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아이들과 함께 떠난 우당탕탕 빅아일랜드 가족 여행기
사람들은 ‘하와이’라고 하면 에메랄드빛 바다와 황금빛 석양을 떠올린다. 나 역시 그랬다. 인스타그램 속 하와이는 눈부셨고, 나는 그 풍경 속에서 즐거움에 허우적거릴 가족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미리 뿌듯해했다. 그 달콤한 환상을 가득 싣고 하와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하와이 땅을 밟는 순간, 운명의 장난은 시작되었다. 빅아일랜드행 주내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수하물을 찾았는데, 캐리어 사이로 정체 모를 콤콤한 냄새가 먼저 나를 마중 나왔다.
'뭐지? 김치인가? 설마 된장이 터졌나?'
공항 한복판에서 냄새 폭탄을 터뜨릴 용기가 없어 애써 외면했다. 숙소에 도착해 조심스레 열어본 캐리어 안에서 마주한 것은, 진득하고 구수한 고향의 정취가 농축된 액체. 바로 멸치액젓 통이었다.
비행기가 1만 미터 상공으로 떠오를 때, 나는 내 설렘만 부풀어 오르는 줄 알았다. 하지만 기압이 낮아질수록 가방 속 액젓 통도 함께 숨을 몰아쉬며 팽창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 '지구의 법칙'을 왜 간과했을까.
사실 이 참사는 출국 전 부엌에서 치렀던 나만의 '성스러운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고물가를 자랑하는 하와이, 게다가 예약 직후 미친 듯이 치솟는 환율까지. 베테랑 주부로서 이번 여행은 단순히 옷가지 몇 벌 챙기는 나들이가 아니었다. 조리가 가능한 콘도식 숙소를 예약했고, 식비를 아끼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블로그 후기를 샅샅이 뒤져 식재료를 챙겼다.
'가서 나물도 무치고, 현지 스테이크 고기로 미역국도 제대로 끓여줘야지.'
그 야심 찬 계획의 중심에 멸치액젓이 있었다. 나름의 보호막도 갖췄었다. 투명 랩으로 입구를 야무지게 감았고,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믿음으로 지퍼백 하나에 의지해 가방 깊숙이 밀어 넣었다.
하지만 랩 한 겹은 10시간의 비행과 기압 차를 견디기에 너무도 가냘픈 방패였다. 내가 쟁여 넣은 것은 식재료가 아니라, 상공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꼬릿한 시한폭탄'이었던 셈이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하와이의 짠내 나는 바다 향기보다, 멸치액젓의 농축된 향기를 먼저 선물 받았다.
평소 여행에서 소스까지 바리바리 챙기는 편은 아니었다. 챙겨봤자 동결 블록이나 즉석식품 정도에 그쳤다. 그런데 왜 이번엔 집에서 쓰던 액젓 통을 기어이 밀어 넣었을까. 수습을 마친 다음 날부터 우리 가족은 예고했던 대로 맛있는 미역국을 든든히 먹긴 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첫날부터 온 방에는 은은한 멸치 향이 감돌았고, 캐리어 속 옷가지들은 저마다 "안녕, 나 멸치액젓이야"라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콤콤함이 스며든 찝찝함, 그리고 첫날부터 하와이 욕조에서 그것들을 닦아내느라 쏟아부은 가족들의 노동력까지. '조금 더 저렴하고 익숙하게' 먹이겠다는 주부의 고집이 불러온 평화로운 휴양지의 참사였다.
이제야 깨닫는다. 여행지의 아침은 굳이 내가 싸 온 소스가 없어도 어떻게든 시작된다는 것을. 멸치액젓으로 맛을 낸 고향의 국물이 아니더라도, 가족들의 배는 현지의 낯선 빵이나 투박한 과일로도 충분히 즐겁게 채워질 수 있었다.
짐을 줄이는 것은 단순히 무게를 줄이는 일이 아니었다. 나의 과도한 수고로움을 덜어내고, 그 빈자리에 가족들과 눈을 맞추며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채우는 일이었다. 조금 부족한 식탁이면 어떠랴. 여행 시작부터 불필요한 노동에 시달리며 먹어야 했던 미역국보다, 영양은 좀 부족해도 여유롭게 나눠 먹는 시리얼 한 그릇이 가족들에겐 더 맛있는 하와이였을지도 모른다.
하와이 여행을 준비하며 혹시 지금 주방에 있는 식재료를 노려보며 넣을까 말까 하는 주부들이 있다면, 부디 그 손을 내려놓으시라. 여행 가방에 담아야 할 것은 식재료가 아니라 '비워낼 마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