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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셰프 May 22. 2023

[중국어원서]영혼을 치유하는 소울푸드

중국어 원서읽기







중국어 원서를 도대체 왜 읽어야 할까요? 중국어 원서는 수많은 어휘, 표현력, 문장 구조를 익힐 수 있는 훌륭한 공부 방법입니다. 잘만 활용하면 읽기를 통해 쓰기, 말하기, 심지어 듣기 실력까지 향상될 수 있죠. 그러나 단순히 중국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만 읽는 것이 아닙니다. 



독서를 통해 즐거움과 희열을 느낄 수 있고, 그 가운데 힐링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읽어나가는 것이죠. 등장인물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고, 나의 지식과 사고를 확장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원서 읽기가 중국어 공부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독서가 아닌, 나의 삶을 즐기고 나아지게 하기 위한 취미로서의 즐거운 독서가 됩니다. 



물론 중국어 원서 읽기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첫사랑에 빠진 것처럼 드라마틱 하게 처음부터 엄청나게 좋아질 수는 없습니다. 중국어를 아무리 오래 배우고 잘 하는 누군가라도, 중국어 원서의 매력에 빠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특히 평소에 한국어로 된 책도 잘 읽지 않던 이들에게는 더더욱 다가가기 힘들게 느껴질 것이고요. 



그러나 나와 잘 맞는 원서를 만나게 되면, 중국어를 접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에 풍덩 빠져들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 중국어 원서가 학습적인 면 외에, 어떠한 이점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첫째, 중국어 원서를 읽다 보면 ‘즐거움’을 느끼게 됩니다.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취미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죠. 책 속에서 즐거움을 찾으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게 됩니다. 아무리 ‘중국어 원서를 꼭 읽어보고 말겠다’고 큰 마음을 먹더라도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책을 지속해서 읽어나가기가 힘듭니다. 조금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고, 재미있고 즐거운 마음이 드는 중국어 원서를 고르면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며 자발적으로 책을 꾸준히 읽게 됩니다. 



중국어 원서 가운데에는 우리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재미있는 책들이 많습니다. 그림책이나 에세이를 읽을 수도 있고, 문학 작품을 읽어볼 수도 있습니다. 소설의 경우 스토리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재미있는 작품 속에 빠져있다 보면 그 자체로 스트레스가 풀리고는 합니다. 특히 중국 문학은 소재도 배경도 굉장히 다채롭고 신선한 작품이 많습니다.




《七月与安生(칠월과 안생)》,《想见你(샹견니)》,《少年的你(소년시절의 너)》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영화나 드라마도 알고 보면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 많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작품 가운데 마음에 끌리는 원서 한 권을 골라 읽어보세요. 인물이 겪는 갈등과 사건을 따라가며 이야기 속에 몰입하다 보면 현실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머리를 식힐 수 있습니다. 마치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볼 때와 마찬가지로 말이죠. 






“독서를 하면 삶의 어려움을 잊어버리게 된다. 
하루 중 ‘잡동사니’ 글을 읽고 있는 몇 시간 동안 
나는 근심과 불만뿐만 아니라 걱정거리에서 도피할 수 있다







<크라센의 읽기 혁명>에서 저자는 “독서를 하면 삶의 어려움을 잊어버리게 된다. 하루 중 ‘잡동사니’ 글을 읽고 있는 몇 시간 동안 나는 근심과 불만뿐만 아니라 걱정거리에서 도피할 수 있다"라는 한 연구 대상자의 말을 전합니다. 중국어 원서 역시 마찬가지로 어떤 내용의 글이던 어느 순간 책에 몰입하다 보면 실제 힘들고 고된 감정이나 상태를 잊을 만큼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우울하거나 화가 나면 정신없이 빠져 읽을 수 있는 책을 집어 들었어요. 탐정 추리 소설이나 판타지 이야기 같은 거로요. 소설 속 세계에 빠진 순간만큼은 진통제를 삼킨 것처럼 현실의 고통을 잊을 수 있어요.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책의 세계에 빠져 있다 보면 등장인물이 문득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것 같거든요. ‘인생에 참 어이없는 일이 많이 생기지? 진짜 이 정도일 줄 몰랐지? 하고요.’   

<책들의 부엌>中



기억나는 독서 경험 가운데, 《生死场(생사의 장)》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1930년대 만주 사변을 겪던 중국 동북 변방의 농촌 마을 이야기를 담은 내용입니다. 독서 초반에 등장인물이 너무 많기도 하고 작가가 친절히 설명해 주는 것도 아니어서 굉장히 애를 먹었던 작품입니다. 그러다가 당시 소외되고 나약한 존재로 묘사되는 여성들이 처한 기막힌 삶을 들여다보면서 스토리에 저절로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출산 직후에 본 책이어서 그런지 더욱 공감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처절한 삶을 살았던 여성들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당시 육아에 찌들어 있던 저의 모습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한편으로는, 그 당시 여성과 현재 여성들의 삶, 중국인 여성과 한국인 여성의 삶을 비교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힘들다고 생각했던 지금 나의 삶을 오히려 감사하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책을 통해 누군가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하면서 현실의 고단함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습니다. 



둘째, 원서 속에서 찾아낸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한 구절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되기도 합니다. 마치 내 고민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처럼, 책의 문장이 구구절절 와닿을 때도 있습니다. 당시 고민이나 관심사에 맞닿아 있는 문장을 발견하거나,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책 속에서 중국어로 만나게 되면  그렇게 반갑게 느껴지면서도 마음속의 답답한 기분이 해소되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 중국어 원서를 읽기 시작하며 ‘이렇게 원서를 계속 읽는다고 나의 중국어 실력이 나아질까?’라는 생각이 들며 불안하기도 했고, ‘매일매일 이렇게 꾸준히 읽고 있는데 아무것도 나아지는 게 없는 것 같아.’라며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기에 《长恨歌(장한가)》라는 작품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습니다. 




邬桥的岁月,是点点滴滴,仔仔细细度着的,不偷懒,不浪费,也不贪求,挣一点花一点,再攒一点留给后人。


우챠오의 세월은 한 방울 한 방울씩 차근차근 서서히 만들어진 것이다. 게으르지 않고, 낭비하지 않고, 탐하지 않으며, 조금씩 얻고 조금씩 쓰면서, 또 그렇게 조금씩 모은 것을 후세에 남긴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원서 읽기도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으르지 않게 하루하루 읽고 또 읽다 보면 책에서 조금씩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더라고요. 너무 많이 읽으려 하거나 에너지를 너무 쏟으려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면서도, 책을 읽는 과정에서 익힌 것들을 누군가에게 나누고 싶다는 다짐이 서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책 속의 중국어 문장으로 나의 고민이나 불안을 해소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그저 어떠한 상황을 담백하게 묘사한 문장에 공감이 가며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감동적인 글귀나 미사여구가 없어도 말이죠. 한창 육아로 지쳐있던 시기 <82년생 김지영>의 중문판인 《82年生的金智英》을 읽었는데, 마치 저의 상황을 거울처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她自己的日常已处于水深火热当中,每天都战战兢兢,片刻不得松懈,一个不小心就可能掉入万丈深渊,实在无暇再照顾另一个人,也没有多余的心思好好安慰别人。



김지영 씨의 일상은 심한 괴로움에 휩싸여 있었고, 매일 전전긍긍하면서 잠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조금이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구렁텅이에 빠질 것만 같았다. 정말 더는 누군가를 돌볼 힘도, 다른 사람을 위로해 줄 여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육아를 하며 힘들다는 이유로 주변에 잘 연락도 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을 잘 챙기지 못해 느끼게 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런 문장을 읽으면서  나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 같아 속이 뚫리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 이 상황을 중국어로 이렇게 말할 수 있구나’를 알게 되니 ‘힐링’과 ‘중국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습니다.



심리학 서적을 중국어 원서로 읽다 보면 지혜로운 중국인 친구와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속 깊은 이야기를 터놓고 꺼내어 놓으며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괜찮아”, “잘하고 있어”, “다 좋아질 거야”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네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중국어 원서는 좋은 친구이자, 친언니이자, 때로는 엄마 같은 따뜻한 존재였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아무리 심신이 지쳐있어도 어떻게든 정신줄을 붙잡고 책을 몇 페이지라도 몰입해서 읽으려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정신이 오히려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치 강도 높은 운동으로 땀을 흠뻑 흘리고 몸이 개운해지는 것처럼 말이죠.




마지막으로, 원서를 읽으며 ‘간접 경험’을 통해 힐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꼭 중국으로 여행을 가지 않아도 책장을 펼치기만 하면 시대와 공간을 가리지 않고 여행하는 기분이 듭니다. 여행을 가서 구경하고, 맛있는 것을 먹어보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며 자유로운 기분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소설 <长恨歌(장한가)>는 1940년대 弄堂(롱탕)이라는 상하이의 뒷골목에 대한 묘사가 서두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를 따라가면서 중국 상해의 롱탕을 작가가 묘사한 시선으로 느껴보고 싶어 다시 한번 가보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중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싼마오(三毛)의 <사하라 이야기>나 <허수아비 일기>를 읽다 보면 일상에서 쉽게 가기 힘든 먼 곳으로 진짜 여행을 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작가가 생생하게 묘사하는 장면을 통해 마치 내가 직접 다녀온 것처럼 생생한 이미지가 그려지며 새로운 세상에서의 일상을 체험해 볼 수 있죠.




远离我们走过的路旁,搭着几十个千抢白孔的大帐篷,也有铁皮做的小屋,沙地里有少数几只单峰骆驼和成群的山羊。我第一次看见了这些总爱穿深蓝色布料的民族,对于我而言,这是走进另外一个世界的幻境里去了。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커다란 구멍투성이 천막 수십 채가 줄지어 있었다. 함석으로 만든 작은 집들도 보였다. 모래땅 위에는 단봉낙타 몇 마리와 염소 떼가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다. 드디어 짙푸른 옷을 즐겨 입는 민족을 만나는 것이다. 나는 새로운 환상의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撒哈拉的故事(사하라 이야기)> 中






방구석에 혼자 앉아 책을 읽는 시간들 속에서 중국에 있을 때보다 더 중국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 있습니다. 중국어 원서를 읽으면서 책 속의 주인공을 따라 과거의 화려했던 한 도시의 길거리를 누비기도 하고, 허름하고 누추한 골목길의 한 집에 따라 들어가 보기도 하고, 때로는 중국인 학생들이 살고 있는 기숙사에 들어가 함께 생활해 보기도 할 수 있습니다. 책을 통한 이러한 간접 체험으로 호기심을 해결하거나,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여행을 다녀오는 홀가분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중국어 원서는 단순한 책이나 교재가 아니라 소울푸드입니다.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고, 지친 마음을 다독여주며, 살아갈 힘을 전해주죠. 우리가 SNS에서 ‘좋아요’를 누르게 되는 멋지고 공감되는 문장들도 사실 출처가 책인 경우가 많습니다. 원서를 읽다 보면 내 마음을 후벼 파는 듯한 문장이나 위로와 힘이 되는 한 마디를 직접 건져낼 수 있습니다. 모래 속에서 찾아낸 진주처럼 그렇게 스스로 찾아낸 문장들은 누군가 추천해 준 문장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오래 기억되고 가슴에 더 와닿습니다.



중국어를 배우는 누군가가 중국 문학 속의 따뜻한 이야기를 먹고 마음속 어딘가 허전한 구석을 채워나가고, 나를 들여다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국어 원서에는 중국어 학습을 위해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할 어휘, 문법, 문장 구조가 가득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단어를 찾고, 분석하고, 외우며 너무 학습적인 측면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책이 주는 즐거움을 충분히 느끼며 담백하게 글을 읽어나가도 괜찮습니다.




맛있는 이야기 속에 함께 담긴 마음을 움직이는 여러 가지 힘과 매력에 끌리게 되어 자발적으로 원서를 너무 읽어나가고 싶어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스스로 원서를 읽을 이유가 생겨야 오래도록 가까이에서 자주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중국어 원서 읽기를 시도하고 싶으신 분들, 

중국어 원서 읽기를 하고 있지만 자주 그만 되게 되는 분들에게 

저의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번 포스팅은 마무리하겠습니다. 



윤셰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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