느 남자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요가반에 여자들만 있지 않나요?” 여자들 속에 남자 혼자 끼여 요가하는 일이 당연 금지되어 있다는 말을 에둘렀다. 지금 다니는 요가반에는 내 또래의 남자들이 두세 명이 같이 하고 있다. 이제 조금씩 여자들만의 운동으로 여겨지는 요가 그룹수업에 남자들도 참가가 늘고 있다.
요가를 마치고 다음 그룹수업 프로그램은 스텝박스이다. 절실하게 스텝박스를 배워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단지 요가만 하기에 그룹수업 전용 헬스클럽에 지불한 월이용료가 너무 비싸다는 게 스텝박스를 시작한 이유였다. 너튜브에서 스텝박스 운동을 검색해 보면 그리 어려운 운동이 아니다. 스텝박스 운동을 너튜브에서 보면 힘든 유산소와 근력 운동이 음악에 맞춰 재미있어 보인다. 스텝박스 운동은 단순한 움직임의 반복이라 생각하고 스텝박스 수업에 들어갔다. 닉키라는 예명을 쓰는 젊은 남자가 강사로 나왔다. 처음에는 내가 알고 있는 스텝박스 기본동작을 시작했다. 베이식스텝, v-스텝, 니업, 사이드 스텝을 가볍게 따라 했다. 그 후 곧바로 이어지는 동작은 그저 바라보는 볼 도리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래서 스텝박스 수업에 참가자 수가 고작 대여섯 명이 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음악에 맞춰 차차 스텝, 맘보 스텝을 섞고 거기에 더블 스텝과 안무를 넣으니 도저히 따라 할 수 없었다. 매주 같은 안무를 하면 집에서 연습이라도 해서 따라 해 보겠지만 매번 다른 안무로 수업을 하니 베테랑 수업 참가자도 어느 날은 어려워했다. 사정이 이러니 왕초보인 나는 엇박자로 수업을 따라 하다 바보 같은 나를 거울로 보았다. 솔직히 닉키의 매주 다른 안무가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가 너무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 수업에 참가하는 회원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고 느껴 속으로 부아가 났다. 몇 차례 수업에 더 참가하고 스텝박스 운동을 포기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지점에 도달했다. 어설프게 따라 하다 스텝이 꼬이고 넘어지는 내 꼴이 조금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이게 뭐라고 중년 남자가 여자들 틈에서 하는 꼴을 내려다보니 가족 중에 누가 볼지 부끄러워졌다. 이건 도저히 계속할 만큼의 뻔뻔함을 가질 수 없다는 마음에 스텝박스 수업에 들어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니 닉키의 스텝박스 프로그램이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었다. 닉키는 매주 안무를 짜고 그에 맞춰 군무처럼 완벽히 따라 하는 베테랑 회원들에게서 희열을 느끼고 수업에 열정을 갖는 것이다. 내가 닉키라 해도 매주 재미도 없는 기본 스텝만을 반복하는 일은 너무도 지루했을 것이다. 닉키의 너튜브를 보며 집에서 조금씩 연습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내가 아는 방법을 선택했다. 아주 천천히 스텝을 반복해 익혀 나갔다. 기본 스텝을 익히고 다시 수업에 들어가 조금 따라 하다 결국 다시 스텝이 꼬여 자연스럽게 슬랩스틱이 되었다. 어느 날 내 모습이 좀 민망해 내 앞의 회원에게 말했다. “내가 하는 게 좀 우스워 보이죠?” 회원이 대답했다. “안무를 따라 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해 다른 회원이 어떻게 하는지 보이질 않아요. 그만 두실 줄 알았는데 대단하세요.” 닉키는 자신의 수업에 수없이 많은 회원이 들어왔다 나가기에 처음 들어온 회원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수업에 들어온 사람들의 대부분이 시작단계를 넘기지 못하고 다른 수업으로 옮기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수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일정 시기 동안 수련이 필요하고 수업시간에 열등한 자신을 이겨낼 용기도 있어야 한다. 삼 개월이 지나 닉키의 수업의 반절 이상은 따라 하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지난 삼 개월 동안 그만둘까를 몇 번은 더 고민했었던 것 같다. 이 운동을 고집해서 하고 싶은 정도의 열정을 나에게서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업에 계속 참가할수록 조금씩 회원들의 동작과 맞춰가기 시작했다. 동작을 조금 맞춰가니 이 수업의 매력을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매주 다른 안무를 익히는데 조금의 방심이 있으면 다시 바보 맹구가 되기 십상이다. 긴장을 놓지 않고 집중하니 그 회원 말대로 주위 상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매주 집중해서 동작을 배우고 수업이 끝날 즈음에 하나의 완성된 안무를 회원들과 같이 반복하면 온몸에 땀이 흐른다. 수업을 마치고 닉키가 말했다. “선생님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그가 회원의 이름을 물었다는 이야기는 내가 이 수업에 계속 참가할 고비를 넘겼다는 뜻이다. 수업에 참가할 자격을 얻은 듯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