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지의 구조를, 한국 투자자의 언어로
나는 오랫동안 중국 경제를 '읽는' 일보다, 그것을 '번역하는' 일을 해왔다.
여기서 말하는 번역은 단순히 중국어 문장을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이 아니다. 숫자를 문장으로 바꾸고, 정책을 의도로 바꾸고, 뉴스의 표면을 구조로 바꾸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한국 투자자의 판단 언어로 다시 정리하는 일이다.
나는 한국계 중국인으로 중국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중·고와 대학을 마쳤다. 중국어로 사고하고, 중국인의 방식으로 세상을 배웠다. 그러면서도 어릴때부터 한국어를 쓰고, 한국 방송과 뉴스를 보며, 한국인의 정서를 잃지 않았다. 두 나라의 언어와 사고방식이 내 안에서 늘 교차했다. 그것은 어릴 때는 불편함이었지만, 나중에는 내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이 되었다.
한국에서 재무금융 석사를 마친 후 자산운용사에 입사하여 3년 동안 차이나 펀드를 운용하며 중국 경제와 중국 주식을 연구해왔다. 상해 소재 중국 대형 자산운용사와 협업하는 구조라, 중국 현지 운용자 시각과 한국 투자자 시각을 동시에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교과서에서 배운 것들이 하나하나 다르게 작동하는 것을 보면서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금리를 내렸는데 경기가 살아나지 않았다. 부채가 GDP의 절반을 넘었는데 금융 시스템은 무너지지 않았다. 법치가 불완전한데 기업들은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교과서가 틀린 건 아니었다. 다만 그 교과서가 만들어진 곳의 전제 조건이, 중국에서는 성립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후 중국계 증권사의 한국지사에서 수석연구원으로 5년을 일했다. 주로 기관 투자가 대상으로 중국 경제와 주식시장을 설명하고 세미나를 진행하는 것이 업무였다. 어느 날은 위안화 환율의 방향을, 어느 날은 지방정부 부채의 구조를, 또 어느 날은 태양광과 전기차 밸류체인을, 그리고 어느 날은 부동산 침체가 소비 심리에 미치는 파급을 설명했다.
매년 수차례 중국 현장에 가서 현지 투자 포럼과 기업탐방을 하면서 중국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자주 겪었던 일이 있다. 같은 데이터와 이슈를 놓고도, 서울의 투자자와 상하이 투자자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었다.
서울에서는 에버그란데 사태가 '중국판 리먼'이었다. 상하이에서는 '정부가 설계한 조정'이었다. 서울에서는 알리바바 규제가 '공산당의 횡포'였다. 베이징에서는 '플랫폼 독점에 대한 질서 회복'이었다. 같은 사건, 같은 숫자, 완전히 다른 해석. 나는 오랜 기간 동안 그 사이에 서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정보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꿰는 구조가 문제라는 것을.
2021년 9월, 에버그란데 위기가 전 세계를 흔들었을 때의 일이 아직도 선명하다. 한국의 기관 투자자의 전화 문의가 빗발쳤다. '중국 경제 이제 끝나는 거 아니냐', '제2의 리먼이다', '당장 매도해야 하는거 아니냐' 그 와중에 나는 중국 현지의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았다. 중국의 은행 시스템은 멀쩡했고, 중앙정부는 이미 1년 전에 '세 개의 레드라인'이라는 규제를 도입해 이 조정을 사실상 설계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 주에 A주는 오히려 반등했다. 문제는 서울과 상하이 사이에 놓인 정보의 간극이 아니었다. 구조를 읽는 렌즈의 간극이었다.
그 경험이 결정적이었다. 나는 한국 투자자들에게 중국을 바라보는 올바른 렌즈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한지를 매일매일 현장에서 느꼈다. 내가 매일 상대하는 기관투자자마저 중국 투자를 바라보는 렌즈가 왜곡되어있다면 일반 투자자들은 더욱더 중국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3년 전 갑작스러운 남편의 주재원 파견 때문에 증권사를 그만두고 중국 난징으로 오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차이코노미 중국주식'이라는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채널을 통해, 매일 중국 시장의 흐름을 한국 투자자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현장에 와 있으니, 현지의 분위기와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중국의 산업 현장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더욱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시장을 정리하고, 정부 발표를 해독하고, 산업별 이슈를 구조화해서 투자 인사이트를 전달하는 일을 지금도 매일 반복하고 있다. 단편적인 이슈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슈가 놓인 구조를 번역하는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이 일의 씨앗은 생각보다 오래 전에 심어져 있었다. 2013년,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20대의 나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학원을 마치고 한국 금융권에서 연구직으로 일하고 싶다. 중국인으로서 중국과 한국 금융 시장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한다면 한·중 교류에도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때는 막연한 포부였다. 구체적인 경로가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산운용사에서 차이나 펀드를 운용하고, 증권사에서 기관투자가에게 중국 시장을 설명하고, 지금은 매일 채널 구독자에게 중국 경제를 번역해 전달하는 이 모든 과정이, 결국 그날의 한 문장으로 되돌아간다. 12년이 지났다. 그 꿈은 한 번도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앞으로도 나는 한국과 중국의 중간 지점에 서서, 양쪽의 언어를 동시에 이해하는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렌즈를 계속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동안 한국투자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수없이 많이 받았다.
"중국은 지금 정말 위험한가요?" "중국 부동산은 결국 무너지는 건가요?" "중국 정부는 왜 이렇게 자주 시장에 개입하나요?" "지금 중국을 봐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중국 주식 정말 투자해도 되나요?"
이 질문들은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질문들 뒤에는 하나의 더 큰 질문이 숨어 있다.
중국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 경제인가?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나는 이 책에서 중국을 낙관하거나 비관하려 하지 않는다. 중국을 옹호하려는 것도 아니고, 공포를 부추기려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하려는 일은 더 단순하다. 중국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읽는 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정책을 볼 때 무엇을 함께 봐야 하는지, 산업을 볼 때 어떤 축으로 분해해야 하는지, 금융시장을 볼 때 왜 단순한 금리 공식이 통하지 않는지, 그리고 한국 투자자가 중국 관련 자산을 볼 때 어떤 오해를 가장 먼저 버려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풀어보려 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독자는 중국의 모든 종목을 알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내일 오를 주식 하나를 정확히 찍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변화는 생길 것이다. 중국의 정책 뉴스가 나왔을 때 그 문장이 왜 중요한지 읽히고, 부동산이나 지방정부 부채 이슈가 터졌을 때 그것이 어떤 경로로 시장에 번지는지 보이며, 기술 패권 경쟁과 소비 변화, 인구 구조 전환이 어떤 산업에 기회와 리스크를 동시에 만드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단편적인 정보가 아니라, 연결된 구조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나는 믿는다.
시장은 늘 변한다. 정책도 바뀌고, 산업의 주도권도 바뀌며,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변하는 것들 위에서도 오래 남는 것이 있다. 바로 읽는 법이다. 어떤 나라를, 어떤 시장을, 어떤 구조 위에서 읽는가에 따라, 같은 뉴스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책은 중국 경제의 모든 답을 담은 책이 아니다. 대신 중국 경제를 해석하는 하나의 렌즈를 담은 책이다. 나는 독자가 이 책을 통해 중국을 더 좋아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더 정확하게 보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정확함이 결국 더 나은 질문, 더 나은 판단, 더 나은 투자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중국 경제를 읽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제대로 읽기 시작하면, 그 복잡함은 더 이상 장벽이 아니라 기회가 된다.
이제, 중국 경제를 번역해 보자.
장영애 차이코노미 대표
2026년, 난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