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빅아일랜드 우당탕탕 여행 수난기 2편.
빅아일랜드 공항에 발을 내딛자마자 계획했던 첫 코스, 코스트코 쇼핑은 순조롭게 마쳤다.
빅아일랜드의 하늘은 붉은 일몰로 타오르고 있었다. 짧은 이동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 야속하게도 하와이의 밤은 서둘러 우리를 찾아왔다.
하와의 특유의 도로 위 '3초 정지' 규칙 앞에 베테랑 드라이버인 남편도 잔뜩 얼어붙었다. 어둠을 뚫고 내비게이션이 가리킨 곳엔 드디어 그리던 숙소의 이름이 적힌 건물이 보였다.
"이제 다 왔다!"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숙소 입구에 들어선 순간까지,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갈 때까지는 결코 방에 들어간 게 아니라는 사실을.
☝️미국의 운전매너: '3초의 마법' STOP 표지판
STOP 표지판을 만나면 반드시 완전히 멈춘 후 최소 3초 정도 주위를 살피고 출발하는 것이 정석이라고 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겨우 주차 자리를 찾았을 때 남편이 물었다. "체크인 정보 인쇄해 왔어?"
P특유의 여유로움으로, 아차 싶기는 했지만 큰 걱정은 안 했다. 여권도 있겠다, 체크인 정보도 다 있겠다, 호텔처럼 로비로 가서 직원에게 물어보면 그만 아닌가. 하지만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본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내 데스크’나 ‘로비’라고 부를 만한 곳이 없었다.
미로 같은 숙소 주변을 맴돌고 있을 때, 한 서양인 노부부가 말을 건네왔다.
"도움이 필요한가요?(Do you need help?)"
우리는 체크인 방법을 몰라 헤매고 있다고 털어놨고, 그들은 친절하게 숙소 측과 연락 가능한 번호를 찾아 알려주었다. 하지만 밤눈이 어두워진 탓인지 여전히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번 지나가는 젊은 친구들을 붙잡고 간절하게 물었다.
"체크인을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숙소를 찾을 수가 없어요."
그들은 기꺼이 자신의 핸드폰까지 꺼내 보이며 우리가 예약한 숙소 매니저의 메시지함을 확인해 주었다. 당장 정보를 확인하려 애썼지만, 로밍을 해오지 않은 내 핸드폰은 먹통이었다. 남편의 폰으로 다시 접속했지만, 당황한 탓인지 수백 개의 메일함 속에서 컨펌 메일과 체크인 안내는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부모가 길 위에서 우왕좌왕하는 사이, 아이들은 낯선 풍경과 공기 속에서 잔뜩 겁을 먹은 채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고맙게도 그 외국인들은 그런 아이들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며 안심시켜 주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메일함을 뒤진 지 수십 분째, 마침내 주인장이 전날 보냈던 '셀프 체크인 안내' 메시지를 찾아냈고, 우리는 겨우겨우 문을 여는데 성공했다.
에어비앤비를 처음 이용하며 저지른 안일함의 대가였다. 예약 완료 메일 한 장만 믿고 손을 놓고 있었던 탓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에어비앤비 헬(Airbnb Hell)'이라는 사이트가 따로 있을 정도로 셀프 체크인 실패담은 차고 넘쳤다.
✔️ 에어비앤비 헬 사이트 주소: airbnbhell.com
전 세계 게스트와 호스트들이 겪은 최악의 경험담과 피해 사례를 공유하는 독립적인 커뮤니티. 에어비앤비 공식 고객센터가 아니다. 에어비앤비를 처음 이용하는 분들이라면 참고해 보시라 권하고 싶다.
냉정한 사후 분석은 뼈아팠다.
첫째, 출발 48시간 전에는 매니저와 다시 연락해 체크인 방식을 확정했어야 했다.
둘째, 최소 24시간 전에는 비밀번호나 키박스 위치를 확인해 두었어야 했다.
셋째, 현장에서 와이파이가 안 터질 상황을 대비해 모든 메시지를 '캡처'해 두었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즉시 전화할 매니저의 직통 번호를 따로 메모해 두었어야 했다.
준비되지 않은 여행자에게 밤의 빅아일랜드는 '천국'이 아니라 '미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리숙함 덕분에, 우리는 낯선 땅에서 낯선 이들의 온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그저 아주 작은 도움만을 청했을 뿐인데, 그들은 마치 자기 일인 양 두 팔을 걷어붙이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써주었다.
여행자의 시간을 뺏어 미안하다는 우리의 말에, 그들은 손사래를 치며 “전혀(Not at all)!”라고 답했다. 그러고는 우리보다 앞장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숙소의 행방을 물어봐 주었다. 마침내 우리가 숙소를 찾아내고 체크인 정보를 확인했을 때, 그들은 우리 가족만큼이나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고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뜨거운 ‘하이파이브’를 건넸다. 낯선 이방인들이 순식간에 든든한 아군이 되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우리 바로 위층에 머무는 이웃이었다. 우리가 짐을 정리하며 한바탕 ‘액젓 수습 작전’을 치르고 있을 때, 그들이 우리 방을 찾아왔다. 우리가 무사히 입성했는지 확인하고 정식으로 인사를 건네러 온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문을 활짝 열고 방으로 초대해 시원한 맥주라도 대접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문틈 사이로 이미 농밀한 멸치액젓 향기가 새어 나가고 있었으니까.
나의 눈은 "너무 고마워요, 어서 들어오세요!"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나의 몸은 문고리를 꽉 쥔 채 방어적인 자세를 유지했다. 이 따뜻한 이웃들에게 하와이의 첫 기억을 '코를 찌르는 젓갈 냄새'로 각인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나는 문을 아주 살짝만 열어둔 채,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로 그들을 문전박대(?) 해야 했다. 완벽한 체크인을 마쳤더라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소중한 인연을, 액젓 냄새 때문에 문밖에서 배웅해야 하는 이 아이러니라니.
만약 내가 완벽하게 셀프 체크인을 마쳤더라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 경험하지 못했을 친절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여행자의 빈틈은 때로 예상치 못한 인연이 스며드는 통로가 된다는 것을, 서로가 보내는 환대 속에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