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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가는 착한 책 <나다움> #4

Reason 나다움 "따라 하기 Paradox에 빠져버린 사람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나도 그런 것 같아요

뭔가 새로운 일을 하거나, 새로운 방법을 찾아서 일을 하고자 하면, 주변에서 다들 이렇게 이야기한다.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하느냐?”, “왜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하려고 하느냐?”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내가 원하니까요.” 그러면 또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그냥 이전에 했던 것처럼 하면 힘들지도, 어렵지도 않을 텐데 그냥 따라 하는 건 어때?” 이 말을 하도 많이 듣다 보니, 어느 날엔 ‘나도 남들처럼 그냥 편하고, 쉽게 살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한동안 살아보았다. 그런데 뭐랄까 그렇게 사는 내내 나는 내가 좋아하던 이 일(경영컨설팅)이 좋아지지 않았고,  즐겁고, 행복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이전의 나로 돌아왔다. 새로운 일을 찾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서 일(경영컨설팅)을 했다. 그랬더니 다시 나의 일이 좋아졌고, 즐겁고, 행복했다. 물론 몸과 마음은 더 피곤했지만 말이다.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하느냐?”, “왜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하느냐?”라고 질문했던 사람들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할까?’, ‘즐거울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들을 찾아다녔고, 질문을 던졌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으세요? 그리고 즐거우세요?"


어떤 답이 돌아왔을까?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나에게 돌아온 대 답은 이랬다. “일(Work)인데 어떻게 좋고, 즐거울 수 있냐!”라고 말이다.  그래서 다시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좋아하지도, 즐겁지도 않은 일을 왜 하세요?"


그들은 나의 질문에 “나도 남들처럼 일을 해야 먹고살지!”라고 하면서 “이 일(경영컨설팅)이 미래도 밝고, 수익도 괜찮고 남들이 추천하고, 선호하니까, 그리고 명함을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고, 뭔가 특별한 일 을 하는 사람으로 주변에서 인정해 주는 일 중의 하나니까!”라는 말과 함께 좋아하는 일은 먹고살기도 어렵고,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가져야지 직업으로 가져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남들이 좋아하고, 인정해 주는 일을 해야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이처럼 남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남들이 인정해 주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 일이 좋지도,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이 궁금증으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각종 책을 읽고, 자료를 검색하면서 나름대로 그 이유를 정리해 찾아보았더니 그동안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따라 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경영컨설팅을 하다 보니 가끔 이런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듣는다. “요즘 ○○기업컨설팅하고 있다며? 주변 사람 이야기를 들으니  ○○기업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던데, 나도 ○○기업의 주식을 살까?”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글쎄요. 제가 주식공부를 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정말 잘 몰라서다. 주식을 하려면 기업의 가치를 분석해야 한다. 분석을 한  시장에서 적절한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저평가 또는 고평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난 후에 투자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안 해 봤기 때문에 모른다. 그래서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업에 대한 분석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기업으로 돈을 벌었는지, 잃었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 그리고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이 많으면 자신도 따라서 ○○기업의 주식에 투자한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신이 아는 사람은 ○○기업에 투자해서 돈을 벌었다고 하는데, 나는 원금을 잃었다.”라고 말이다. 한마디로 친구 따라 강남 갔다가 손해만 보고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속담의 의미는 ‘자기는 하고 싶지 않으나, 남에게 이끌려서 덩달아 일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요즘에는 ‘친구가 하니까 나도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이야기가 주식뿐일까? 아니다. 부동산에서도, 여행에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남들이 좋다고 하는 모든 것에서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남들을 따라 하고 있다. 나의 이 말이 지나치다고 생각한다면, 인터넷 검색창에 ‘따라 하기’를 검색해 보라. 요리부터 시작해서 운동, 여행, 언어, 지식, 부동산, 주식, 연애까지 ‘따라 하기’라는 글이 넘쳐난다. 그리고 생각해 보라. 그동안 자신이 어떤 영화를 보았고, 어떤 음식점을 찾아다녔으며, 어떤 곳으로 여행을 갔는지 말이다.


우리는 왜 친구 따라 강남 갈까?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 친구 따라 강남을 가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따라 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 하면서 컸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멋대로 행동할 때면 항상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엄마/아빠가 싫어하잖아!”, “그렇게 하면 안 돼!”, “제발 좀 시키는 대로 좀 해!” 등의 이야기를 말이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공부나 운동을 잘하는 친구를 따라 하라고 배웠고, 회사에 다니면서는 선배들을 따라 하라고 배웠다. 그러다 보니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너무나 부자연스러운 것이 되어버렸고, 따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본인도 모르게 의식 깊이 각인되어 버린 것이다. 물 론 따라 하는 것이 아주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효율성 관점에서 ‘따라 하기’가 훨씬 더 좋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따라 하기’가 목표가 되어 버린 것이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친구 따라 강남 가기 바빴다. 그런데 그 강남이라는 곳이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과 같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과 다르다면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강남을 향해 가야 하지 않겠는가?


유행에 뒤처지면 안 돼!

얼마 전에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외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들어온 학생의 이야기다. 이 학생의 이야기를 간단히 여러분들에게 들려 드리도록 하겠다. 


“한국은 유행에 너무 환장하는 것 같아요. 피곤할 정도로요. 헤어 스타일이나, 옷 같은 패션이 가장 심한데 뭐 하나 유행했다 하면 길거리에 전부 똑같은 헤어스타일, 똑같은 옷을 입고 다녀요. 내가 살던 곳에서처럼 남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하게 입고 다녔는데 주변 사람들이 바보 취급까지 하더라고요. 

-중략- 

놀이, 음식, 문화도 유행을 심하게 타는 것 같아요. 2016년에 한국에 왔을 때는 카스텔라 같은 게 유행하더니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고, 또 갑자기 인형 뽑기가 유행하더니 사라져 버리고, 한국은 왜 이렇게 유행에 민감한 건지 모르겠어요”

-외국에 살다 온 어느 대학생의 이야기-


이 글을 읽고, 나는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행에 얼마나 민감한지 궁금했다. 그리고 유행과 관련된 글들을 찾아보았다.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행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유행사례들을 언급하자면, 먼저 1990년대 농구화 열풍, 2000년대 N브랜드 패딩 열풍, 2017년 롱패딩 열풍,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한정판 패딩 열풍을 이끈 패션유행, 2014년 이후 남성의 얼굴 화장 열풍, 2016년 노메이크업 열풍, 2016년 눈썹 문신 열풍, 2017년 초등학생 색조화장 열풍을 이끈 메이크업 유행, 1990년대 쌍꺼풀 열풍, 2000년대 코 성형 열풍, 2010년대 렛미인 열풍, 보톡스, 필러 열풍을 이끈 성형 유행, SNS의 싸이 열풍, 트위터 열풍, 페이스북 열풍, 인스타그램 열풍, 경제분야에서의 부동산 열풍, 주식 열풍, 가상화폐 열풍 등 교육, 사회, 문화, 경제, 정치에 이르기까지 온갖 유행들이 대한민국을 휩쓸고 갔고, 또 다른 유행들이 우리 사회에 몰아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정말 유행에 민감한 대한민국이었다. 


우리는 왜 이처럼 유행에 민감한 걸까? 

유행과 관련된 글과 자료를 찾아보다가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에 ‘앤트웨키(Antwacky)’라는 단어가 등재된 사실을 확인하였다. ‘앤트웨키’의 사전적 의미는 ‘시대에 뒤떨어진다’이다. 이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는 유행에 민감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특성에 대해 박성준 문화평론가는 이슈메이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그 이유를 이야기 적이 있다. 


“한국은 유독 집단주의나 군중심리가 강한 국가인데, 이로 인해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대신 집단에 어울리기 위해 유행에 편승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일이 많다.” 

-박성준 문화평론가, 이슈메이크 인터뷰 내용 중. 2018. 09.- 


박성준 문화평론가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집단주의, 군중심리가 강하기 때문에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유행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나머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모르게 되거나, 이를 뒷전으로 미루는 것은 문제이지 않을까?


'~해라!'에 익숙한 사람들

얼마 전 나는 아내가 어린 아들에게 “엄마 말 잘 들어서 너무 이쁘다”라고 칭찬해 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데 그동안 ‘나와 아내가 아들에게 정말 많은 규율을 정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해라, 양치질해라, 밥 먹어라, 이것 해라, 저것 해라 등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에게 지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아이에게 가르치고, 지시하는 모든 것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해 오던 습관이었거나, 아내가 해 오던 습관이었다. 즉, 어린 아들이 나와 아내의 삶대로 자라온 것이지, 아이의 삶은 없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가르치는 사람의 기준과 틀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의 기준과 틀에서 벗어나면 나와 아내가 어린 아들을 혼냈듯이 나 또한 선생님으로부터, 선배들로부터 혼이 났었고, 다시는 혼나지 않기 위해 더더욱 가르치는 사람의 기준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해라’라는 누군가의 지시나 명령이 없다면 사고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남의 기준과 틀에서 사고하고, 행동한 다는 것이 비록 나와 우리 가족뿐 이겠는가? 아닐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바로 ‘결정장애(決定 障礙)’와 관련한 설문조사 결과이다.


2017년 11월 27일, 파이낸셜 뉴스에서 다뤘던 기사로 뉴스의 타이틀이 “성인남녀의 80.6%가 결정장애 겪어”였다. 이 뉴스에서 다룬 통계는 인크루트 회원 32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다. 이 조사결과의 신뢰성은 95% 수준에서 표본오차 ±5.4%로 신뢰성이 매우 높은 것은 아니지만, 조사대상자 10명 중 약 8명이 결정장애를 겪었다고 응답한 내용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리는 왜 결정장애(決定障礙)에 걸린 것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결정장애를 많이 경험하는 것일까?’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연구자료들을 찾아 읽어 보았다. 그리고 결정장애가 높은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첫째는 바로 가정, 학교, 직장에서 이뤄지는 교육방식이다.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하자면 어떤 문제나,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문제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스스로 찾게 하는 기회를 우리의 부모, 선생님, 선배들이 사전에 차단해 버린 결과라는 것이다.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냐? 이렇게 해!”,  “그 문제는 이렇게 해야 돼!”, “그게 아니잖아, 그건 틀린 거라니까, 이렇게 하라고!”, “잘했어, 가르쳐 준 대로 하니까 되잖아!”라는 말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상황을 극복할 기회를 빼앗긴 것이다. 두 번째는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유교사상이 짙게 배어 있는 문화 때문이다. 장유유서는 어른과 어린아이 사이에는 사회적인 순서와 질서가 있다는 유교사상이다. 이 유교사상 때문에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피력하기 힘들고, 윗사람의 의견이나, 주장을 따라야 한다는 의식이 아주 깊이 몸과 마음에 배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삶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

자신의 삶은 부모, 선생님, 선배들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우리는 그동안 부모, 선생님, 선배들에게 의존해 왔다. 그리고 그런 삶으로 인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렇다고 그런 삶에 자신을 계속 맡겨선 되겠는가? 우리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자기 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일에서, 삶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삶은 스스로 결정한다는 글을 적고 보니, 국내에서<자기 결정>이라는 책으로 소개된 페터 비에리가 동아일보와 했던 이메일 인터뷰 내용이 생각나 찾아 적어 본다.


[동아일보 질문]

‘삶의 격’에서 가장 절실한 가치로 존엄성을 설파했는데, 이것이 ‘자기결정’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페터 비에리 답변] 

자기결정은 존엄성을 지키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삶의 방식이다. 상황에 휩쓸리거나 타인에 휘둘리지 않고, 모든 삶의 변곡점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스스로 결정할 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 


[동아일보 질문]

타인에게 휘둘리게 되면 존엄성을 갖기 어렵다는데, 우리는 사회적 동물 아닌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존엄성을 갖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페터 비에리 답변]

인간관계를 자신의 독립성을 해치는 게 아니라 서로의 독립성을 지지하고 독려하는 관계로 이끌어 나가면 된다. 이런 관계는 타인과 자신에게 모두 생각과 감정과 행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촉매제가 된다. 


[동아일보 질문] 

한국에서 이른바 ‘결정장애’가 화제가 됐다. 어떻게 생각하나?

[페터 비에리 답변] 

결정장애는 타인이 끼치는 영향력이 너무 막강한 나머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상태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전반적 세태다. 사회의 거대한 ‘인풋(Input, 입력)’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전혀 찾지 못하는 거다. 미디어에서 단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현상과도 관련이 있다. 이에 대한 해독 방법으로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는 명상을 들 수 있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자신에 대해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겪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말이다. 이를 통해 의식의 반경을 확대해 가고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삶 속으로 편입시키도록 하는 거다.

-2015년 10월 7일 자 문화면-



자기다움으로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판매수익금 전액을 기부했던 착한 책

<나다움>
다음 글은 
<나다움> Reason 나다움 "사람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요"입니다.
다음 글도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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