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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서산대사가 자기 영정에 쓴 시. 


八十年前渠是我(팔십년전거시아) 

八十年後我是渠(팔십년후아시거)

팔십 년 전에는 저것이 나이더니

  팔십 년 후에는 내가 저것이로구나. 




 나   

김광규


 살펴보면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
 나의 아들의 아버지고
 나의 형의 동생이고
 나의 동생의 형이고
 나의 아내의 남편이고
 나의 누이의 오빠고
 나의 아저씨의 조카고
 나의 조카의 아저씨고
 나의 선생의 제자고
 나의 제자의 선생이고
 나의 나라의 납세자고
 나의 마을의 예비군이고
 나의 친구의 친구고
 나의 적의 적이고
 나의 의사의 환자고
 나의 단골술집의 손님이고
 나의 개의 주인이고
 나의 집의 가장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들이고
 아버지고
 동생이고
 형이고
 남편이고
 오빠고
 조카고
 아저씨고
 제자고
 선생이고
 납세자고
 예비군이고
 친구고
 적이고
 환자고
 손님이고
 주인이고
 가장이지
 오직 하나뿐인
 나는 아니다

과연
 아무도 모르고 있는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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