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아일랜드 숙소 수난기
5년 전 오아후, 부푼 마음으로 체크인했던 하와이 호텔은 사실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문을 열자마자 느껴진 건 '전통 있는 관광도시' 특유의 낡은 공기였다. 오션뷰의 황홀함도 잠시, 낡은 카펫과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인테리어에 실망감이 밀려왔다. 게다가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에서 취사가 불가능하다는 점은 예상보다 큰 제약이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현지인의 일상에 스며드는 따뜻한 주방과 세련된 감성을 가진 '에어비앤비'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싹튼 것이.
하지만 이번 하와이 빅아일랜드 여행을 에어비앤비 숙소와 함께 마치고 나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낡고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그 호텔이 사실은 얼마나 호화로운 안식처였는지를.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번 에어비앤비 예약은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 하와이의 살벌한 호텔 숙박비에 비하면 꽤 합리적인 가격이었고, 리조트형 건물에 수영장까지 딸려 있으니 이만하면 최고의 가성비라고 자부했다.
길만 건너면 바로 바다가 펼쳐지는 입지, 사진 속 모던한 인테리어와 넓은 주방은 나의 의심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숙소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뭔가가 잘못되었음이 감지되었다. 물론 사기에 가까운 사진에 속은 듯한 느낌은 아니었다. 언뜻 보기에 공간이 그리 작지도,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지저분하거나 낡은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묘하게 느껴지는 '실망감'. 왜 그랬을까.
가성비 괜찮은 숙소를 찾아 헤매고 있던 우리의 손길 위에서 호스트 역시 지독하리만큼 가성비를 따지며 인테리어를 했음이 느껴졌다. 가구며 소품에서 숨길 수 없는 '저렴함'이 배어 나왔다. 물론 이 역시 누군가에겐 사치스러운 투덜거림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사진을 보며 기대했던 그 '감각적인' 느낌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청결도도 문제였다. 천장에는 미처 털어내지 못한 먼지가 대롱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몸을 누여야 할 침구와 소파도 어딘가 모르게 찝찝해 안락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진 전체에서 느껴지던 '깔끔함'은 어디로 간 거였을까.
호스트는 딱 '사진에 찍혔을 때 괜찮을 만큼'의 공을 들였고, 숙소 구석구석에서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면 됐지"라는 속삼임이 들려오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그래도 이 정도면 뭐, 나쁘지 않네"라며 애써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는데, 둘째 아이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우와!" 소리를 연발하며 구석구석을 탐험했을 둘째의 얼굴이 뾰로통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매번 무슨 좋은 호텔로만 여행을 다닌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늘 그냥 그 상황에 맞게 잘 적응해 주었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아이는 참았던 한마디를 툭 던졌다.
"엄마, 나 여기 안 좋아."
이곳에 오기 전, 홈페이지에 게시된 그럴듯한 사진을 엄마와 함께 보며 부풀었던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표정이었다. 나의 어설픈 자기 합리화도 이 한마디에 힘없이 바스러졌다.
사실 당장이라도 숙소를 바꾸고 싶었지만, 당장 예약할 숙소를 다시 찾아내는 것도, 이 짐들을 다시 짊어매고 숙소를 옮기는 것도 쉬울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숙소를 무조건 바꿔야 할 만한 결정적 이유도 딱히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모든 게 애매했다. 그렇게 애매한 공간에, 애매한 상태로 머무르며 생기는 불편함을 우리는 여행 내내 몸으로 갚아나가야 했다.
내가 예약한 숙소의 평점은 4.82였다. 후기도 적지 않은 것 같았고 '슈퍼호스트'라는 타이틀은 안심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사진 속 숙소는 화려하진 않았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뼈아프게 깨달았다. 숫자가 주는 가짜 안도감에 속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에어비앤비에서 4.9라는 숫자는 단순한 평점이 아니다. 그것은 호스트가 얼마나 신경 써서 관리하고 있는 지를 결정하는 척도다. 0.08점의 차이가 뭐 그리 대수냐 싶겠지만, 그 미세한 틈새로 청결과 방역에서 허점이 드러난다. 평점이 4.9를 넘는다는 건, 호스트가 프리미엄 청소 서비스를 유지하고 방역을 필사적으로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 아래의 점수는 누군가 이미 그곳에서 '불편한 상황'을 겪었다는 경고 신호다. 평점 4.82의 숙소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이곳에 내내 머무르며 온몸으로 부딪혀 알아갔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숫자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리스팅 개수'다. 호스트가 관리하는 숙소의 총량을 뜻한다. 평점이 아무리 높아도 관리하는 숙소가 여러개라면 의심해봐야 한다. 그 많은 방을 호스트가 일일이 살피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호스트는 무려 18개의 리스팅을 보유하고 있었다. 18개의 숙소를 운영한다는 건, 곧 게스트가 받는 피드백이 호스트의 진심이 아닌 직원의 기계적인 매뉴얼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이전 게스트들이 리뷰를 통해 곰팡이와 벌레를 그토록 경고했음에도 개선되지 않았던 건, 아마도 기업형으로 운영하다 보니, 이런 리뷰들의 경고를 누락하게 되었던 탓이리라.
설령 리스팅 개수가 적더라도 안심은 금물이다. 숙소가 대규모 리조트 단지 내에 있다면, 내 방 호스트가 아무리 철저해도 옆방 호스트가 방치한 벌레와 습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선택지는 명확하다. 리스팅 1~2개 내외, 평점 4.90 이상의 숙소. 이런 곳의 호스트는 자신의 취향을 공간에 녹여내고, 내 집을 돌보듯 구석구석을 닦고 살핀다. 그들에겐 숙소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결국 에어비앤비를 선택한다는 것은, 단순히 숙소를 예약하는 것을 넘어 여행의 불확실성 전체를 내가 오롯이 책임지겠다는 것과도 같다.
호텔에서는 당연하게 누렸던 '안락함'을 포기해야 한다. 데이터의 신뢰도를 확인하기 위해 귀한 시간을 쏟아야 한다. 리스팅 개수를 대조하고, 수백 개의 후기 속에서 '벌레'나 '곰팡이'라는 단어를 보물찾기 하듯 골라내며 예약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몇 번이나 마음을 졸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공을 들여 예약했음에도 막상 마주한 숙소의 문 뒤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에어비앤비에는 매일 아침 새것처럼 빳빳하게 교체되는 침구도, 외출한 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쓰레기통의 비닐봉지도 없다. 그러다 보니, 청소나 문제 해결 등을 직접 해결해야 한다. 휴식을 위해 떠나온 여행지에서조차 '가사 노동의 연장선'에 서 있게 되는 셈이다.
여행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건 상당한 '피로감'이다. 오롯한 책임의 무게가 여행의 즐거움을 야금야금 갉아먹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