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유노지성팍, 두유노유나킴, 드유노킴치, 두유노서울?
* 2013년 8월의 이야기입니다.
한국 사람이 음주가무에 능하다는 것은 이제 여기서 놀랍지 않은 이야기. 학부생 꼬맹이들도 엑소의 그 누구같이 옷을 잘 입고 다니기 때문에 한국인으로서 아티스틱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중국인들은 일단 당황할 것 같았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대학원 동기들과의 입학 및 개강파티 시점이 다가왔고, 왠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러야 할 것 같아, 2013년 당시 유행하는 중국노래 두 곡을 외우고 연습해갔다. 우리나라보다 감동 코드가 훨씬 더 통하는 중국이기에, 그 당시 유행하던 서정적인 가사를 달달 외우며. 왠지 모를 8,90년대 감성에 젖기도했다.
날이 밝고 그 날이 왔다. 파티 장소 앞 커피숍에 두 시간 일찍 도착해서 연습했던 자기 소개와 외운 노래, 어제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서 유행했던 웃기는 이야기를 하나 둘 중국어로 곱씹었다. 이게 뭐라고 꽤나 긴장되었다. 삼십 분 전에 파티 장소에 도착해서 준비팀을 도와주고 본 회의가 시작되었다.
2013년, 중국인 사이의 대규모 모임, 나에겐 1999년 중국을 떠나고 나서의 첫 경험이었다. 여러 가지 문화컬쳐를 당했던 그 날인데, 여자 아이들이 그렇게 파티 드레스를 차려입고 왔다는 사실. 나에겐 큰 부담이었으나 이미 몇 달 전부터 같은 시험을 치고 엠티까지 다녀왔던 그들에겐 매우 캐주얼한 모임임에도 불구하고 빨주노초파남보(진짜 이 색들이 다 있었다) 단색의 나시 원피스 드레스에 신부 화장을 방불케 하는 그녀들의 맵시에 일차 컬처 쇼크가 왔다.(그걸 보고 아, 한국 화장품이 뜨는 이유가 있다 싶었다.)
남자들의 옷은 천차 만별이었다. 깔끔한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오 있었고, 반팔 반바지도 있었고, 정장 차임도 있었고, 헬스클럽 복장을 연상시키는 반팔에 나시도 있었다...... 그게 힙합 하는 친구들이 입는 그런 나시가 아니라 진짜 몸에 타이트하게 붙어서 윗눈, 아랫눈 다 인식되는 그런 민소매 티... 뭐 이렇게 말하는 나도 수염 기르고 넥타이 매고 모자 쓰고 갔으니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예상대로 난 관심의 중심이었다. 1997년, 처음 중국으로 전학 갔던 중2 때가 생각났다. 교실에 던져진 후 약 오십 명의 아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질문하고 만져보고 관찰하는 느낌을 이미 느꼈던 터라 별 이질감은 없었다. 다만 나와 체형이 닮은 박재상 씨의 이름이 어디에선가 들려왔을 때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공식적인 첫 행사였으므로 각각 삼십 초 스피치 시간을 갖고 본격적으로 술잔이 돌기 시작했다. 전 편에서 언급하였듯이 중국인들은 술을 그닥 즐기지는 않는다. 다만, 손님 접대는 확실하게 한다. 그리고 손님 접대는 1:1로 하는 것이 예의라 생각한다. 돌려 말하면 이미 친해진 중국 친구들 사이에 개강 직전 한 외국인 유학생이 들어왔고, 그 유학생은 술잔으로 1:1을 50번 넘게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소리다. 게다가 처음 만난 토쟁이를 술로 인사불성 하게 만들었다는 소문은 이미 겉잡을 수 없이 커져있었다. 한국에서 온 (싸이를 연상시키는) 술 (엄청) 잘 마시는 아이. 그들의 기대를 져버릴 수 없었다. 첫인상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고 했던가.
노력이 시작되었다. 비즈니스 매너의 시작은 아이 컨택이라 해서 최대한 그들 미간을 주시하며 술을 마시며 이름을 외웠다. 핸드폰 녹음 기능도 켜 놨다. 한 이십 명 정도 인사를 하니 왠지 먹은 안주가 뭐였는지 궁금해져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열댓 명 더 인사를 하니 안주를 먹지는 않았지만 내가 마신 게 술이 맞는지 확인하러 화장실을 또 다녀왔다. 헬스클럽에서 점점 인터벌을 줄이는 것이 운동의 묘라 했는데, 나의 내장 성찰 시간의 인터벌도 점점 짧아져만 갔다.
오래간만에 만인의 관심을 받는 입장이 되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시간이 흐르고 분위기가 점점 익어가니 장내는 노래방으로 변했다. 기분은 좋았으나 건배를 거의 오십 번 넘게 한터라 몸과 마음 모두 만취 상태였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가리키며 짱난스타이~ 짱난스타이~를 외치시 시작했다.
江南style. 유튜브 역대 최고 조회수를 기록했던 본명 박재상 씨의 출세작. 난 중국 노래를 준비했는데 어느 순간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를 한국어로 부르고 있었다. 토쟁이의 복수였을까. MR을 토쟁이가 준비했었다. 난 그 이후로 동기들 모임에서 강남스타일을 열 번 정도 더 부르고 나서야 다른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아직도 베이징의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클럽에 가면 오빤 강남스타일이 그렇게 나온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에게 두유노싸이를 묻는 것이 거의 터부시 되어가는 시점에서 중국인에게 싸이로 역습을 당했다. 2012년, 2013년의 중국, 노래방에서 친구들에게 강남스타일을 부르지 않은 한국인은 있어도, 한 번만 부른 한국인은 없던 바로 그 시점. 난 왠지 모르게 싸이가 싫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