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한달살기]우당탕탕 제주도 서귀포16일차(1)

안녕 서귀포, 안녕 함덕!

by 취미수집가



서귀포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에 짐을 보내기 위해 일찍 눈을 떴다. 닫히지 않는 캐리어의 입을 겨우 눌러담고 낑낑대며 1층 카운터로 내려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짐을 담기 위해 캐리어 위에 올라타 혼신을 다하는 이유를 몸소 체험했다. 이 정도까지 짐이 많지는 않았던것 같은데...(그동안 너가 사재낀 물건들을 생각해 보렴)고새 살림이 늘었다.

캐리어와 가방을 픽업장소에 두고 밖으로 나갔다. 이른 시간이라 대부분 식당들이 문을 열지 않은 아침의 분위기는 낯설었다. 매일 준비되어있는 관광 풍경만 봤었는데, 공연 준비전 무대 뒤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을 보는 기분이랄까? 아침여는 시장분위기는 더 활기가 넘친다. 기분이 좋다.

쪽문 쪽에 아침식사가 가능한 시래기 된장국 집을 찾았다. 시장 근처여서 그런 걸까, 이제껏 보지 못한 용감무쌍한 프로 혼밥러들이 여기 다 모여있었다. 4인용 테이블에 각각 혼자 앉아 밥을 먹는데 든든한 동지애가 느껴졌다. 그동안 침대 위에 있느라 보지 못했던,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바지런하고 생기 있는 아침의 에너지에 마음이 괜히 말캉거린다.


밥을 먹고 다시 숙소로 들어갔다. 짐이 다 빠지고 난 뒤의 방은 '원래 이렇게 적막했나...?' 싶을 정도로 낯설고 고요했다. 침대에 누워 창문 너머의 풍경을 감상했다. 마지막 날인 것을 알았던 것일까? 창문 밖의 한라산이 오늘따라 더선명하게 잘 보인다. 매일 보던 이 익숙한 풍경도 지금이 마지막이다. 키를 반납하고 숙소를 나오니 더 실감이 난다. 그동안 함께 해줘서 고마웠어, 이제 정말 안녕!



서귀포에서의 마지막 방문지로 정한 <카페블루하우스>로 걸음을 옮겼다. '제주도에서 홍콩 현지인이 직접 홍콩 밀크티를 판매하는 곳'이라는 말에 안 가볼 수가 있어야지! 함덕으로 향하는 버스정류장과 횡단보도 하나 거리에 위치해 있어서 동선으로도 최적이었다. 걷다가 마주친 카페블루하우스는 건물을 보자마자 알았다.


여기다!


카페블루하우스


제주스러운 돌담 뒤로 초록 초록한 잔디밭과, 제주바다를 닮은 기분좋은 파란색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기본 메뉴인 홍콩 밀크티와 에그타르트를 주문했다. 밀크티는 홍차 원액을 우유에 직접 부어주셨는데 홍콩에 가본 적도 없고, 홍콩 밀크티도 마셔본 적 없지만, 홍콩에대한 로망이 생기는 맛이었다. 원래 밀크티가 이런 맛이었나? 인위적인 달달한 맛이 아니라, 고소하면서 담백한 맛. 부드러우면서 끝까지 깔끔한 단맛. 그 깔끔한 단맛이 너무 좋았다. 누군가 서귀포에 갈 일이 있고, 밀크티를 마시고 싶다면, 제발 여기에서 밀크티를 꼭! 마셔달라고 애원하고 싶을 정도이다. 인생 밀크티라고 얘기해도 아깝지 않다.


카페에 와서 무엇을 할까 하다가 빛의벙커에서 샀던 해바라기 엽서에 엄마에게 편지를 신나게 쓰다가 울어버렸다. 갑자기 떨어지는 눈물에 나 조차도 당황스러웠다. 나이 29살에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다니? 주책이다. '엄마'라는 단어는 요즘 나의 눈물 버튼이다. 내 나이의 엄마를 떠올리는 일은 어쩐지 낯설고 안타깝다. 엄마는 내가 잘 칭얼대지도 않고, 잠도 잘 자고, 주는 대로 잘 먹어서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정말...?) 내 나이 때 2살이 된 둘째까지 있었던 젊었던 우리 엄마. 엄마가 안타까운 이유는 젊은 나이에 나 자신보다 더 우선순위의 사람이 생긴 것. 나의 이름을 잃고 엄마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 엄마의 청춘으로 내가 만들어진 것이다.


"

엄마! 엄마한테 이렇게 글을 쓰는 일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

이제 해바라기만 보면 엄마 생각이 나. 제주에 온지도 벌써 2주가 되었어.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간다.

나는 여기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아. 혼자 보내는 데도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은 시간을 잘 보내고 있다는 의미일까? 나만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의 의사나 결정을 존중해준 마음이 고마워, 곧 서른살을 앞둔 지금, 내 나이 때의 엄마를 생각해 보고는 해.

고생 많았겠다.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을 텐데, 참 쉽지 않았을 것 같아.

아직 자유로운 나는 그 일들이 가늠이 안돼. 엄마는 언제쯤 엄마를 졸업할 수 있을까?

철부지 딸 때문에 고생이 많네... 나는 아직도 엄마 품이 좋은가 봐.

엄마 생각나서 몇 자 적어봤어.

남은 시간도 잘 지내고 갈게, 건강하게 청주에서 만나.

"


한참 눈물 콧물을 흘리며 훌쩍대다가 감정을 추스르고 나니 민망함과 부끄러움이 몰려와 카페 밖으로 나가 함덕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도망 나왔다. 어우 창피해.


하루만에 롱패딩을 입어도 덥지 않은 날씨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가장 악몽같은 시간이 시작되는 지도 모른채 버스에 올라탔다.





오늘의 우당탕탕 제주도

깨끗한집-> 카페블루하우스-> 함덕해수욕장-> 바바호미게스트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