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강호, 맹주, 호랑이 한국. 그리고 공한증이 있던 중국.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직전, 대한민국은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평가전을 치룹니다. 당시 절정의 골 감각을 자랑하던 대표팀의 스트라이커 황선홍은 중국 골키퍼와 충돌하며 어깨에 큰 부상을 입습니다. 1순위 스트라이커였던 황선홍의 부상은 월드컵 예선에서 멕시코전 1:3패, 네덜란드전 0:0패, 벨기에전 1:1 무승부라는 초라한 결과로 이어집니다. 사상 초유의 경기 중 차범근 감독의 경질이라는 사건도 있었죠.
이 시기에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은 중국에 "무패"를 기록하고 있던 시점입니다. 공한증이라는 단어를 한국과 중국 양쪽에서 모두 쓸 시기이기도 합니다. 90년대와, 2000년대 중반. 한국 축구는 중국 축구에 앞서 보였습니다. 딴건 몰라도 축구는 한국이 중국을 이긴다는 생각을 우리가 가지고 있었죠. 2016년이 된 지금, 월드컵,올림픽, 아시안컵 등에서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의 성적이 중국보다 뛰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차범근(허정무) - 김주성 - 황선홍(홍명보) - 박지성(이영표) - 기성용(이청용) - 손흥민 등으로 이어지는 슈퍼스타의 계보도 중국보다는 해외 진출을 하나의 변수로 놓고 보았을 때 뛰어나구요. 국내 프로리그 역시 한국의 K리그가 1983년에 아시아 최초의 리그로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3S 정책의 일환이긴 했지만요. 그 반면 중국 C리그는 1994년에 출범하여 국내 리그의 시작 시점으로도 우리가 앞섭니다.
자,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 루트와 중국의 경제 발전의 역사와 매우 유사합니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켜 내며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어 낸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에서 방귀 좀 끼려고 할 때, 중국은 2000년도에 WTO에 가입하며 본격적으로 세계 경제에 편입하게 되죠. 다시 축구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제가 1997년~1999년 중국 산동성 제남시에 있을 때, 제남시에는 한 축구팀이 있었습니다. 산동 루넝 타이산이라는 팀이 있었고, 당시 한국인 김정남 감독이 잠시 지휘봉을 잡았었습니다. 울산 현대 감독을 역임하시기도 하셨죠. 아래 그림은 1998년 당시 산동 루넝의 팬북인 것 같습니다. 딱 한국인 헤어스타일을 하고 계시는 우측 상단이 김정남 감독입니다. 제 동생이 그 때 김정남 감독이랑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올리긴 좀 그렇고 ㅋ
그 당시에는 제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한국 용병들이 꽤 중국 리그에서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축구에 막 눈을 뜬 중학생인지라 싱싱한 좌뇌우뇌로 축구 선수들 이름을 그렇게 암기했지만 몰랐던 선수들이죠. 이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 온 또 한명의 감독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우승청부사라 불리는 이장수 감독입니다.
이장수 감독은 충칭, 칭다오, 베이징, 광저우 등 여러 중국 팀을 지도했습니다. 특히 충칭에서는 2부리그에 머물던 팀을 승격시키고, 다른 팀에서는 우승도 시키는 등 어마어마한 업적을 쌓았죠. 지금 중국에서 돈을 가장 많이 쓰는 구단인 광저우 헝다(에버그란데)의 전전 감독이기도 합니다. 위 캡쳐는 광저우 헝다가 이탈리아 출신 감독 리피를 데려올 때의 기사입니다.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는데 팽을 당했죠.
중국 축구가 국내 리그를 만들고 (내수 시장을 폐쇄적으로 만들어가며) 성장을 막 시작했을 때, 한국에서 많은 지도자들을 데려갑니다. 축구는 선수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감독이 짠 판도 매우 중요한데, 그 지도의 (노하우)를 가져가기 위함이죠. 우리나라 중공업, 조선업이 활황세일 때와 인력 유출이 있고 난 다음의 오늘을 생각해 보시면 또 무언가 느낌이 오실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본격적으로 한국 선수들의 중국 러시가 시작됩니다. 제가 90년대 중반에 잘 알지 못했던 선수들 위주로 중국에서 뛰었던 것과는 달리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중국에 하나 둘 진출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최근 예능의 블루칩인 안정환 선수입니다. 대우 로열스때부터 팬이었던 선수인데..ㅠㅠ 한국인 최초로 이탈리아 세리A에 진출했던 안느. 파르마의 나카타와 비교하며, 일본에 히데토시가 있다면 우리에겐 코리안 판타지스타 안느가 있다고 열광했던 그 였는데..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 골든골 이후 이태리에 가지도 못하고 독일, 프랑스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수원 블루윙즈로 왔었죠. 그리고 수원 이후 선택한 곳이 바로 중국 다롄 스더.
한 때 일본 J리그가 한국 선수들이 많이 진출했던 리그였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많지만). 생각나는 것만 정리해보면 세레소 오사카에만 황선홍, 홍명보, 유상철이 뛰었었고, 교토퍼플상가에는 박지성, 고종수가 뛰었고, 시미즈 S펄스에 안느가 있었고 등등등. 그러다 J리그 경쟁력이 K리그보다 못하다는 인식이 생기자 K리그에서 성장하고 유럽으로 직행하는 케이스가 많아졌습니다. 박주영, 기성용, 이청용, 구자철, 류승우 등이 그 케이스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눈치채셨겠지만 우리나라 S급 선수들이 중국 리그로 진출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센터백. 김영권 선수. 전 감독이던 이탈리아 출신 리피의 아들이라고 까지 불린 수비수입니다. 원래 J리그에 있다가 유럽 진출을 노리는 듯 하더니 중국으로 갔죠. 지금은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핵심 선수로 아마 팀에서 보낼리가 없는 선수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 이미 많은 선수들이 중국에서 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나갔던 유명 선수들도 많구요.
그런데 말입니다. 중국 경제의 양적, 질적 성장이 가속화 되면서 가용 현금이 많아짐에 따라 스포테인먼트 역시 큰 시장이 되었습니다. 중국 축구리그는 이제 세계 정상급 축구 선수들을 영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꿈도 꾸지 못할 그런 레벨 말이죠.
김영권의 소속팀인 광저우 헝다를 비롯한 몇몇 빅 클럽은 이제 유럽 3대리그의 주전급을 영입하고 있습니다. 첼시 출신의 미드필더 하미레스가 저장에, 브라질 국가대표 공격수 파비아누가 2부리그인 톈진에, 그 유명한 다리오 콘가도 중국에.. 지금은 첼시의 존 테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웨인 루니 등등을 중국에서 영입한다는 소리도 있구요.
월드클래스 지도자들도 중국행 러시입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을 일궈냈는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이 김영권의 소속팀 광저우의 현 감독입니다. 잉글랜드 최초의 외국인 축구 감독이었던 에릭손 감독도 중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논란이 많겠지만) 아시아팀으로는 올림픽 최고 성적을 거뒀던 홍명보도 현재 중국에서 감독 생활을 하고 있기도 하죠.
처음에 중국 프로 리그가 발아 시기일 때. 한국과의 커넥션이 많았습니다. 90년대 초중반, 수교가 막 되었을 때에는 중소기업들의 중국 진출 러시가 이뤄지던 시점입니다. 한국 역시 유명한 선수들은 중국 리그를 고려하지 않았을 시기였습니다. 점점 중국 리그가 커지자 안정환 급의 큰 선수들이 진출하기 시작하더니.
(안정환의 첫 소속팀은 부산 '대우' 로얄스로, 사실 (주)대우는 90년대에 중국에서 고속버스 사업, 시멘트 공장 사업, 본업인 종합상사 사업, 백색가전 사업 등 엄청난 사업 영역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 약간 상통합니다.) 이제는 삼성 갤럭시의 최대 시장이 되었고, 어떤 대기업도 왠만하면 다들 중국 시장에 사업체를 영위하고 있죠.
우리가 메인 스트림이 될 줄 알았으나, 이내 시장에는 세계 Top 브랜드들이 들어와서 깽판을 칩니다. 삼성은 2014년 기준으로 애플에 밀리고, 대우는 종합 상사 조직만 이제 겨우겨우 살아있고, CJ는 비료를 잘 팝니다! LG는 디스플레이만 강세고. 하지만 이미 세계의 모든 브랜드들이 중국 시장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장수 감독은 어찌보면 브랜드 파워에서 리피감독에게 밀렸던거죠. 한국인은, 한국제품은 이제 매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 중국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큰 불은 항상 작은 불씨에서 시작되죠. 작년에 중국 2부리그 갑급리그 <연변>팀의 감독은 한국인 박태하였습니다. 박태하 감독은 적은 지원속에서 뛰어난 리더십으로 연변을 1부리그로 올려놓고 그 지역의 최고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축구의 한류는 이제 새롭게 연변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변은 조선족 자치구이고 우리나라 말이 통하고, 길게 보면 우리와 민족적 뿌리도 같은 곳인데, 거기서 한국 감독이, 한국적 정서로, 한국적 전술로, 거기에 용병도 한국인을 써가며 자본 덩어리인 다른 팀들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윤빛가람, 김승대 등 용병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도 말투는 조금 다르지만 말이 통하는 이 곳이 적응하기 더 좋았을 꺼구요. 문화적 융합이 쉬웠을 껍니다. 음식도 입에 맞았을 거고.
이제 중국 축구판은 재편되었습니다. 국내에 엄청난 경쟁을 외국의 경쟁력있는 용병과 감독의 영입으로 불붙여 놓았습니다(진짜 전성기에도 받지 못하는 연봉을 줘버리니..). 아직 중국 국가대표의 퍼포먼스는 생각만큼 올라오지 않고 있으나, 치열한 국내 시장의 경쟁은 국제 경쟁력 역시 올려 놓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 내수 시장은 전쟁터입니다. 세계의 모든 브랜드들과 중국 브랜드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습니다. 초반에는 우리가 잘 하는 줄 알았던 한국 브랜드들은 몇몇 브랜드들을 제외하고는 여기서 터지고 저기서 터지는 중이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중국 로컬 브랜드들이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가지고 무지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 연변을 볼 필요가 있다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곳이 있구나, 거기를 겁나 파면 되는구나 하는 곳이 축구에서는 연변이었다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 화장품과 콘텐츠는 여기서 미.친.듯.한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포화될 이 시장, 중국을 진출하려 한다면 우리가(국가 단위가 아닌 사업 단위로) 정말 잘 할 수 있는 틈새가 어디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
이미 중국 경제는 중국 축구와 같이 국제적 규모의 시장이 되어버렸고. 단순히 한국산이 아닌 한국산이면서 최소한 아시아 Top급의 경쟁력은 가져야 살아남는 시장이 되어버렸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