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비관우자앙비 Jan 11. 2021

그 나이가 되면 비로소 보이는

나이를 들어간다는 것

아직은 신년이고 아직 나이 먹은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은 이 시점의 주말에, 내 인생의 연장자들이 생각의 범주에 들어왔다.


처음 대학을 입학했을 때 하늘 같은 선배의 나이는 이미 지난지 오래고,

처음 입사했을 때 사수, 아니 팀장의 나이를 이미 넘어선 지금,

산같이 든든했던 형님들을 처음만났을 때 그들의 나이가 지금의 나보다 어리고,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이미지를 만들고 있어야 하는지 고민을 하다 문득,


내 부모님의 나이의 단계에 진입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마음이 답답해지며, 무언가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내 어머니, 아버지의 나이 겨우 20대 중후반.

내가 사춘기로 그들을 힘들게 했을 때의 부모의 나이가 이제 나와 비슷하고.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에 맞벌이를 하며 집안을 책임지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가의 주름과, 머리의 흰머리, 그리고 아프다 이야기도 제대로 하시지 않는 입가의 주름.


이제 그 흰머리가 나에게 생기고. 내 눈가에도 주름이 자글하며,

가장이던 아버지보다 돈을 더 벌지만, 여전히 철들지 않은 내 모습을 보며,

당시 그들의 책임이, 그리고 그들역시 어렸던 상황에서 그 상황을 맞이했다는 것에.

부모란 큰 벽을 세상의 안전장치로만 알던,

나의 대책없는 철부지 시절이

부끄러워졌다.


같은 세상에서 나보다 더 큰 책임을 갖고 

인생을 살아왔고, 그 모든 것을 나에게 주었던,

그 부모의 나이에 살다보니,

시간이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효도해야겠다는 어린 시절의 치기어린 다짐은 어느새 삶의 관성과 무게로 온데간데 없고,

알아서 잘 사시겠지라는 무책임한 긍정으로 오늘도 하루를 마감하고 나면,

어느새 함께 할 수 있는 나날이 하루 더 줄어 있음을,

이 나이가 된 어느 날 알게되었다는 것이,

슬프고, 안타깝다.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은 어려운 개념이 아닌데 말이다.


코로나라 얼굴 뵈러 가지 못하지만,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사업은 이미 내 주위에 있을꺼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