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한달살기]우당탕탕 제주도 함덕16일차(2)

안녕 서귀포, 안녕 함덕!

by 취미수집가

울다가 식어버린 에그타르트를 급하게 먹어서였을까, 옆칸에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뺨을 때려서였을까, 대관령 꼬부랑길 같은 한라산의 구불구불한 길 때문일까.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구토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원인이 무엇이든 상관없지만, 속이 울렁거리는 것에 흔들리는 버스가 단단히 한몫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멀미가 아니었다.(지난번 애월에 갈 때에는 괜찮았단 말이다.) 토하면 어떡하지?(절대 안 돼!), 못 참겠으면 비닐봉지에라도 토할까?(비닐봉지가 없을뿐더러 이것도 민폐다), 관광객이 버스에 토했다고 뉴스 나오는 거 아니야?(그 정도로는 뉴스에 안 나올뿐더러, 그럴 일 없다.) 다음 버스가 언제 올지 모르지만 일단 내려서 바람을 쐬어볼까.(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혼자 버스를 기다리라고? 못해ㅠㅠ)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들었고, 울고 싶었다. 속이 안 좋거나 소화가 안될 때 누르면 좋다는 엄지와 검지 사이를 사정없이 주무르고 눌러봤지만 금세 사라질 것 같은 메스꺼움이 아니었다. 김혜수 배우님의 죽겠어요 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딱 그 상태이다. 죽겠다 진짜.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이렇게 아픈데 하소연할 사람도 없고,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많이. 서러운 일이었다. 내가 참 곱게 컸구나. 중간에 환승을 해야 해서 그때까지만 참아보자 싶어서 버텼다. 울렁거림이 목구멍까지 차올랐고 한계에 다다를 즈음 환승정류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버스에 뛰어내려 길 건너의 약국으로 달려갔다. 약사님은 나의 안색을 보시더니 음주나 밀가루 같은 것을 먹었는지 물어본 뒤, 오늘은 굶어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하고 약을 처방해 주셨다. 따뜻한 물로 알약과 가루약을 한입에 털어넣었다. 서러워서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서러운것도 참 많다) '신고식 한번 제대로 하는구먼...'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내 정신을 붙잡고,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만 아프다는 것이다. 약을 먹고 나니 조금 진정이 되었지만 바로 버스를 탔다가는 약까지 게워낼 것 같아서 좀 걷기로 했다. 반쯤 혼이 나간 상태로 버스정류장의 노선을 따라 걸었다. 약발이 돌아서일까 두정거장쯤 걸었을 즈음에서야 좀 숨이 쉬어졌고 그제서야 다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약에 의지해 겨우 도착한 목적지 함덕해수욕장. 당장 눕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체크인까지 1시간이나 남았다. 카페를 갈까 하다가 해수욕장에서 바람을 쐬기로 했다.


몸이 안 좋은 와중에도 함덕의 바다에 감탄했다.


롱 패딩을 입고 있지 않았더라면 버틸 수 없을 정도의 차가운 바람과 온도가 바다에 왔음을 알려주었다. 모래가 날아가지 않도록 덮어둔 하얀 포대자루에 앉아 바다를 감상했다. 엄청난 바람에 파도가 와르르 무너진다. 그 파도를 피하며 꺄르륵거리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좋았다. 바다 한쪽에는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도 많았고, 강아지와 흙장난을 하는 아이도 귀여웠다. 역시 구경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 한참을 구경한 함덕은 정말... 너무 추웠다. 서귀포가 따뜻했던 건지, 이제야 제주에 겨울이 찾아온 건지, 겨울의 날씨를 뒤늦게 체감한다. 패딩을 안 가져왔으면 어쩔 뻔했나!(패딩 가져가라고 말해준 친구의 선견지명에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콧물이 나온다. 빨리 숙소에 가서 침대에 눕고 싶다.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체크인 시간인 4시가 땡 하자마자 들어갈 생각으로 몸뚱이를 일으켜 다시 어그적 어그적 숙소를 향해 걸었다.


이번 숙소는, 작년에 친구 마늘과 함께 왔던 바바 호미라는 곳이다. 여성전용 게스트하우스로 조용하고 깔끔한 시설과, 감성적인 주방과 식당이 포인트이다. 이곳의 특별한 룰이 있다면, 오전 11시~오후 4시 사이에는 숙소에 있을 수 없고,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저녁 11시에는 소등을 한다는 것이다. 작년에 방문했을 때에 좋았던 기억과 숙소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반 강제적으로 밖으로 내보낼 요량으로 선택한 이 숙소에서는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까. 1인 싱글룸을 예약하고 싶었지만 이미 차 버린 예약에 2인 도미토리 방을 예약했다.(이것도 겨우 예약할 수 있었다.) 그 말인즉슨 나 외에, 모르는 사람과 같이 방을 써야 한다는 것! 이제껏 늘 혼자였는데 필연적으로, 강제적으로(?) 매일 다른 누군가를 대면해야 한다는 사실이 설레기도 하면서 또 두려웠다.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그래도 이왕이면 좋은 사람이 었으면 좋겠다. 지수가 말했던 여행의 마법을 믿어보기로 했다.



*다음 이야기는 함덕에서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오늘의 우당탕탕 제주도

깨끗한집-> 카페블루하우스-> 함덕해수욕장-> 바바 호미 게스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