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를 통해 철학하는 중국디자이너
한쟈잉은 1961년 텐진에서 태어났다. 그는 5살때 부모님을 따라 텐진에서 산시성으로 이주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하여 산시성내에 있는 시안의 미술대학 공예학부에 입학하였지만 전통적인 방직기술만 훈련하는 기존의 도제식 교육에 염증을 느꼈다. 그러다 잠시 시안미술대학으로 강의하러 온 일본인 교수에 의해 현대 광고디자인에 대해 배우게 되며 새로운 세상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그는 시안미술대학을 졸업후 잠시 서북의 대학교에서 의복제작을 가르치지만 4년뒤 고리타분한 시안을 박차고 심천으로 떠나게 된다.
한편 사람들은 그를 상업과 예술을 절묘하게 섞은 디자이너라고 부른다. 중국 판매량 1위 맥주인 <쉐화> 역시 그가 디자인한 상품이다. <쉐화>의 로고를 살펴보면 쉐화(雪花)라는 네이밍답게 눈꽃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을 알 수 있다. 또 맥주라는 특성을 살려 발랄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이 나게 디자인한 것이 인상적이다. 현재 홍대 동교동 방면에 있는 산동성 관광홍보센터에서 볼 수 있는 프렌들리 산동 로고 역시 한자잉 회사의 작품이다. 산동성의 다채로운 매력을 손글씨로 표현한 이 로고는 여행의 즐겁고 경쾌한 매력을 아이덴티티로 표현하였다. 이처럼 한쟈잉은 상업적인 브랜드 작업에 있어서도 훌륭한 성취를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개인적 작업을 통한 예술적 면모 역시 드러낸다. 특히 순수문학 잡지 《天涯》는 상업지였음에도 불구하고 표지에 예술적 아트워크를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그의 20년 디자인 인생중 절반을 함께한 이 잡지는 그의 디자인 인생에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그는 10여년동안 《天涯》의 표지디자인을 하며 수많은 디자인실험을 거듭하였다. 그는 초반에는 한자를 모티브한 디자인 작업을 펼쳐나갔다. 한자의 글씨를 그림과 합성한 그의 작업은 상형문자인 한자의 특성을 한껏 살린 작업이었다. 이후 그의 작업은 점점 한지,먹,대나무 등 문인을 상징하는 디자인으로 점점 선회했다. 특유의 동양성을 강조한 작업으로 한쟈잉은 이 표지를 테마로 프랑스에서 개인전을 열며 예술적 성취를 이루게 된다.
현재 그는 중국내에서 '그래픽디자인의 시인'으로 불리운다. 2011년 서울 국제타이포그라피 잔치에 출품한 작품이 대표적이다. 언뜻 보기에는 무질서한 점들이 수없이 찍혀진 낙서같다. 한자잉은 포스터의 기본적인 디자인 요소인 '점선면'을 이용하여 한자 서체의 미학을 실험했다. 그는 동아시아의 유교,불교,도교 3대 경전을 필사하며 한자를 점선면으로 극도로 추상화 시켰다. 하얀 여백을 배경으로 무질서하게 뒤섞인 한자는 문자자체만으로도 얼마든지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을 증명했다. 이후 이 작품은 GDC실험분야에서 수상하며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묘법자연(妙法自然)포스터 역시 눈여겨볼만하다. 본래 묘법(妙法)이란 불교에서 오묘하고 신기한 법문을 이르는 것이고 묘법자연은 평소 생각지 못한 기묘한 아이디어를 자연에서 얻었을 때 이르는 말이다. 동양미학의 요체와 같은 이 문구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깨달음을 얻는 의미로 불교의 선(禪)과 같은 의미로 쓰일 수 있다. 동양의 전통예술, 서예에서도 의식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선의 미학이 강조된다. 그리고 한자잉은 이 신묘한 동양의 미학의 경지를 현대 그래픽디자인으로 표현해냈다. 그는 포스터에서 일렁이는 수많은 문자들이 움직이며 생명력있는 형상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묘사했다. 그 모습은 마치 바람 부는 모래언덕같고 수면에서 잔잔히 파도치는 형상같이 인위적이지않고 물에 흐르듯 자연스럽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미학을 보여주는 이 포스터는 한자잉을 '그래픽디자인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해당 포스트는 저서 <중국디자인이 온다>에서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