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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비관우자앙비 Aug 29. 2018

욕망의 거리

새 사무실로 이전하고 약 3개월간 면밀히 살펴본 결과, 우리 사무실 반경 100미터에는 총 4곳의 아이돌 연습생 숙소가 있다. 남돌 2팀, 여돌 2팀. (편의상 남A팀, 여A팀 등으로 칭한다)


사무실 테라스가 도로로 향해 있기 때문에 커피 마시며 밖을 볼 때에 이 친구들이 오버로드 마냥 왔다갔다 하는 것을 자주 캐치한다. 편의점에서 물건 살 때에도 가끔 만나는 경우가 있다.


오늘은 편의점에서 남돌 B팀의 비주얼 담당과 왠지 보컬 담당일 것 같은 친구들 뒤에서 계산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닭가슴살과 요즘 이병헌이 광고하는 양 많은 아메리카노와 담배를 샀다. 한 명은 멘솔을 피더라. 그 아이가 내가 추정하는 보컬이다.  


남돌 A팀의 경우에는 벌써 팬덤이 있다. 가끔 선물들고 서성거리는 아이들이 있다. 역시 아이돌은 데뷔 전부터 팬덤 마케팅을 해야 그나마 빛을 발할 수 있는 것 같다. 아마 이 친구는 팬마가 되겠지. 카스트 제도마냥 성골/진골을 나누는 팬클럽 사이에서, 이 친구는 아이돌이 이름을 아는 몇 안되는 로열 팬이 될 것이다.


여돌의 경우에는 나이가 다들 어려보인다. 여B팀은 강력한 포스를 풍긴다. 힙합의 느낌이다. 여A팀은 하늘하늘한 걸그룹으로 나올 것 같다. 여B팀은 주로 블랙 계열의 옷을 입고 다니고, 여A팀은 핑크나 화이트 계열의 옷을 입고 다니는데, 그냥 취향 차이인 것 같다. 회사에서 벌써부터 평상복까지 관여할 리는 없으니. 남돌들 컨셉은 잘 모르겠다. 뭐 누구는 랩하고 누구는 춤추고 누구는 노래하고 누구는 개그 담당이겠지ㅋ


아마 이들의 일상은 아침에 일어나서 연습을 가서 점심먹고 또 연습하다가 숙소로 돌아와 쉬는 것이 다일꺼다. 특히 남A팀은 데뷔가 임박한 것 같은 느낌이다. 다들 머리색이 바뀌었다. 아마 프로필이라도 촬영했나 보다. 요새 카니발이 골목에 부쩍 많이 다니더라니.


이 4팀 중 과연 누가 데뷔하게 될 지는 모르겠다. 여러 중소 규모 회사가 모여있는 이 골목에,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다. 내가 욕망의 거리라 부르는 우리 회사 골목. 가정집만 있는 것 같은데 점심 시간만 되면 미친 듯이 몰려나오는 직장인들이 있는 선정릉 골목.


두 블록 위에 디스패치라는 매체가 있는 동네에 아이돌 지망생들이 이렇게 우글거리는 것은 믹스매치다. 사실 각기 다른 꿈을 꾸는 회사들이 몰려있는 이 골목의 존재 자체가 믹스매치이기도 하다. 누가 과연 자기 꿈을 이뤄나갈 수 있는 프론티어가 될 지는 모르겠다. 비가 잠깐 갠 후, 땀이 살짝날 것 같은 선정릉 뒷골목의 아침은 오늘도 어제와 다를바 없이 시작되었다.


연습생들 화이팅, 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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