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 좀 끌어보았읍니다.
90년대에 중국에 있었고, 중국에서 MBA도 하고, 중국 친구들이 한국 사람이라 하면 믿지 않는 중국어로. 중국 관련해서는 제가 탁월한 친구라는 평가를 해주시는 절친한 대표님의 상해 출장에 동행하고 돌아왔습니다.
평소 만나지 못했던 중국 회사들과의 미팅 자리에서 시원하게 중국어로 맘껏 떠들었고, 중국에 대한 총론과 개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며,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목은 매우 거만했지만 실은 제 무지를(혹은 예전같지 않음을) 폭로하기 위한 어그로였습니다. 타인이 (그것도 제가 정말 존경하는 형님이) 나에 대해 탁월하다는 평가를 해주신다면, 그것은 과거의 나에 대한 것이고, 현재와 미래의 나는 그것에 부응하고 증명할 의무(오기)가 생기게 됩니다.
제 연령대에서는 중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사람이 극히 적고, 또 한중 관계가 가장 뜨거웠던 시절에 한국과 중국을 오갔다는 10년전의 과거로 살고 있는 저에게 "중국에 대한 탁월함"이 여전히 유효할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상해행 비행기에 올라탔습니다.
물론, 언어는 "야구에서의 빠른 발"처럼 가장 늦게 퇴화하는 영역이라 말은 잘 통합니다. 다만, 말은 의사를 담는 그릇이고, 그 그릇 안을 어떻게 채워 넣을지가 더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해당 국가에 탁월함을 갖춘 사람이라면 훌륭한 "의역"으로 그릇을 어떻게 채워 넣을지 고민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마침 흑백요리사 시즌인데 빈 그릇도 dish라 하고, 만들어진 음식이 채워진 완성도 높은 한 그릇도 dish라 하더라구요. dish가 dish가 되길 위해서는 그 익힘과 어울림의 정도가 even해야 합니다. 실은 그릇을 꽉 채울 수 있는 능력까지가 무조건 필요한 것입니다. 빈 그릇은 찬장을 채우고 있거나 어두운 식세기 내부에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나의 직접적 이해 관계가 걸려있지 않은) 타인의 미팅 자리에 역대 급으로 긴장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나의 찬장에 있던 그릇을 꺼냈고, 한 국자, 두 국자 그릇을 채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양 국가 간에 발음이 다른 특정 브랜드 명을 알려주기도 하고, 제가 아는 영역은 보충하기도 하며, 추운 날에 땀을 뻘뻘 흘리며, 빨갛게 볼이 상기되어 가며, 그릇을 채워나갔습니다. 미팅이 끝난 후에 한 분이 이걸 물어보시더군요. "어떻게 한국어를 그렇게 잘 하세요?(您韩语怎么这么好?)"
아, 일단 중국 현지인들에게 맛있는 한 상을 차려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0% 저를 중국 현지에서 고용된 통역이라 판단한 것 같았고, 내적으로는 "내 중국어 아직 쏴라있네"라 쾌재를 불렀습니다. "계속 상하이 현지에 계시는 분이시냐(您是长期base上海的吗?)는 질문이 뒤이었고, 이는 제가 현재 2025년에 통하는 비즈니스 중국어를 하고 있었다고 아전인수격으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네, 실은 제 자존감을 위하여 이들의 말에 대한 이기적 의역을 하였습니다. 전 기분파니까요.
잊고 있던 중국 관련 기억들과 세포들이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느낌이 강해지면서 어느새 한국어로 생각하고 중국어로 말하던 것이, 중국어로 생각하고 중국어로 말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한국어로 통역할 때 버벅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언어 멀티태스킹은 진짜 힘든 것 같아요. 동시통역가 여러분들 존경합니다. 전 못해요.
제가 내적인 기억 회복을 하고 있을 때 제 주변의 상하이는 이미 엄청나게 변화해 있었습니다. 14년에 칭화대 MBA 대표로 중국 전국 MBA 창업 대회 참가차 한 번 와보고 12년만에 왔으니 강산이 당연히 1.2번 변했을 시간이긴 합니다만, 중국의 "단계 건너뛰기식 발전"이 집약적으로 보였습니다. 택시를 십수번 불렀는데 9할은 전기차가 왔고, 그 중 5할은 모르는 브랜드인것부터 시작하여. 이제는 일상의 삶과 분리가 불가한 온오프라인 페이먼트. 그럼에도 여전한 우리네 서민들의 일상도 함께.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