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의 신뢰, 30%의 저축, 28만 원의 술 한 병
지난 편에서 중국 경제를 보는 두 가지 틀린 렌즈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올바른 렌즈로 '하이브리드'를 제안했죠.
오늘은 그 하이브리드가 왜 가능한지, 좀 더 깊은 데로 들어갑니다. 경제학이 '어떻게'를 설명한다면, 오늘 이야기할 것은 '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중국 경제의 많은 부분은 경제학만으로 설명이 안 됩니다. 문화를 모르면 안 됩니다.
숫자 세 개로 시작하겠습니다. 91%, 30%, 28만 원. 이 세 숫자가 오늘 이야기의 뼈대입니다.
에델만 트러스트 바로미터라는 조사가 있습니다. 매년 전 세계 국가별로 정부 신뢰도를 조사하는 건데요.
2022년 결과, 중국 91%. 미국 39%. 한국 45%.
이 숫자를 처음 보시면 대부분 이렇게 반응하십니다. '세뇌 아닌가요?'
저도 이 질문을 수없이 받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중국의 언론 환경이 자유롭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정보 통제가 있고, 비판적 목소리가 억제되는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숫자를 그냥 '세뇌'로 치부해버리면,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아집니다.
왜 중국 정부가 경기부양을 발표하면 시장이 즉각 반응할까요? 왜 봉쇄 정책을 3년이나 했는데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왜 사교육 규제를 하루아침에 발표했는데 사회가 무너지지 않았을까요?
이것은 선전의 힘만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더 깊은 뿌리가 있습니다.
커위진 교수의 설명을 다시 빌려오겠습니다.
중국에서 국가의 개입은 유교적 가부장주의의 연장이다. 국가는 가족의 연장선이고, 지도자는 좋은 부모여야 한다는 관념이 2,500년간 이어져 왔다. 이것이 중국인들로 하여금 국가 개입을 '억압'이 아니라 '보호'로 받아들이게 한다.
— Keyu Jin, The New China Playbook, 2023
비유를 하나 들어볼게요.
한국에서 부모님이 '그 사람이랑 결혼하지 마라'고 하면 어떻게 느끼세요? 간섭이라고 느끼시죠. 화가 나실 수도 있고요. 그런데 동시에, 부모님이 나를 걱정해서 그런다는 것도 아시잖아요. 억압과 보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감정이에요.
중국에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때, 많은 중국인이 느끼는 감정이 이것과 비슷합니다. '간섭'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상당수는 '정부가 질서를 잡아주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서구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최상위 가치입니다. 국가의 개입은 자유에 대한 침해죠. '작은 정부'가 이상이에요. 중국에서는 질서와 안정이 최상위 가치입니다. '좋은 정부'가 이상이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중국 정부가 테크 기업을 규제할 때 '독재 정권의 횡포'로만 읽게 됩니다. 하지만 2021년 알리바바 규제 이후 중국 소비자 상당수는 오히려 정부를 지지했어요. '독점 기업이 소비자를 착취하는 걸 정부가 막아줬다'는 인식이었습니다.
중국의 가계 저축률은 약 30%입니다. 미국이 7%, 한국이 35% 정도 되는데, 중국의 30%가 특별한 이유는 그 뿌리가 세 개이기 때문입니다.
'절약은 미덕, 낭비는 부끄러움.' 이것은 공자 이래 2,500년간 지속된 가치관입니다.
중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체감되는 장면들이 있어요. 식당에서 밥을 다 먹고 나서 남은 음식을 포장해가는 게 당연합니다. 한국에서도 하지만, 중국에서는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자연스러워요. '打包(다바오)'라고 해서 포장해달라는 말을 안 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봅니다.
설 명절에 세뱃돈(훙바오, 红包)을 주고받는 문화, 결혼할 때 반드시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관념, 자녀 교육에 전 재산을 투자하는 행동 — 이 모두가 '가족 중심 자산 관리'의 표현입니다. 개인의 소비보다 가족의 자산 축적이 우선인 거죠.
이건 문화보다 더 현실적인 이유입니다.
2000년대 초까지 연금·의료보험 시스템이 극히 취약했어요. 도시 직장인은 기본 사회보험이 있었지만, 농촌 주민과 비정규직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지금도 농촌 연금 월 급여가 평균 200위안, 한화 약 3만 5천 원 수준이에요.
한국으로 치면, 국민연금이 월 3만 5천 원인 거예요. 이걸로 어떻게 노후를 보내겠습니까. 스스로 준비하는 수밖에 없죠. 그래서 저축합니다. 안 해서가 아니라 안 하면 안 되니까.
1자녀 정책이 중국의 소비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꿨다. 한 명의 자녀에게 양가 조부모(4명)와 부모(2명), 총 6명의 자원이 집중되지만, 동시에 그 한 명이 6명의 노후를 책임져야 한다.
— Keyu Jin, 2023
이것을 '6개 포켓 현상'이라고 합니다. 조부모 4명 + 부모 2명 = 6개의 지갑이 한 아이에게 집중되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 교육에는 과잉 투자를 합니다. 사교육비가 가계 소득의 15~20%에 달하는 이유죠.
그런데 동시에, 그 한 명의 자녀가 나중에 6명의 노후를 책임져야 해요. 부모와 조부모가 이걸 알기 때문에,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저축합니다.
결과적으로, 과잉 투자(자녀 교육)와 과잉 저축(노후 대비)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이 구조가 중국 소비를 억누르는 핵심 원인 중 하나입니다.
지난 편에서 '법치가 약한데 어떻게 성장했느냐'는 질문을 다뤘습니다. 오늘은 그 답의 한 축을 이야기합니다. 관시(关系)예요.
관시를 '연줄'이나 '뇌물'로 번역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틀린 건 아니지만, 절반만 맞는 번역이에요. 관시는 반복적 거래를 통해 형성되는 신뢰 네트워크이고, 계약 불이행의 비용을 법이 아니라 사회적 평판으로 대체하는 비공식 제도입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해볼게요. 한국에서 동네 단골 가게가 있다고 해봅시다. 매일 가는 식당이에요. 어느 날 지갑을 안 가져왔어요. 그럼 사장님이 뭐라고 하시죠? '다음에 주세요.' 법적 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매일 와서 밥을 먹는 관계가 쌓여 있으니까 신뢰가 작동하는 거잖아요.
중국에서 관시가 하는 역할이 이것의 확대판입니다. 비즈니스 거래에서 법원에 가서 계약을 집행하기보다, 관계망 안에서 평판으로 계약을 보증하는 거예요. '이 사람 믿을 수 있다'는 평판이 곧 자산입니다.
물론 이 시스템에는 단점이 있습니다. 관시가 없는 외부인에게는 진입 장벽이 되고, 부패의 토양이 되기도 합니다. 앞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에서 실패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관시 네트워크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었죠.
흥미로운 건, 관시가 디지털 시대에 진화했다는 겁니다.
2003년 마윈이 타오바오를 출시할 때 가장 큰 문제가 뭐였을까요? '모르는 사람끼리 어떻게 거래하느냐'였습니다. 중국인들은 아는 사람끼리 거래하는 데 익숙하지, 모르는 사람한테 돈을 먼저 보내는 건 상상할 수 없었거든요.
해법이 즈푸바오(支付宝, Alipay)였습니다. 에스크로 서비스예요. 구매자가 돈을 넣으면 즈푸바오가 보관하고, 물건 받은 걸 확인하면 판매자에게 넘겨줍니다. 법원 대신 플랫폼이 거래를 보증하는 구조죠.
이건 관시의 디지털 진화입니다. 신뢰의 보증인이 '아는 사람'에서 '플랫폼'으로 바뀐 거예요. 중국 핀테크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공식 제도의 부재'가 있었습니다.
마오타이(茅台) 비천(飞天) 500ml. 소매가 약 1,499위안, 한화 28만 원. 원가는 수십 위안에 불과합니다. 이 엄청난 프리미엄의 대부분은 뭘까요?
면자(面子, 체면) 가치입니다.
중국에서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에 마오타이를 내놓는 것은 '당신과의 관계를 이만큼 중시합니다'라는 신호예요. 28만 원짜리 술을 테이블에 올려놓는 순간, 상대방에게 존중을 표현하는 겁니다. 비싸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거죠.
한국에도 비슷한 문화가 있죠. 중요한 자리에 양주 한 병 들고 가는 거. 그런데 중국에서는 이게 훨씬 체계적이고, 가격 프리미엄이 훨씬 큽니다. 이 문화적 코드를 이해하지 못하면 마오타이라는 기업의 가격결정력을 설명할 수 없어요. 매출총이익률이 91%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주류 기업 중 하나예요. 이 수익성의 원천은 기술이 아니라 문화입니다.
투자자 관점에서, 중국의 프리미엄 소비재를 분석할 때 '면자 프리미엄'이라는 변수를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마오타이뿐 아니라, 럭셔리 브랜드, 고급 자동차, 심지어 결혼식 비용까지 — 면자가 가격을 결정하는 시장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 — 높은 정부 신뢰, 근검절약, 관시, 면자 — 은 주로 기성세대의 문화입니다. 젊은 세대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시작됐어요.
가장 주목할 변화는 95후(95年后)와 00후(00年后) 세대입니다.
이 세대는 '국조(国潮)'라고 불리는 중국 국산 브랜드 트렌드의 주역이에요. 리닝(李宁)이 나이키를, 화웨이가 애플을 밀어내기 시작한 건 이 세대의 소비 패턴 변화와 직결됩니다.
왜 그럴까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중국 제품의 품질이 진짜로 좋아졌어요. 10년 전만 해도 '중국산 = 싸구려'였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둘째, 미중 갈등이 민족주의 소비를 부추기고 있어요. '내가 왜 미국 브랜드를 사야 하지?'라는 인식이 생긴 거죠. 셋째, 소셜미디어 마케팅에서 국산 브랜드가 글로벌 브랜드를 이기기 시작했습니다. 더우인(틱톡)과 라이브커머스 생태계에서 현지 브랜드의 적응력이 압도적이에요.
반대로, 면자 소비에 의존하는 전통적 프리미엄 브랜드는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에서 '이성적 소비(理性消费)'라는 키워드가 부상하고 있거든요. 비싸다고 좋은 게 아니라, 가성비가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거죠.
이것은 투자자에게 중요한 시그널입니다. 중국 소비 시장이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세대별로 완전히 다른 시장'으로 분화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오늘 이야기를 정리하겠습니다.
91%의 정부 신뢰. 이것은 세뇌가 아니라 2,500년의 유교적 국가관입니다. 이것을 알면, 정부 부양책이 왜 빠르게 실행되는지가 이해됩니다.
30%의 저축률. 이것은 문화 + 불완전한 사회안전망 + 1자녀 정책의 삼중 구조입니다. 이것을 알면, 저축률이 풀릴 때 소비 시장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28만 원의 마오타이. 이것은 면자 문화가 만든 프리미엄입니다. 이것을 알면, 중국 소비재의 가격결정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의 소비 패턴, 국조 트렌드, 이성적 소비의 부상. 이것을 알면, 앞으로 어떤 소비 섹터가 성장하고 어떤 섹터가 위험한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중국 경제를 읽을 때, 숫자만 보면 절반이에요. 숫자 뒤에 있는 문화를 읽어야 나머지 절반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